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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st Dec 10. 2022

오래 걸린 대답

당신은 누구와 저녁을 먹고 싶나요?


오늘 저녁. 

세상에 어떤 누구와도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와 함께 하고 싶나요?


동료에게 이 질문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 친한 친구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갔을 무렵, 잊고 지냈던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이 떠오른 순간,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며 깨달음을 얻은 과정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적습니다. 







Thank your soul

브라운아이드소울 4집 앨범 'SOUL COOKE'의 17번 트랙 'Thank your soul'. 이 노래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3개의 음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옵니다. 본격적인 음이 나오기 전, 이름 모를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는데요. 아이들의 목소리에 반복적인 음이 합쳐지는 순간이 가끔은 선명하게 들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작은 시골 학교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는 선생님이 된 듯한 착각이 들곤 합니다. 어느 누군가에게 받은 감사함을 기억하고 싶을 때, 혹은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듣습니다.


사진을 공부하면서, 언젠가는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역 무렵, 어떤 기업에서 주관하는 해외 봉사 프로그램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해외봉사를 다녀온다면 남들은 살펴볼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전역 후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해외봉사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해외봉사에 가서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가 기억납니다.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을 때면, 아이들의 눈은 선명하다 못해 빛났습니다. 누군가의 눈을 이렇게 깊게 본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푹 빠져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잠시 필름을 재장착하는 순간. 문득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식이 넘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고, 당신의 자식이 행복해할 때마다 당신도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모습에서 나의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나의 어머니. 당신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자식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했습니다. 


유년시절, 참 많이 덤벙거렸습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봤음에도 우산을 들고 가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 종이 울리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집에 가거나, 우산이 있는 친구와 함께 집에 가곤 했습니다. 우산을 챙겨가지 않은 날이 되면, 유독 학교 앞 정문에 여분의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철이 없게도, 왜 우리 엄마는 저기 없을까, 원망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서운하다며 소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를 이해하셨는지 비 오는 어떤 날. 일을 갔어야 하는 당신은 학교 앞 정문에서 우산을 들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어머니를 보면서 잊혀 가던 당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봉사를 마무리하고, 젊은 시절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해보고 싶어 앨범을 뒤져보면서 처음 깨달았습니다. 유년 시절, 당신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요.  


나는 왜 사진을 공부했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어쩌면 유년시절 당신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서, 그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의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받은 고마움을 전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이 되고 싶어, 누군가의 유년시절을 기록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 아이들의 공부방 선생님이 됐습니다. 여기서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이 기억납니다. 당신은 공부를 하기 싫어했지만, 당신은 내 옆에 있으면 그래도 공부를 금방 끝내곤 했습니다. 힘들어하던 나를 때로는 위로해주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초등학교 4학년임에도, 당신은 친구 같으면서도 때론 어른스러웠습니다. 






당신과 함께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에 1박 2일로 놀러 가기도 했습니다. 함께한 시간을 떠올릴 때면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에게 좋은 기억을 전하고 싶어 갔던 여행이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 인생의 방학 같은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가끔은 당신에게 공부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씩 내서 당신과 한강 나들이도 가고, 간식도 함께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다는 것만은 기억납니다. 헤어지고 집에 가려는 데, 당신에게 연락이 와서 고맙고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전해줬을 때, 기쁘게 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하필이면 코로나가 심해져서, 결국은 공부방 봉사활동을 멈춰야 했고, 그 무렵 저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었기에 잠시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끔 당신은 저에게 안부 인사를 전했습니다. 언젠가는 하고 싶은 도전이 잘 마무리된 후엔 고마운 당신을 찾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드디어 당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당신은 늘 그랬던 것처럼 반갑게 나를 맞이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당신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꿈이 생겼다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당신의 꿈을 진정으로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제게 주식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돈', '경제'는 조기교육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당신의 눈높이에 맞게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어요. 중학교 1학년 아이와 주식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참 낯설었지만,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하는 당신이 멋있었습니다. 만약 내년 12월까지 100만 원을 모은다면 선물을 주겠노라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헤어지는 길, 당신에게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겨 질문했습니다. 



연락해도 제대로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나를 왜 끝까지 찾아줬는가 



당신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이렇게 질문했을 때 당신은 머뭇거리며 답했습니다.



그냥,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선생님이랑 함께 하면 재밌었거든요.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당신 덕분에 저는 조금 더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당신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대의 끝을 달려가고 있는 지금. 누군가 제게 '당신은 과연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한 사람이 되었는가' 물어본다면 이 글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려 합니다. 



동료의 귀한 질문 덕분에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됐고, 잊고 지냈던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제가 받은 질문을 전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세상에 어떤 누구와도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와 함께 하고 싶나요?



좋은 질문을 전해준 당신, 방학 같은 삶을 살게 해 준 당신, 부족함 없이 바르게 저를 키워준 당신 덕분에 인생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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