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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Mar 30. 2017

함께일 때 우린 더욱 빛나니까

#10.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남미 여행을 꿈꾸는 모두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곳.

어쩌면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곳.
하얀 소금 위로 깔린 잔잔한 물에 비친 새파란 하늘을 거닐 수 있는 그곳.
어떤 낭만적인 곳도 이곳에 쉽게 비길 수 없을 남미의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로 손꼽히는 바로 그곳. 

그곳을 우리는 우유니라 부른다.



조그만 지프에 다리를 구겨 넣고는 10시간이 넘도록 
울퉁불퉁하고 꼬불거리는 오프로드를 세차게 달려온 덕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유니에 다다랐다.

아침부터 고산병 약을 챙겨 먹고 물 2리터 한 병을 사들고 
두꺼운 겉옷과 단단한 신발을 챙겨 신고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오늘의 우유니 투어를 이끌어 줄 여행사로 향한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선 풍경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똑같은 풍경도 누구와 함께 보느냐에 따라 그 감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처럼

대부분 팀을 이뤄 진행되는 우유니 투어는 

그만큼 함께 할 일행들과의 케미가 주요한 변수가 된다.


특히나 한국인끼리 똘똘 뭉치는 재미가 남다르다는 말에

오늘 함께 투어를 하게 될 분들은 어떤 분들 일지, 여행은 오래 하신 분들 일지
6명인 팀원 모두가 한국분들 일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하루를 꼬박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번 여행을 하면서도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은 언제나 새로운 떨림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전혀 모르는 누군가와 

나의 하루를 공유하고,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내 여행을 공유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을지 모른다.
괜스레 먼저 다가가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괜한 경계심이 들 때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걱정보단 설렘이 먼저 앞서는 이유는 
여행이기에, 만나는 모두가 여행자이기에
적어도 여행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사이에 있어선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그 어떤 기준도 잣대도
의미가 없어져 버릴 거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겐 여행이라는 유일하지만 충분한 공감대가 존재하므로
마음만 맞는다면 여행이 아닌 그 어느 것으로도 

우리를 규정할 수 있는 건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 하나 맞는다는 건 참 쉽지 않다.


우연이라도 마음이 맞는 일행을 만났다면 
그날의 여행은 무엇보다 큰 행운이자 선물일 것이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여행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주 짧은 첫 만남에 스스륵 마음의 빗장을 열어버린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랑스러운 커플과 인사를 나누며
오늘 하게 될 우유니 투어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그간 이어온 여행의 이야기들이 주르륵 펼쳐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니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냐는 듯
우리는 이미 우리의 여행을 나눠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궁금증이 하나 둘 여행으로 채워지는 사이,
일행을 모두 태운 지프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었고
드디어 우유니 사막으로 향하는 투어가 시작되었다.
    
덜컹덜컹 소리를 내는 지프는 시원한 바람을 타고 힘차게 달렸고
그 안에서 주고받는 설렘 가득한 이야기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들은 
가득 실려온 바람과 함께 우유니에 뿌려지고 있었다.



문득 신기했다.
어떻게 우린 여행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렇게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쩜 전혀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이야기에 이토록 행복해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선 나 아닌 남이라는 존재에 인색하던 우리들이
낯선 타지에서 만나는 남에게 왜 이토록 관대한 것일까.
어떻게 우린 이토록 순수한 웃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단지 낯선 타지였기 때문일까.
단지 짙은 외로움 때문일까.   


여행을 떠나온 목적은 모두가 다르지만
떠나온 우리 모두는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의 낭만을 그리워하고,
여행이라는 시간 속에 각자 바라는 바람들을 

꽉꽉 채워 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똑같기에

그 동질감이 우리를 강하게 묶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모양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 떠나왔는지
수많은 고민과 갈등, 힘겨운 여건과 상황, 

그리고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내며 이 여정을 만나게 되었음을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느끼고, 서로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여행만큼이나 서로의 여행에 깊은 응원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용기에, 그 뜨거움에,

우리 모두는 기꺼이 건네는 따뜻한 미소로 

계속해서 서로의 여행을 다독이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쉴 새 없이 가까워지는 사이
지프는 매끈한 도로를 지나 울퉁불퉁한 소금사막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에 우리 모두는 두 눈을 의심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하고 드넓은 사막 전체가
눈이 부시다 못해 멀어버릴 것만 같은 새하얀 소금으로 채워져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아득한 지평선 끝자락까지 보이는 거라곤 온통 소금뿐이었다.

