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가 바뀌면, 어종이 바뀌고, 어종이 바뀌면 어선을
興亡盛衰(흥망성쇠)
흥하고 망하고, 융성하고 쇠퇴하는 현상이 순환, 반복한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다. 판이 바뀌는 길목엔 언제나 특별한 문턱, 변(變)이 있다. 이는 비단 국가나 기업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위험은 기회를, 기회는 위험을 품고 있기 때문에, “있을 때는 항상 없을 때를 대비하고, 없을 때는 있을 때를 상상하며 준비하라”는 말이 와닿는 이유다.
변(變)이란 가느다란 실(糸)과 실(糸) 사이에, 말(言)이 엉켜 ‘어지러울 련(䜌)’이 되고, 그 밑에 매질을 뜻하는 ‘攵(칠 복)’이 더해진 글자로, 어지러운 상황(䜌)이 지속되지 않게, 매질(攵)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시작과 동시에 성공하는 예는 드물다. 일이 시작되면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 중심을 잡고 일어설 수(興_일 흥) 있어야 비로소 성공의 정점(盛_이룰 성)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의 시간은 길지 않다. 그다음을 대비하지 않으면 서서히 잊히는 쇠락(衰_쇠할 쇠)의 길을 걷게 되고, 다시 잃어나지 못하면 결국 망(亡_망할 망)하는 수순을 피하기 어렵다.
은퇴 후 사외 강사 3년 차에 돌입하면서 절실히 깨닫는 것이 있다. 아무리 시장 반응이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도 3년 이상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 순간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철이 도래했다. 조직 정비는 물론 임원을 대폭 줄인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조직 구성이 바뀌고 그 안에 사람이 바뀌면 일하는 방식도 바뀌게 마련이다.
“조류가 바뀌면, 어종이 바뀌고, 어종이 바뀌면 어선을 바꿔야 한다”
물의 흐름이나 온도가 바뀌면, 그 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도 바뀐다. 그렇다면 바뀐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어선도 바꾸고, 물고기 잡는 방식도 바꿔야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얼마 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 이미 알려진 스타급 요리사의 현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온실 속 입 맛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했다면, 야생에서 온갖 풍파를 경험하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던 흑수저 요리사들은, 이번 경연을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 요리사는 이기면 본전, 지면 굴욕이지만, 흑수저 요리사는 지면 본전, 이기면 명예를 얻는 경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지나온 과거의 흔적들이다. 새내기 시절, 요리를 배우기 위해 감내했던 수모의 시간들,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영혼까지 갉아 넣어야 했던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는 점에서 흑백 요리사의 과거는 닮은 꼴이다.
자오위핑 저서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에 이런 글이 있다
“온실에서 키운 묘목은 키워봐야 섬약한 풀이되지만, 들판에서 비와 바람을 견디며 자란 묘목은 커다란 제목으로 크는 법이다”
온실 꽃은 스스로의 힘으론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태생부터 들판의 비바람을 일상처럼 경험하며 자란 야생화는 다르다. 춥고 덥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을 지켜내니 말이다.
온실 밖 3년 차 사외 강사의 길은 어지럽다. 매월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롤러코스터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엔 온실 속 화초처럼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그건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일종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 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아직도 돌짝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 많은 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은퇴 전(평지)에, 은퇴 후(돌짝길)를 대비하는 건 기본이다. 운동화를 고쳐 신는 치밀한 준비 말이다. 이를 가벼이 생각하면 돌짝길 초입부터 물집 잡힌 고통스러운 행보를 각오해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인생 2막에도 신기루는 없다. 이상적 상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변하지 않으면 도태당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