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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04. 2019

이제 더 이상, 애쓰며 살지 말아요

그럭저럭 되는 대로 살아가기 프로젝트

28년 동안 나는 소위 말하는 완벽주의자였고, 

그렇다는 사실은 타인에게서도 나 스스로도 인정하며 늘 듣고 자랐던 터라 

그 특성이 별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릴 적은 그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 말이다.

"완벽하게 잘한 다는 건 좋은 거 아니야?"


로봇도 아닌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완벽주의자라며 발버둥을 치고 사는 것이 좋다니.

커가면서 완벽주의라는 것이 스스로를 얼마나 옥죄이며 힘들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당연히 느끼곤 했지만,

반면 그것이 특별히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기에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것도 있었다.


하지만 28년이 지난 후, 

나는 더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완벽주의자이기를 떠나,

실은 너무 많은 애를 쓰며 살아온 조금은 안쓰러운 사람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으로 참 잘났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연민'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릴 적 초등학생 시절,

나는 줄곧 반장, 회장 역할을 맡으며 자라왔다.

생각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들 앞에 나서서 대장이 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원하던 대로 리더라는 역할을 짊어지고는

반에서 가장 좋은 성적과, 이미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모든 것에 노력했다.


담임 선생님이 칭찬해주는 것이 좋았고, 반 아이들이 우러러보는 것이 좋았고,

인기 많은 아이가 되는 것이 좋았고, 부모님의 어깨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방학이 시작되면 학교에서는 방학 숙제를 내주곤 했다. 

일기장 쓰기, 현장실습 보고서 내기, 방학숙제용 과제물 만들기 등등.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하기 위해 어린 초등학생인 나는 부모님을 못살게 굴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해낸 만들기 숙제의 아이디어는 모두 아빠가 구현해 내야 하는 몫이었고, 

어린 딸아이의 극성을 힘들게 맞춰내며 완성이 되면, 

나는 그 결과물을 학교에 내고 자랑스럽게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칭찬받는 '착한 아이'가 될 수 있구나.


그때부터 나는 착한 아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칭찬이라는 인정을 받으면 되는 것이라 학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욕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들이 나를 우러러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모두가 나를 부러워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욕심은 내가 가져온 결과를 내 기준에서 인정하는 것이 아닌 

남이 인정해줄 때 비로소 진정한 성공이라 생각하는 타인 바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읽었던 책에서 올바른 육아에 대해 나온 부분을 보고 나는 머리를 맞는 듯했다.

나도, 내 부모도,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부분 하고 있을 말과 행동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는 시험을 보고 엄마에게 달려와 말한다.

"엄마 나 90점 맞았어 잘했지?"

그러자 부모는 말한다.

"90점!! 너무 잘했어!" 또는 "다음에도 더 열심히 해서 100점 맞아보자!"



올바른 결과에 대한 정당한 칭찬과 격려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아이로 하여금 점수에 의해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짓게 하고

인정받게 하도록 학습되는 행위가 되며, 

이것이 지속되면 100을 받으면 잘한 착한 어린이이고, 

50점을 받으면 못한 부족한 어린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좋은 대답은 무엇일까?

"100점 받느라 고생했네."


그렇다. 

초등학생 아이도 방학숙제를 하느라 애썼고, 시험 보느라 애썼고, 

우리 모두는 오늘 하루도 살아내느라 참 많이 애썼다.

'고생했구나..'

'애썼구나...'


그래서 다시금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잘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애쓰지 말자고.

나는 나에게만 조촐하게 위로와 인정을 건네보기로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이상 애쓰며 살지 않기 위해 

28년간 완벽주의자로 살아온 아주 지독한 사람이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려 한다.


"우리 이제 애쓰지 말자, 지금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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