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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an 07. 2024

글로컬리즘& 손에 손잡고

88 올림픽 순간을 떠올리면 보석처럼 빛나는 두 가지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

굴렁쇠 소년 윤태웅의 '1분의 정적',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Hand in hand)가 그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였던 김민희 기자가 어어령 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을 쓴 책 <이어령 80년 생각>에 이런 글이 실려있다. 88 올림픽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의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했던 말인데


"있잖아, 알고 한 것은 아닌데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라는 가사의 이 노래가 퍼지면서 정말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 젊은이들이 벽을 넘어서  서로 오가게 된 거라고, 정작 우리의 벽은 그대로인데"


또 글로컬리즘이란 생소한 조어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것만  고집해도, 외국 것에 경도되어서만도 안돼. 글로벌리즘(globalism)과 로컬리즘(localism)이 합쳐져야 하지. 일명 글로컬리즘(glocalism), 극과 극의 것을  배척하지 않고 끌어 안아 결합시켜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와요"


<이어령의 80년 인생> 173페이지 에서 책을 덮었다. 그리고 '글로컬리즘'과 '손에 손잡고'의 의미를 현실정치에 대입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백주 대낮 칼 질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질문이 하고 싶어졌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는 올림픽 정신이 현실정치에선 불가능한 것일까?  


88 올림픽은 동서의 결합을 도출한 최초의 올림픽인데 우리 정치는 왜 양극단의 쏠림 정치에 발목이 잡힌 것일까?


막말. 편가름, 갈라 치기. 내로남불, 비아냥, 패싸움, 조롱, 폭력, 급기야는 칼 질까지...


이런 행동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몰라서 저지른 행동이면 정상 참작이 가능하겠지만 알면서 저지른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범을 보여야 할 리더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입에서 모범을 보이라고 한들 마음으로 따를 사람이 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꽁떡이다.

말은 얼마든지 멋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멋있으려면 결과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책임지는 용기가 없다면, 멋도 없고 맛도 없는 허공으로 사라질 일시적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는 산업화를 위해 땀을 흘렸고,

진보는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바쳤다 

그렇다면 현실정치를 이끄는 정치인

국민을 위해 무엇을 바치려는지 묻고 싶다.


땀인가?

피인가?

눈물인가?

그도 아니면 거짓인가?


'너 때문 정치', '탓하는 정치'엔 희망이 없다.

왜냐하면 반드시 있어야 할 '책임'은 사라지고,  

없어도 되는 '질책'만 가득 차기 때문이다.

멋있는 정치, 맛있는 정치란

국민의 소릴 외면하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하는 언행일치 책임의 정치다.


그렇다면 현실정치는

멋과 맛이 살아있는 낭만 정치일까?

폭력과 겁박이 활개 치는 깡패 정치일까? '


손에 손잡고'의 가사처럼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는 세상이

정말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가슴 불타게 하자

하늘 향해 팔 벌려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 누리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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