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힘들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힘내, 잘 될 거야."
미안하지만, 이 말은 도움이 안 된다. "다음에 밥 한 번 먹자!"가 만남을 기약할 수 없듯이 '힘내'는 그저 지나가며 하는 인삿말로 들린다. 힘이 없는데 힘을 어떻게 낼 것이며, 잘 안 되는데 어떻게 잘 될 것인가? 해결책이 없는 덕담은 말의 태생적 가벼움을 재확인시킨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몇 년만에 운전대를 잡고 생긴 일이다. 원체 운전에 젬병인데다 오랜 기간 공백이 있어서 운전 상식이 하얀 도화지와 같았다. 내돈내산인 차를 잘 몰라서 처남에게 전화했다.
"OO야. 기름 넣을 때 휘발유 넣으면 되나?"
"앗, 아니요. 매형 차는 디젤이에요?"
"디젤이 경유인가?"
"네."
"그렇군, 고마워."
"그리고 어제 보니까 요소수가 없더라구요. 주유할 때 같이 넣으세요!"
"어떻게 넣어?"
"주유소 직원한테 말하면 같이 넣어줘요."
"아, 알았어."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기 오른편에 차를 댔다. 살펴보니 주유구가 차 오른쪽에 있었다. 황급히 차를 빼서 주유기 왼편에 댔다. '그런데 주유구는 어떻게 열지?" 다시 처남에게 전화했다.
"아나. 나 완전 바보네. 주유구 어떻게 열어?"
"그 차는 주유구 여는 버튼이 없어요. 그냥 주유구 한 번 누르면 저절로 열려요."
"그렇구나. 몰랐네."
"그럴 수 있어요. 차마다 다르거든요. 안에서 버튼 눌러야 열리는 차도 있는데, 매형 차는 보통 밖에서 그냥 열어요. 그래서 잘 모를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처남은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다. 나에겐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운전자로서 엉망진창인 사람을 별다르게 보지 않았다. 보통의 한 사람으로 봐주었다. 그럴 수 있어요. 곱씹을수록 좋은 말이다. 안도현 시인의 싯구를 차용해서 읊어본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그럴 수 있어요'라고 말해보았느냐"
(2023.3.1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