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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마 밑 Oct 10. 2016

마피아 게임 같은 영화

영화 <밀정>을 보고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네이버 영화


* 이 글은 영화 <밀정>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밀정>은 마피아 게임을 닮았다. 마피아 게임은 여러 명 중에서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이 누구인지 맞추는 일종의 심리 게임이다. '게임 진행자'는 마피아를 지목하는 역할을 맡고, 참여자들의 대화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밀정>은 시종일관 누가 밀정(마피아)인지 아닌지를 두고 관객을 몰입시킨다. 밀정이 누구인지를 지목하는 '게임 진행자'의 역할은 영화의 시대적 상황이 맡았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에 이입한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일본 경찰의 밀정이 되기도 하고, 의열단의 밀정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밀정이 누구인지를 맞추기 위한 세 번의 질문을 던진다.


마피아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자신이 마피아가 아니라면 누가 마피아인지를 맞추기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마피아 입장에선 되려 상황이 간단하다. 다른 사람을 마피아로 지목하면 된다. 어찌 됐든 간에 자신이 마피아라는 혐의를 벗어야 살 수 있다. 이정출은 김우진(공유)과 손잡고 의열단 일행을 무사히 경성으로 옮기는 데 협조하지만, 의열단 내부에 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아무 정보도 없을 때는 모두를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김우진은 바로 이 부분에서 <밀정>의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인가.' 김우진은 단원마다 다른 정보를 일부러 흘린다. 이를 통해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조회령(신성록)이 밀정이란 사실을 밝혀낸다.


밀정을 찾았으니 게임은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회령이 죽기 직전에 했던 말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는 '의열단은 성공한 적이 없고, 실패한 의열단원에게는 죽음뿐이므로 되려 동지들을 지켜주려 했던 것'이라고 강변한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 같지만 혼란은 피할 수 없다. 도대체 나라라는 것은 무엇이고, 주권은 무엇이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폭탄을 운반하고 심지어 친구에게 총을 쏘는가. 답은 없다. 마피아 게임을 하는 사람이 게임을 하는 데 어디 특별한 이유가 있던가.


이 게임에 참여한 이상 계속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밀정>의 두 번째 질문을 잉태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던지고 받는 사람은 모두 이정출이다.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의열단원과 접촉한 이정출은 되려 의열단의 밀정이 되는 혼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의열단장인 정채산(이병헌), 김우진 그리고 이정출이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은 이정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알다시피 술은 마실수록 정신이 혼미해진다. 커다란 술통이 바닥날 때까지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이정출의 모습은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찾지 못했음을 뜻한다. 고뇌는 계속된다.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인 게 들통나면 발뺌을 해도 소용없다. 게임 진행자가 그가 마피아임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피아가 아닌 경우에도 게임 진행자가 입증한다.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는 이정출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고 타인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연계순(한지민)의 시신을 보고 터지는 이정출의 울음은 자신이 누구인지 비로소 깨달은 자의 눈물이다. 연계순은 그가 의열단의 밀정임을 죽음으로써 입증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 이정출은 조선총독부 경무부 국장 히가시(츠루미 신고)를 죽인다.


이 영화의 마피아 게임은 여기서 끝난 듯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여기서 영화를 마무리 짓지 않는다. 그는 게임이 끝난 뒤에 이어지는 삶에 대해서도 여운을 남긴다. 이정출은 자신이 갖고 있는 폭탄과 함께 정채산으로부터 받은 시계를 의열단원으로 보이는 학생에게 전달한다. 이 행위를 통해 그는 비로소 일본 경찰도, 의열단원도, 밀정도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홀로 외길을 걷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그의 뒷모습은 고독해 보이지만 적어도 혼란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은 결국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는 듯이.


(201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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