    
이내 달리던 지프가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선다.


이곳은 세상을 반으로 갈라
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아래엔 새하얀 소금의 땅덩어리가
그리고 그 사이,
넋을 놓고 이곳에 빠져드는 우리가 있었다.   


잠시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가자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좁은 지프에 구겨 넣었던 몸을 펴자 
온통 새하얀 소금으로 뒤덮인 육각형 모양의 땅과
새파란 하늘이 맞닿은 진풍경에 우리는 말을 잃는다.
    
이토록 메마르고 광활한 그리고 새하얀 소금사막을 본 적이 있을까.
아니, 감히 볼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이토록 낯설고 아름다운 광경에 우리 모두는 이내 들뜨고 말았다.
진짜 소금인지 땅에 있는 결정체를 찍어먹어 보기도 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사진을 찍기도 하고,
뽀드득뽀드득 눈처럼 밟히는 소금을 따라 한참을 걷기도 했다.   



그 사이 여러 소품을 가져다 놓은 가이드가 들뜬 우리를 불러 모았다.
이리저리 우스꽝스러운 사진들을 한참 동안이나 찍어대며 
우리는 난생처음이자 어쩌면 다신 없을 우리만의 이야기를 우유니에 채워 넣었다.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숨이 차도록 뜀박질을 해댔고
뛰어대는 심장을 붙잡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연신 흔들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어찌나 즐거운지

아무도 없는 소금사막 한가운데서 

우리는 그토록 소리를 질렀고,
환호성을 쳤으며, 수없이 뛰었고, 끝없이 웃었다.

 

웃음소리가 커져갈수록

내 마음은 더욱 세차게 뛰어댔다.


혼자 웃고 즐기던 순간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나는 우리의 시간이 

우리가 속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가는 걸 느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그렇듯 하나의 감흥을 두배, 세배, 

아니, 더없이 커다란 질량으로 부풀린다.


혼자일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둘일 때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우리의 시공간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아늑함, 설렘과 두근거림 등으로 계속해서 팽창해나갔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

그 시간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이유이다.



가이드의 불타는 열정 덕에 쉼 없이 웃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지프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영롱하게 비치는 투명한 반영을 볼 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에 

기대를 한가득 안고 도착한 곳은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비가 부족해 물이 덜 찬 우유니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천국의 모습이 아닌
조그마한 물웅덩이 몇 개를 제외하곤 

군데군데 놓인 새하얗게 마른 소금 덩어리가 전부였다.

게다가 일말의 희망마저 앗아가려는지 바람은 더없이 거세게 불어댔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자 그나마 고인 물웅덩이마저 흔들려 제대로 된 반영 하나 보기도 쉽지 않았다. 

물이 가득 차있어야 할 시즌임에도 이번 연도에는 비가 오지 않아
아쉽게도 상상하던 우유니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가이드의 말에
우리 모두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실망한 채로 앉아있던 것도 잠시, 

언제 또다시 올 지 모르는 우유니에 온 만큼

어떻게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추억을 남겨보기 위해 
의욕이 다 떨어진 가이드를 뒤로하고는 우리만의 우유니 투어를 시작했다.

색색깔의 의자들을 이쪽저쪽으로 몇 번식 들었다 나르기를 반복하고
걸어가다가 조금이라도 반영이 생기는 곳이면
서로가 한 장이라도 건져주겠다며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며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우리는 거침없이 사진을 찍어대며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뭐라도 건져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우리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겼는지, 혹은 감동을 받았는지,

결국 뒤에 있던 가이드까지 힘을 보태자 우리의 우유니는 한층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짜디짠 소금물 위에서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뛰었고

추위도 잊은 채 새로운 포즈를 찾아내겠다며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새 붉은 해가 고개를 내미는 일몰 시간이 다가왔다.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태양은 
우리의 뜨거운 열정을 닮은 만큼

우리 곁에서 아주 가까이 머물다 
다시금 서서히 산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뜨거운 일몰이란

마치 오늘 하루, 아니 그간의 기나긴 여행에서 

열심히 달려온 우리의 수고에 따뜻한 위로와 함께 

시린 손을 잡아주는 포근한 얼굴과도 같았다.


