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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고르기는 너무 어려워

하/되/먹/갖 (2)

by Mr text

가을을 맞아 아내와 옷을 사러 갔다.

잠깐 둘러보는 것 만으로 필요한 옷을 고른 아내와 달리 나는 매장 여러 곳을 돌아다녔음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대단한 패셔니스타여서는 아니고, 그저 ‘확 당기는 것이 없어서.‘였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한 매장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가을에 어울리는 짙은 갈색, 그리고 그보다 살짝 연한 갈색과 베이지색이 섞인 셔츠. ‘언젠가 한번 입어봐야지.’라고 생각했던 스타일대로 예쁘게 레이어드 되어있는 마네킹이 눈에 들어와서였다.


아내는 내가 생각했던 그 조합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옷을 추천해 주었다. 나도 이것저것 옷을 대보면서 어떤 옷이 좋을까 열심히 골랐더랬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 봤던 그 조합의 옷을 선택하려던 순간 아내가 말했다.

“음… 이건 얼굴이 너무 어두워 보이는데? 없는 스타일이라서 시도해 보고 싶은 거야? 이 옷은 어때?”

아. 저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딱히 옷을 사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 아닌데도, 아내의 말을 들은 순간 내 얇은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썩 괜찮게 보이던 거울 속 내 모습이 괜히 칙칙해 보이고, 영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 같고, 집에 있는 옷들과 어떻게 조합해서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집에 있는 것 대충 입으면 되지 뭘 새로 사나 싶다가, 결국에는 손에 들고 있는 이 옷이 예뻐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옷을 사지 않았다.




깊이, 오래, 심각하게 고민했음에도 타인의 말 한마디에 생각이 확 바뀌어버리는 경험은 무척 흔하다. 옷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를 더 말해보자면, 너무 오래 입었다 싶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입었던 청바지를 보고 누군가 ‘빈티지 느낌 나고 멋있다.‘는 말을 해준 후에 그 청바지가 나의 최애가 된 일도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주위 의견에 영향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지만, 이 정도로 생각이 휙휙 바뀌는 것은 무언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옷을 고르는 것이 참 어렵다는 내게 아내는 ”자기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에 맞는 옷 입으면 되지 뭐.“라고 쉽게 말했지만 내게는 그것이 참 어려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옷을 고르지 못했던 이유는 ‘확 당기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몰라서‘ 였던 것 같다. 결국 문제는 ‘주관의 부재‘다.


사전에서 ’주관‘의 의미를 찾아보면,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이라는 뜻이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주관은 여기에 조금 보태서,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이다. 타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의견이라 할지라도 듣고 포용해서 나만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


AI시대에 발맞춰 ‘자기 주관을 갖는 법을 알려줘.’라고 물어봤더니 “주관은 한 번의 큰 결정이 아니라 반복된 자기 결정의 결과“라는 인상 깊은 답을 주었다. 맞다. 자기 주관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 그리고 결정의 순간들을 거치며 형성된다. 남의 의견을 듣되 내 결정을 내리는 연습. 그것이 바로 주관을 세우는 첫걸음인 것이다. 이 선택이 틀릴까 봐, 그리고 그 틀린 선택으로 인한 기회비용의 손실이 아까워서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지만 사실은 이런 실패의 경험들이 쌓이고 후회도 해봐야 자기만의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후에도 자기만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다. 최애가 된 청바지처럼, 타인의 말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수도 있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것이다. 얼굴이 어두워 보인다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번 입어본 뒤에 조명 아래 서서 내가 보기에도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한번 입어보고 싶은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던 것이다.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일단 샀다가 결국 옷장 안에 처박혀 있게 되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이 색 옷은 사지 말아야지’라는 교훈은 남겠지,라는 마음으로.


나이를 먹어가고 사회적으로 어른이 되어가면서, 결정을 내려야 할 일도 많아지고 그 결정의 무게감 또한 더해진다.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도, 중요한 결정도 점점 많아지는데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옷을 산다는 일상적인 행위에서도 이런데 크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생기면 어떨까. 그때도 다른 사람 의견에 팔랑귀가 되어 결정을 내리면 안 될 텐데. 이립은 진즉에 넘었고 불혹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확고히 서지 못했고, 판단을 흐리는 일도 너무나 많다.


비어 있는 내 마음속 주관을 채우기 위해, 비어 있는 내 옷장 속에 옷을 채우기 위해. 아무래도 그 옷가게에 다시 한번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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