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남들은 시댁행 열차에
우리 20년차 부부는 시코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코쿠!
예술의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낯선 곳이다.
더구나 오랜만의 자유여행으로 직접 여러 예약을 통해 가기에 더더욱.
그러나 긴장보다는 은은한 설레임으로 마음이 가득하다. 어떤 곳일까....
다카마쓰 공항에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넘버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이자카야.
다카마쓰는 사누끼 우동의 원조이자 닭요리로 유명한 곳이다.(가서 알았다.ㅋ)
조금 거짓말을 하면 처음 맛보는 식감이다. 이런게 닭의 맛이구나 하는... 삐루를 마구 부르는 맛~
일본의 라면은 역시 짜서, 저염식을 선호하는 내 입맛에는 잘 맞지 않지만 시원한 생맥주로 일본의 첫날 밤이 깊어간다 .
여행 첫 날의 2차는 치약같은 것이다. 칫솔만 있으면 이를 닦아도 개운하질 않다.
그리고 일본식 이자카야의 숙성회는 언제나 옳은 선택이다.
담백하고 그윽한 맛이 사케와 만나 흥분과 조화로움을 선사한다.
2일차.
넘버원 호텔의 일본식 아침을 먹고 바로 다카마쓰항으로 출발.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면 쉬웠을텐데, 물어물어 보고보고했는데도 쾌속선은 놓치고 대형 페리에 탑승. 제일 가고 싶었던 예술의 섬중의 섬. 나오시마로 출발
여객선 옥상에서 다카마쓰를 보았다. 약간의 비와 흐린 날씨가 어찌 일본인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가까이 가기 전 까진 웃지 않고 묵묵한 일본인들. 언제봐도 활기가 없다. 나만의 생각인가...
나오시마에 도착하니 예쁘게 생긴 앙증맞은 귀요미 버스가 우릴 맞이한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형물로 유명한 곳. 나오시마.
섬 일주 버스를 기다리며 일본풍의 간식을 샀는데...역시 뭔가 맛도 포장도 일본스럽다.
아기자기하면서 뭔지 모를 빈 곳의 아쉬움을 채워주고 가려움을 긁어주는.
지중미술관 입구의 연못(모네의 수련 작품을 나오면서 생각나게 한다.)과 세토내해 국립공원.
언덕속 지하의 작품들과 빛을 주제로 특이한 경험을 느끼게 했던 곳이다.
우리나라도 좋은 아이디어와 예술이 만나면 특별한 경험의 장소를 얼마든지 만들지 않을까???
다시 다카마쓰로 와서 항구 옆의 다카마쓰 성으로 이동. 마감 30분전이라 관람객은 우리뿐.
일본 식의 정원과 아기자기한 숲, 그리고 성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더더구나 우리 뿐이었다.
20년의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그 시간을 함께한 국화꽃같은 사람과 카타하라마치 역전의 이자카야에 우연히 들어갔다.
저 큰 국정종 통에서 작은 사각 술 잔에 술을 따라준다. 이색적이고 창의적이다.
그리고 숙성사시미.
꼭 다시 이 집을 오리라~~~
3일차.
아침을 먹고 일본 전차를 이용해 리쓰린 공원으로 가고 있다.
카가와현은 일본 전 지역의 중고 기차들을 모아 전차를 운영하고 있어 다양하고 흥미로운 열차가 많은 곳이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차창너머 시코쿠의 전통을 간직한 소박한 가옥들이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이 곳 기차는 운전석과 뒷 부분 모두가 개방돼 있어 호기심 많은 두 지리교사 부부에겐 작은 선물이다.
정원의 나라 일본. 그 중에 율림(리쓰린)공원이 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내 생각이 많이 틀릴 수 있다는 걸 곧 깨닫는다.
일본속의 일본, 정원속의 정원~
좋은 사람과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붓쇼잔역에 내려 일본 에도시대의 가옥과 온천거리를 걸었다. 친절한 일본인을 만나 운좋게 일본 사람들만 가는 사누끼 우동집엘 들어갔고~ 한글판 안내책자에 나오는 집에 가지않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표현하기 어려운 맛.
표현하기 어려운 주인의 친절.
포근하고 정겨운 인테리어와 식기며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에도 시대의 가옥들을 볼 수 있는 고풍스런 거리를 걷다 현대식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아본다.
일본 커피는 원두 오리지날의 맛이 강한 편인데, 일본인의 특성으로 보면 맞는걸까? 의외일까?
시원한 물에도 레몬을 띄우고, 각설탕 그릇의 디자인도, 주변 서비스도 참 일본스럽다.
마지막 저녁 만찬!
역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이자카야.
다카마쓰의 먹자골목은 가와라마치역에서 카타하라마치역까지 2Km정도로 대단히 광범위하다.
그 곳의 이자카야 골목중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 무작정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와 여독을 풀어본다.
안주는 튀김과 닭꼬치 모둠. 맛나다. 마지막 밤이 아쉽게 흘러간다.
편의점에 들러 야식을 샀는데, 미역무침과 마늘 우엉 요리가 맛깔스럽다.
한국인이 가성비로 만족해 한다는 도미인 호텔에 갔더니, 무료 야식이 있다. 라면~
국물은 진하고 간은 아주 짜다. 섬나라 일본, 짜다.
도미인 호텔은 11층에 사우나가 있는데, 노천탕도 실내탕도 작은 일본의 정원처럼 만들어 놓았다.
수줍은 듯 들어오는 일본인들 속에 내가 앉아 있다. 작은 이질감이 머릿속에 맴돌지만..
물이 좋아 기분까지 상쾌해 진다.
예술의 섬, 시코쿠.
사누끼의 본고장, 다카마쓰.
여행은 역시, 나를 돌아보게 하고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