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사외 강사 3년 차에 돌입했다.
은퇴 전과 많은 부분 차이가 있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가을이다. 하는 일이 강사이기 때문일까? 보험사 출강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요맘때가 되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보험사마다 다음 연도 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콘텐츠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어떤 강사를 쓸 것인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계속 강의할 수 있어야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 사외강사 특성상 직장인처럼 고정된 소득이 발생하는 게 아닌 만큼, 강단을 잃으면 소득이 통째로 사라지니 왜 안 그렇겠는가? 마음은 평온을 원하지만 실상은 요동치는 풍파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다.
평소 같으면 강의가 없는 날엔 사무실이나 커피 전문점에서 콘텐츠를 다듬거나 칼럼을 쓰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요즘은 가까운 남한산성을 오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산행이란 이름으로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은 탓이다.
남한산성은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482.6m)이 대표적 봉우리다. 얼마 안 되는 높이지만 오를 때마다 힘들 긴 매 한 가지다. 보폭을 늦춰서 천천히 오르지만 그래도 두, 세 번 정도는 쉬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남한산성 약사사에서 첫 번째 쉼을 가졌다.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면서 물 한 모금을 넘겼다. 그리고 습관처럼 핸드폰 메모장을 열었다.
“작은 개천이나 도랑물 흐르는 소리는 사람들의 밤잠을 깨우기도 하지만, 한강처럼 큰 강물 흐르는 소리에 잠을 깨는 사람은 없다. 작은 것은 소리를 내지만 큰 것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군자는 군소리를 하지 않는다. 말이 많은 자는 지혜가 부족하여 속이 허한 소인배인 것이다.”
몇 해 전, 알라딘 인문학 코너에서 접했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약사사 벤치에 발목이 묶였다. 부끄럽지만 지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을 들킨 탓이다. 행동은 큰 강물이 흐르듯 소리 내지 않는 군자이고 싶지만, 마음은 도랑물소리처럼 곤히 잠든 누군가를 깨우고 싶은 것이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계속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이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지만,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마다 겪는 연례행사이긴 하지만, 이맘때가 되면 마치 처음 겪는 일처럼 다가온다. 이것도 직업병일까?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돈으로 환산된 결과는 모두 다르다.
환경, 업종, 직무, 능력, 인지도 등에 따라 시간의 가치가 결정되니 왜 안 그렇겠는가?
월급직은
노력과 상관없이, 약속된 소득이 발생하지만,
사외 강사는
능력이나 인지도에 따라, 소득은 천차만별이다.
월급직은
약속된 소득이 있기 때문에, 급여일이 중요하지만,
사외 강사는
약속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오늘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간은 공평해도 돈으로 환산된 가치는 달라진다.
그것이 내가 쓰는 시간이 공짜가 아니라 자산일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지나온 과정에서 평가된 결과치가 오늘 이후 나의 미래가 될 것이란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그래도 나는 계속할 수 있겠지?’라고 김칫국물을 마시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하면 억지일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내가 할 일은 다한 셈이다. 오늘 이후 내일의 나는, 지나온 시간을 평가했던 그곳에서 답을 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 것에 얽매이면 도랑물소리로 곤히 잠든 사람을 깨울 것이고,
미래의 나를 위해 차분하게 준비하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강물처럼, 더 큰 기회의 장이 선물되지 않겠는가?
[한국보험신문에 기고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