파랗던 사막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우리의 여행을 다독이던 일몰의 끝을 

우린 모두 모여 한참 동안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우린 모두 같은 생각에 잠겨있을까?
      
날씨만 보면 우유니 투어는 망한 게 분명했지만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우유니를 만났다.


시기도 날씨도 전혀 따라주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의 여행에서 우유니라는 시간은

충분히 행복하고 유쾌하고 고맙고 즐거운 한 때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은 단연코 잊지 못할 여행의 커다란 한 조각이며

다신 없을 가장 큰 행운이자 선물로 우리의 가슴속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붉은 노을이 하늘 가득 깔린 소금 사막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우린 마지막으로 덜컹거리는 지프에 올라탔다.

1시간 반을 더 달려 다시 여행사 앞에 도착하자 
날은 이미 저물어 온통 까만 밤하늘이 머리 위를 채워 넣고 있었다.


헤어지는 아쉬움에 누구 하나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던 그때,
여행사 바로 옆에 묵고 있던 일행분이 숙소에 다녀오시더니
무언가를 가득 채운 검은 봉지를 건네주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그 안엔 앙증맞게 포장된 컵라면 4개가 들어있었다.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나머지 일행들마저 짐을 챙기다 말고 문을 두드려서는
고추장과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내 손에 꼬옥 쥐어주었다.
본인들은 이제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직도 많은 날이 남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한국이 그리워지거든 두고두고 챙겨 먹으라며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건네주었더랬다.
    
여행자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양식을, 
실은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그 마음을 그들은 선뜻 건네주고 있었다.



그 마음에 나는 자꾸만 뭉클해졌다.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라는 시간동안 함께 나누었던

그 마음을, 그 인연을 쉽게 놓아버리지 않아주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고마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진실로 '함께'하고 있었다.


여전히 여행을 하면서 낯선 인연을 만난다는 사실은

어색하고 때론 불편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때론 한 인연이 여행을 통틀어 

가장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의 주인공이 되어 주기도 한다.



결국 우린 혼자라는 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오지만

결코 혼자인 순간이 여행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다.

홀로 존재하는 시간이 주는 의미를 깨닫는 순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의 온도를 여실히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요즘처럼 혼자가 익숙해져 버린 시대에
혼밥, 혼술, 혼행 등 1인 가구의 확장으로 자꾸만 혼자가 되어가는 시대에
우린 어쩌면 원하지 않는 자신을 자꾸만 홀로서기에 내모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혼자서 해내야만 하는 상황,
혼자이기에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문득문득 들려오는 작은 진심을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때일수록 어쩜 우린 누군가를 더욱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어줄 누군가를,
함께 위로해주며 술잔을 기울여줄 누군가를,
생전 모르는 낯선 곳을 손잡고 걸어가 줄 누군가를,
춥고 외로운 날, 시린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줄 누군가를,
더 절실히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혼자가 당연해질수록 반대로 우린 

내 옆에 놓인 자리의 무게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린 스스로 혼자일 수 있을 때,
더없이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

   
충분히 혼자일 수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고
누군가의 발걸음을 맞춰줄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혼자이기에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넘칠 때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기쁨이, 그 눈물이, 그 이야기가, 그 생각이,

그 뜨거움이, 그 공허함이 넘쳐나서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질 수 있다는 건 

홀로서기에 욕심을 부리던 나에겐 커다란 용기이자 고마운 위로였다.


함께여서 더욱 빛나고 행복했던, 
내가 가진 넘쳐나는 것들을 나누며 채워질 수 있었던,
함께이기에 추운 바람마저도 한없이 따스했던 

우유니의 밤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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