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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설 Jan 19. 2021

채우다 비우다

비울 시기에도 계속 채우기에만 바쁜 우리들

몇 년  그림을 배운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그림  점을 보여줬다. 바다 한가운데 조각배 하나  있는 단순한 그림이었다. 색도 많이 쓰이지 않고, 형태도 다양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를 멋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림의 대가가 될수록 그림이 단순해진다고 했다. 나도 단순하게   그려봤다. 하지만 도저히 봐줄 그림이 아니었다. 부족하다 여겨지니 계속 덧칠해갔다. 그럴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이브 드로잉을 그리는 김정기 작가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작가는 초기에는 그림에 무엇인가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비우기 위해 애쓴다고 했다. 하지만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했다.

때가 있는  같다. 채워야 하는 시기와 비워야 하는 시기. 청춘은 채우는 시기로 보인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시기이니 나무들이 그러하듯 꽃을 피우기 위해 무수한 잎을 채울 시기이다. 그러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비워야 할 시기이다. 잎을 하나씩 떨어트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죽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한다. 먹고살만한 충분한 돈이 있음에도  큰돈을 채우기 위해 애쓴다. 자신의 이야기로만 가득 차 남의 이야기를 들을 공간도 남아있지 못한다. 비우지 못한  계속 채우기에만 바쁘다 보니 우린 고립되었다. 비워야 누군가 들어서는데  안에 나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시나무란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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