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혹은 생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로 한글날 다시보기

by 에디터K

이번 10월 9일은 한글이 만들어진지 570년이 되는 날이었죠. 늘 빨간날이라는 것 외엔 크게 의미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늘 연휴냐 아니냐 따져볼 줄만 알았지 그 의미엔 대해선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요. 늘 세종대왕, 한글하면 생각나는 드라마가 2011년에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에요. 한글 반포 전 7일간의 이야기를(보는 내내 그거보다 몇 배는 긴 줄 알았더니...) 미스터리하게 그려낸 사극입니다. 그래서 저는 드라마 덕후답게 한글날을 맞이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뿌리깊은 나무’를 복습해 보았습니다.

1382543541_m6wdi4JW_i1465241883.jpg (개봉박두!)


육룡이 나르샤 >>> 뿌리깊은 나무

한글 창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올해 상반기에 종영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와 ‘뿌리깊은 나무’는 일종의 프리퀄 관계입니다. 방영 순서와는 반대로 육룡이 뿌나보다 시대적 순서가 앞이죠. ‘육룡이 나르샤’가 기존의 세상(고려)를 부수고 정도전과 이성계, 그리고 이방원이 새로운 세상(조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그 새로운 세상에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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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래간만에 ‘뿌리깊은 나무’를 다시 보면서 방영 순서도 시대적 순서대로 였다면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굳이 이렇게 한글에 대한 이야기에 정도전을 나오는 이유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그려내고 있는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이들의 이유가 정도전이 만들어낸 조선의 시스템에 있기 때문입니다.


글자 = 권력 혹은 생존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막으려는 가장 큰 반대 세력은 ‘밀본’이라는 비밀 세력입니다. 극 중에서는 정도전이 만든 조직으로 정도전의 조카인 정기준이 이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세종이 하려는 일 자체를 방해하려던 것이었지만, 세종의 하려는 일이 바로 글자를 만들어 모든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인걸 알고 필사적으로 훈민정음 반포를 막으려 하죠.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과거 시험을 쳐서 선발된 관료들이 임금을 견제하는 것이 바로 조선이니까요. 극 중 정기준은 모든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된다면 임금을 견제한다는 사대부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모두 글이라는 힘을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니 조선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두고 ‘천년의 역사를 건 장난’이라는 표현을 하죠.


하지만 정도전도 머리로는 알고 있되 막지 못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관료들의 권력 독점입니다. 백성들의 소리를 임금에게 잘 전하라고 벼슬 주고 녹봉 주고 했더니 그 손에 든 붓을 권력으로 삼아 자기 맘대로 휘두르기 시작한 것. 실제로 정도전은 자신의 저서에 중국에서 한문을 쓰는 관료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백성들이 임금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고 적었다 해요.


이렇듯 사대부 양반들에게 글이 권력이었다면, 백성들에게 글은 생존의 문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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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이 돌기전에 이리이리해서 병을 예방하라고 글로 써서 벽보를 붙였지만 그걸 읽을 줄 알아야 예방을 하든 말든 했것죠. 세종은 버럭 글공부 좀 하라고 버럭 화를 내지만, 그의 백성은 먹고 살기 위해 2시간밖에 못 자고 일을 하는데 글을 공부할 수가 없다 대답을 합니다. 극 중에서 세종은 여기서 깊은 빡침에 이르러 한글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기껏 평생 동안 농사 잘 지으라고 농사직설과 기타 등등 수많은 연구를 했더니 정작 백성들은 그것을 읽을 수가 없으니 얼마나 속이 터지셨겠어요.


이렇게 그 시절의 백성들은 단지 글을 읽지 못해서, 그래서 알지 못해서 죽어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겁니다.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담아 배우기 쉬운 글자, 한글

뿌나는 이런 한글을 둘러싼 갈등뿐만 아니라 한글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한글이 왜 위대 한 지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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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담이’는 어렸을 때 겪은 일의 충격으로 말을 못 하게 됐는데, 세종은 이런 담이에게 소리가 내는 원리를 가르치면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인체구조 해부까지 했을지도 모른다고 극 중에서 그려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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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E11.111109.HDTV.X264.720p-HANrel.avi_002296029.jpg (ㅎ을 만들기 위해 해부를 통해 목구멍의 구조를 파악하는 세종)

이렇게 한글은 소리를 내는 원리는 그대로 담아 배우기 쉽도록 고안된 글자입니다. 주인공 똘복이도 한글을 익히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어요. 흔히 한글을 유일하게 만든 사람이 존재하는 글자라고 하죠. 세종은 바로 이렇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소멸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소리의 성질 그대로 형태를 갖게 만들었고, 조선인들이 실제로 내는 소리를 참고하여 만드셨죠.


(훈민정음 반포 장면)


‘배움’의 의미

‘뿌리깊은 나무’에서 그려내는 한글을 둘러싼 갈등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지금이야 글 정도는 누구나가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제 우리에겐 글을 읽는 것이 아닌 다른 형태의 ‘배움’이 또다른 사회권력이 되어있는 것 아닌지. 이미 시험을 통해 그 관문을 통과한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문을 좁히고 사다리를 걷어차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칼처럼 휘두르고. 하지만 그 배움을 소수의 자들이 권력으로서 독점하는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인지, 모든 이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배움이든 익힐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곳일지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이유를 되새겨보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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