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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Aug 29. 2021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짐을 내려놓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


나는 열등감이 참 많다. 고등학교의 규격화된 틀 속에서는 학교 성적 외에는 비교의 대상이 없었다. 거기다 희안하게도 나는 성적으로는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문제는 대학교 가서 생겼다. 


대학교 사람들의 모습은 나이, 성별, 경험의 폭, 타고난 재능 등 여러 면에서 다채로웠다. 애초에 사교적이지 않았던 나는 그들 사이에서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재주'도 없어서 의기소침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자니 외톨이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못이겨, 사람들 근처에 있으려고 맘에도 없는 모임에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5년을 그렇게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많다.


마지막 1년인 본과 4학년때는 좀 달랐다. 한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해야 해서 모두 고등학생 분위기로 돌입했다. 집과 학교 독서실을 왕복하면서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나날. 오히려 이때 안정감을 느꼈다. 밥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를 불러주는 학우들이 생겼고, 저녁에 같이 집에 가는 날에는 '끈끈한 친구'처럼 느껴져 마음이 충만했다(지금 고백한다. 대학 1,2학년때는 점심 때마다 같이 밥 먹을 친구 찾아나서는 게 큰 스트레스였다. 그만큼 사람 만나는 데 서툴렀다).


한의사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면허증을 받았다. 그리고 전남의 한 섬으로 공중보건의 배치를 받았다. 남들은 그렇게 먼 곳으로 가게 되서 고생이겠다면서 걱정을 해 주었다. 당시 서울과 가까운 거리의 충남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전남은 거리도 먼 데다가 도서지역이 많아 사람들이 기피했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 잘 적응했다. 인구가 2,3천 명 남짓되는 작은 섬. 마주치는 사람들 대다수가 60-80대. 나 같은 공중보건의 외에 20대는 눈을 씻고 찾아도 드물었다. 열등감의 화신인 내게 비교 대상이 없는 천혜의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조금만 노력해도 인정받았다. 


대학교 때는 노안이라고 놀림 받던 내가 외모로 칭찬을 받았다. 평소처럼 행동했는데, 친절하고 따뜻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초짜 한의사인데, 열심히 진료를 했더니 'OO섬 허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밖에 나가 달리기를 하고 있으면 몸 좋다는 호평이 파다했다.


이게 왠일인가? 나는 백조가 될 '미운 오리 새끼'였던 것인가? 


정말 열심히 살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굿모닝 팝스를 1시간 듣는다. 그리고 섬 한 바퀴를 조깅한다. 헉헉 대는 숨을 뱉으며, 관사로 돌아와 아침을 차려 먹는다. 그리고 9시 진료 시간 10분 전부터 진료실에 내려와 대기한다. 오후 6시 근무가 끝나면 텃밭으로 달려갔다. 고구마 밭을 가꾸고, 토마토, 브로콜리도 심었다. 농사일이 끝나면 저녁을 차려 먹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 3회씩 온라인 영어 과외를 받았다. 50분 정도 하고 나면 졸음이 조금씩 몰려온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운동복을 챙겨입고 관사에서 부두까지를 왕복하며 10km 마라톤 연습을 한다. 그리고 돌아와서 블로그에 글 한 편을 올리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시기에 따라서 어떤 일과는 사라지고 새로운 일과가 들어오는 변화는 있었지만 단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심지어 시간을 아끼려고 지인과의 통화도 이동 중에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대학교때 헛되이 흘려보낸 시간을 만회할 요량이었던 것인가? 아니다. 비교의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남들에게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계발을 열심히 해서 남들이 인정할 성과를 보여야 한다 믿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의 잠재의식은 나를 극한까지 몰아갔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나는 행복했을까? 행복하지 않았다. 항상 채우지 못한 부분에 마음이 쓰였다. 한약 공부를 하다보면 침 공부를 못 한 게 마음에 걸렸고, 일주일에 블로그 글을 한 편 쓰면 날마다 한 편 쓰지 못해서 아쉬웠다. 하루 루틴을 다 소화하다 보면 소설 읽을 여유가 없어서 항상 불만이었다. 헬스장에서 상체 운동을 하면 하체 운동 못 한 걸 문제삼았다.


