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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ug 31. 2023

뒤를 본다, 가끔은

함께 안전하게 타는 법

바퀴의 축을 이루는 프리허브(freehub)란 경이로운 기술 덕분에 자전거는 페달로부터 전달된 힘을 축적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로써 자전거는 더 빠르고 편하게 전진하는 대신 후진성을 잃었다. 사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뒤로 갈 일은 딱히 없으므로 올바른 진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는 오래된 방식의 픽시(fixed gear) 자전거도 있지만, 역시 자전거의 보편적 형태는 프리허브다. 이로부터 직진성은 자전거의 숙명이자 본질이 되었다. 본질로부터 자전거는 앞을 보며 달려야 안전하지만, 여럿과 타게 되면 앞선 이는 가끔은 뒤도 돌아봐야 한다.


자전거를 혼자 탄다면 뒤를 보기보단 앞과 옆에 신경 쓰며 조심히 가면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뒤를 신경 쓰다가 불필요한 긴장과 대처로 정면의 위험요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탄다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집단 행동에 적절한 소통과 조율이 필요함은 사회의 일상과 같다. 그러나 자전거는 타는 동안 말로 하는 대화가 어렵다. 그래서 안장 위에선 여러 가지 다른 수단, 이를테면 수신호, 단어 외침, 앞 뒤 바퀴의 간격 등을 이용해 소통한다.


자전거 무리에 속한이가 물 흐르듯 함께 잘 나아가자면 서로를 잇는 무형의 끈과 가상의 당기는 힘(tension)을 잘 느껴야 한다. 가장 앞선 이가 좀 더 멀리 보고, 지면의 위험을 감지하며 달리면서도 가끔은 뒤도 챙겨야 하는 이유다. 라이더들이 모여 함께 자전거를 타며 서로 무형의 끈으로 연결된 상태란 잘 엮인 굴비와 같다. 너무 늘어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워서도 안되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달리는 집단을 자전거 세계에선 '팩(pack)'이라 부른다.


팩에선 달리는 것도 멈추는 것도 앞 뒤를 봐 가며 해야 한다. 하지만 주저함은 독이다. 팩에 속한다면, 서로를 믿고 어느 정도는 흐름에 동화되어 무리에 기댈 필요도 있다. 그리고 선두가 뒤를 가끔 챙긴다는 것은 배려, 안전, 혹은 가장 좋은 취지의 밀당(조율, 혹은 balancing)과도 같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당연한 일조차 특별하게 느껴질 만큼 오로지 직진성 그 본능에만 충실한 라이더들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자전거 인구 천오백만 시대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년기에 대부분 자전거를 경험한다. 그런데 성인이 되며 더 자주 차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다 보니 더는 일상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친환경적이고, (도둑들만 조심하면) 주차의 문제에서 자유롭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삼조인 자전거를 타는 성인 비율이 여전히 낮은 이유는 사실 도시화가 빠르게 되며 자전거를 배려하지 않고 발전해버린 도로 구조 탓도 있다. 최근엔 다행히 공도에도 ‘자전거 우선‘ 표시가 많이 생기고 있고 강과 천을 잇는 전용 길도 많아져 라이딩 환경은 점차 나아지는 추세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빠르게 늘었다. 한강에 나가보면 한 해가 다르게 라이더들이 많아진 것이 실감할 수 있다. 산악자전거, 바퀴가 얇은 로드 자전거, 접이식 자전거, 생활형 자전거 따릉이까지, 남녀노소 사람의 생김만큼 자전거의 형태도 참 다양하다. 이제는 스스로가 바퀴를 구르는(自轉) 자전거뿐 아니라 전기의 도움을 얻는 전기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도 많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고도 많아졌다. 자전거와 보행자 간 충돌이나 자전거끼리의 충돌, 차와의 사고와 함께 레이싱 등 스포츠의 영역에서도 사고가 빈번하다.


얼마 전 있었던 큰 규모의 자전거 대회에서도 한 성인 참가자의 안타까운 사망사고 소식이 있었다. 사고 상황은 전방에서 마주 오던 차와의 충돌인데 경쟁하며 달리는 대회 특성상 앞서고자 하는 욕심에 중앙차로를 넘어서는 무리한 추월을 한 탓이다. 무리한 경쟁심리, 그리고 미숙한 판단이 부른 참사다.


스케이트와 수영, 클라이밍 등 신체 특성상 동양인은 불리하다 여겨졌던 각 종목들도 스타 선수들을 배출하며 강호로 등극한 우리나라지만, 자전거는 여전히 글로벌 무대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동호회를 중심으로 자전거 스포츠가 인기다. 그들만의 리그에 열광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자생하는 우리나라의 자전거 생태계는 조금 독특한 편인데, 경쟁을 즐기고 열정 많은 국민 특성 때문인지 늘어나는 자전거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아마추어 로드 자전거 대회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거의 모든 대회에서 크고 작은 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사망도 빈번해 대회가 중단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아마추어 라이더 수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미 성숙한 라이딩 문화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여러 운동을 경험해 봤지만 사실 자전거처럼 시작이 어렵고, 일단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 강한 중독성이 있는 종목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달리도록 만들어진 로드 자전거에는 특히 거부하기 힘든 카타르시스가 있다. 바로 속도에 대한 욕심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닌 묘한 경쟁심리와 내가 타고 있는 로드 자전거의 스피드 본능이 만나 증폭된 충동. 그것은 앞선 라이더를 앞지르는 것이 가장 짜릿하다는이들이 더러 증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잘 모르고 있다. 빠르게 달리는게 더 잘 달리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건 의외로 간단해도, 여럿과 조화롭게 안전하게 타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은 경험'이었다고, 오랜 경험의 어느 능숙한 리더와의 라이딩을 마친 누군가가 말했다.


적지 않은 시간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자전거에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여유. 시야가 좁고 위험에 대처가 어려운 코너나 내리막에서 무리하게 추월하지 않고, 뒷사람 사진은 좀 한적한 도로에서 찍어주고, 무엇보다 가끔은 뒤를 보며 너무 무리한 리딩을 하지 않고 등등 ... 그것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고 사고 없이 안전하게 돌아오는 최선의 리딩이자 라이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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