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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Mar 19. 2023

기약 없는 OOO

내가 싫어하는 것들

 나름 서둘렀다.


 일어나서 멍 때리는 시간도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바로 외출준비를 했고, 밥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섰다. 목표는 요즘 핫하다는 북한산 스타벅스. 네비가 알려주는 최소 시간 코스를 따라 잘 도착했는데 정작 매장에 자리가 없었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매장 내부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데 주차관리 요원분이 오시더니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차 한 대가 나가야 한 대가 들어가서요."라고 말을 해 주셔서 차를 돌려 나왔기 때문이었다.


 차를 돌리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 마음속으로 '얼마나 걸릴까요?'를 물어보았다. 상상 속의 주차관리요원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글쎄요. 기약이 없네요.' 이 이상의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과감히 핸들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저기에서 가장 뷰가 좋은 자리에 앉아 여유를 부리려면 대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 걸까.'


 그것조차 기약이 없게 느껴졌다.




 천성이 나태하고 게으른 나는 아무 기약 없이 그저 정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싫다. 어떤 일을 할 때 무식하고 우직하게 정진하고 노력하기보다는 요령을 피우고 적당한 대안을 찾아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내고 싶다. 정석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쉽고 편해 보이는 길을 찾고, 찾아지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 그래서 완전한 목적지나 결과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에 만족해 버리고 마는 사람. 그것이 나다.


 이런 내게 기약 없는 OOO는 참으로 고된 길이다. 요령을 피우거나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이 대략적으로나마 그려져야 한다. 그래야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같이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시에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해야 북한산 스타벅스의 제일 좋은 자리에 여유롭게 앉을 수 있는지', '몇 년이나 공부를 해야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지', '문제집을 몇 권이나 풀어야 자격증을 딸 수 있는지'처럼 기약 없이 그저 해보는 수밖에 없는 일은 참 어렵고 시작하기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내가 아무리 싫어하고 피해봐야, 아무리 기약이 없어 보여도 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해야 하는 순간이 생기곤 한다. 그럴 때는 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도착점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종점을 생각하며 힘들어 하기보단 고개를 푹 숙이고 '나는 죽었소.' 생각하며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아, 나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점. 나는 '기약 없는 OOO'보다 '기약 없는 OOO를 견디어 내야 하는 상황'을 싫어하는 거였구나.




 북한산 스타벅스를 포기하고 근처의 다른 한적한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며 산을 오르는 이들을 바라본다. 꼬맹이와 함께 온 가족, 사이좋아 보이는 부부, 무술 수련이라도 하듯 휘적휘적 여유로운 걸음걸이의 어르신까지.


만약 내가 무협 소설의 등장인물이었다면 틀림없이 '기초 싫어요, 이렇게 해서 언제 내공 모으고 언제 고수 되나요.'라면서 수련을 땡땡이치다 도망치는 이름 모를 조연이었을 것이다. 이런 조연이어도 만약 원수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했거나 하면 제 아무리 기약이 없어도 필사적으로 수련에 전념하겠지. 떠오르는 예가 뭐 이리 극단적일까.


 내 삶에서 기약 없는 일을 견디어 내야 할 극단적이고 힘겨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래서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약 없는 일들을 피해 도망치며 살아도 무탈하고 행복하기를. 처음 목표했던 북한산 스타벅스에 가지 못해 아쉽기보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마음에 드는 새로운 카페를 찾아 여유를 즐기고 왔음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햇살 좋은 카페 창가에 앉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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