이것 채우면 저게 문제고, 저것 채우면 이게 문제였다. 


그러다 3년간의 공보의 생활이 끝났다. 연이 닿아 서울에서 부원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잘난 사람이 억수로 많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나의 열등감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섬 생활이 나의 열등감을 종식시킨게 아니었다. 비교 대상이 없다보니 열등감이 나올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한의원 부원장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직접 한의원을 개원하면서도 열등감은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나를 끝없는 자기계발의 쳇바퀴로 몰아넣었다. 


너는 글씨체가 안 좋으니 글씨쓰기 연습을 날마다 해야겠어.

영어발음이 구리니 영어 과외를 받아야겠어.

남성잡지 표지모델들을 봐. 저런 멋진 가슴근육이 없으니 열심히 헬스를 해야겠어.

너는 말을 잘 못해. 그러니 말하기 연습을 꾸준히 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야. 날마다 최소 15분은 독서를 해.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반성을 위해 평생토록 일기를 썼대. 너도 일기를 쓰자.

글을 잘 써서 나중에 책을 내면 좋겠지. 그러려면 이틀에 한 번씩은 글을 쓰면서 실력을 갈고 닦아야지.

대도서관이 말하길 일주일에 적어도 콘텐츠를 2개씩 1년 반~2년을 올리면 크리에이터로 성공할 수 있대. 너도 지금부터 일주일에 2개씩 올려.

오늘 무슨 무슨 증상을 가진 환자가 왔는데, 확실하게 치료할만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거 같아. 그 분야 공부를 더 하자. 

무슨 무슨 강의가 있는데, 너가 약한 부분이니까 가서 들으면 좋을거야. 

한 달에 한번씩 독서모임을 하면, 자연스럽게 한 권씩 완독을 하게 되겠지. 모임에 적극 참여하도록 해. 

나중에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 골프를 칠 줄 알아야 돼. 골프 치는 몇 시간 동안 같이 걷고 얘기하면서 친해지니까. 미래를 위해 골프를 배워둬. 참, 실력이 늘려면 일주일에 7일은 나가야 해.


독서를, 일기를, 글씨 연습을, 크리에이터 활동을, 골프를, 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면서 자기계발에 얽매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학원 논문 제출을 앞둔 시점에 논문을 완성시키지 않고, 독서모임에서 토론할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는 살았다. 그런데 남는 게 없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의심한다. 내가 저걸 좋아서 시작했을까? 완고한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간다. 무언가를 하든 안 하든 애시당초 나랑 상관없지 않을까?  


아무리 채워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방법은 아닐 것이다. 채울 수 없다면 비워보자. 그래서 한 발자국을 내보려 한다. 그 첫 걸음을 밀어붙인 구절이 있어서 여기 인용한다. 나 같은 인간이 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했던 분들에게 자그마한 공감이 되면 좋겠다. 



여기 아주 빨갛고 예쁜 공이 있어서

냉큼 집었더니 뜨거운 불덩어리예요.

"앗 뜨거!" 뜨거운 줄 알면

저절로 놓아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덩어리를 들고

뜨겁다고 고함만 칩니다.

"놓아 버려라!" 하면

"어떻게 놓습니까?" 합니다.

"그냥 놓아라."

"그냥 어떻게 놓아요?"

그럴 때 정말 방법을 몰라서 못 놓습니까?

공을 갖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못 놓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놓기 싫은 마음을

움켜쥔 채 뜨거움만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놓아라'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하고

오른손으로 옮기라 하면 좋은 방법이라며

좋아하지만 조금 있으면 또 뜨거워집니다.

이것은 해탈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해탈의 길은 뜨거운 줄 알면 

그냥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 '법륜스님의 희망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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