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읽다가 신선한 의견 하나를 보았다. '극단적 채식'이라는 말에 대한 비판이었다.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극단적 채식'이 문제라는 언론의 호들갑에 맞서며 필자는 말한다. '극단적'이라는 단어 뒤에는 무슨 말을 갖다붙여도 다 문제가 된다. '채식'은 건강한 식단이 맞는데,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않고 '채식'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공감했다. 예전에 미국에서 어떤 부부가 아이에게 채식만을 고집하느라 영양실조로 죽게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 아래 수 많은 사람들이 '역시 채식이 문제야', '아이들에게 어쩜 채식을??', '이래서 채식주의자는 안 돼!' 이런 식의 댓글을 남겼다. 도대체 어떤 식단이길래 하고 자세히 봤더니, 이건 채식도 뭣도 아니었다. 그냥 음식을 안 준 것이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하루에 '푸성귀 몇 잎'만을 줘서 굶주리게 만들었다면, 이걸 '채식'으로 인한 영양실조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만약 유일하게 준 음식이 '고기 몇 점'이었다면 '극단적 육식'이 되는 것인가?
그 당시 불편했던 마음을 굉장히 잘 짚어내는 시각이라 눈길이 갔다. 순간 명징해진 시각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그동안 문제의 원인이라고 넘겨 짚었던 사안들이 새롭게 보였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은 상당히 심층적이고 복잡하다. 그런데 우리는 화끈한 걸 좋아해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서둘러 원인을 찾는다.
OO기업의 실패는 무리한 확장. 이런 말을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무리한' 뒤에 어떤 말을 갖다붙여도 다 말이 된다. '무리한 인원 감축', '무리한 사업 축소', '무리한 대출', '무리한 경비 절감' 등등.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를 갖다붙여도 말이 된다. '무리한' 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가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원인은 철저한 노력. 맞는 말이지만, 어딘가 석연찮다. '철저한' 뒤에 어떤 말을 갖다붙여도 다 말이 되기 때문이다. '철저한 분석', '철저한 기획', '철저한 인사 관리', '철저한 예산 집행', '철저한 시간 투자' 등등.
우리(우리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키는 몇 몇 사람들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처럼 희석시키기 때문이다)는 이제 노력을 별로 들이지 않는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결론 내린다. 어떤 현상을 보고 깊이 분석하지 않는다. 슬쩍 흝어보고 그럴듯한 단어를 갖다붙이고 매듭을 짓는다. '빈틈없는', '타고난', '막무가내', '뚝심있는', '강단있는', '독단적인', '경직된', '무리한', '극단적인', '지나친' 등등.
과녁에다가 화살을 쏘는 게 아니라, 화살을 먼저 쏘고 거기에 맞춰 과녁을 그린다. 사람들은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가 되었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내가 가졌던 신선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번만, 한 번만 더 돌이켜 생각하길 바란다. '너무' 쉽게 결론내리면 틀린 답이 나오니까.(2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