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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troad Sep 21. 2018

나를 닮은 일

이렇게 일할 수도, 이렇게 살 수도 없을 때



지난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울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내려간 시골에서 자신들의 꿈이었던 소극장을 연 부부, 좋아하는 게 없는 이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편집자, 직장 생활과 자신만의 작품 생활을 병행하는 독립출판물 작가, 각자의 먹고사는 기준을 이야기한 작은 책방 운영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상에 집중하는 미디어 스타트업 공동대표, 로컬숍 연구 잡지 발행인, 프리랜서 디자이너, 그리고 전직 프로파일러 출신의 배우. 

모두 8명의 인터뷰이들과 나눈 대화를 녹취하고 정리하다 보니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마치 그들이 한 이야기를 제 이야기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가며 한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을 선택했고, 또 왜 그 일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선택에 후회는 없는지, 묻고 들은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시골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는 황금미영, 윤종식 부부입니다.    

    

처음 소극장을 방문했을 때 ‘이런 곳에 극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처에 아파트 단지나 문화 시설은커녕 마치 벌판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건물 1층에는 조명을 파는 가게가 있고 건물 지하에 소극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입구 벽면에 세월호 파란 고래벽화가 그려져 있고 입구를 들어서면 부부의 꿈을 담은 소극장 ‘하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장 궁금했던 점을 먼저 물었습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소극장을 연다고 해도 어렵지 않겠냐고 할 텐데, 어떻게(혹은 어쩌다) 시골에 소극장을 열게 된 까닭 말입니다. 부부는 어떤 결의를 다지며 시골에 소극장을 열게 되었을까요.     


(황금미영) ‘어차피 어려워진 거, 어차피 망한 거, 이럴 거면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어려워진 거…. 어차피 망한 거…. 그게 부부가 소극장을 선택하게 된 이유라면 이유였습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요.    

들은 얘기로는 연극을 하는 황금미영은 전 정권 시절에 문체부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음악 하는 윤종식은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하네요. 특히 국정원 블랙리스트에는 왜 오르게 되었는지 부부도 어리둥절한 일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부부는 연극하고 음악 하면서 어려웠던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음성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음성에 내려오게 된 건 먹고 살기 어려워서 살길을 찾아다닌 여정 중 하나였습니다. 


(황금미영) “저는 연극을 하는 사람이었고, 오빠는 음악을 했어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개인적인 상황으로 음성에 내려가서 장사를 하게 됐는데 우리가 원래 하던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먹고사는 게 생각보다 수월치 않더라고요. 물론 어디서든 연극을 하고 음악 하는 건 배고픈 일이지만 장사를 해봐도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아니 그럴 거면 그냥 여기서도 하고 싶은 걸 하자. 어차피 굶고 살 거’ 처음에는 그런 게 제일 컸어요.”     


그런데 내가 꿈꾸던 일이나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마련입니다. 보통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상황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고, 꿈꿨던 일을 벌이지는 않을 텐데요.   


(황금미영) “원래 꿈꾸던 일과는 다른 일들을 하면서 느낀 부분이 많아요. 단순히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내 존재가 없어지는 걸 많이 느꼈었거든요” 


(윤종식) “아마 직장을 다니면 지금만큼은 벌겠지만 그래도 힘들잖아요. 먹고 살만큼 돈을 번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텐데, 아마 다른 일을 하면서 지금만큼 힘들었으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거 같아요.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힘이 드는 거니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죠”    


어쩌면 단순히 ‘하고 싶다’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세우는 문제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무엇을 했을 때 나의 존재가치가 있는지.


이들 부부에게 소극장은 어떤 의미일까? 소극장 ‘하다’는 ‘한다’, ‘하고 있다’, 혹은 ‘저질러 버렸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다’라는 이름의 의미는?    


(윤종식) “‘하다’라는 게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의미도 있는데, 우리 둘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 부부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하다’, 이제 1년이 넘은 소극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상황인가요? 공연은? 관객은 있나요?     


시골 소극장 '하다'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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