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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r 16. 2023

그런 모임, 저런 사람

자전거 동호회를 열다 (2)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티가 난다'


할머니즘 가득한 따스한 가족 드라마 속 대사와 같은 저 말을 떠올리자니, 감성적 일상은 사치적 이상임을 깨닫게 된다. 요즘은 난 사람도 금세 잊히게 마련이라고, 애써 합리화하며 오늘도 동호회장은 문제성 회원을 내보낼지 말지 고민한다.


반기는 것 보다 매몰차야 하는 것이 더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매너, 배려, 그리고 스타일. 자전거 실력이나 장비의 수준보다 이런 문화적 요소들이 더 중요한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과하게 경쟁하지 않고, 평이함과 도전의 상반된 모습이 잘 어울리는 멋진 사람들과 자전거를 함께 타고 싶었다.


그래서 동호회를 직접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름부터 짓고 한 다음 일은 원래 알던 이를 초대하는 것이었다. 가지도 너무 휑하고 외로우면 새가 들러 앉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몇이 바로 가입을 해 주었다. 그리고 간단한 회칙을 마련했다. 이 시점에 바라던 것은, 첫 느낌 좋은 그런 자전거 벗이 찾아주는 것, 그뿐이었다. 그리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매우 기뻤다.


이후 회원은 매일 한두 명씩 꾸준히 늘었다.  그리고 모임 개설 한 달 만인 어느 봄, 벚꽃이 막 움틀 무렵에 첫 모임을 열었다. 참여한 열 명 남짓의 사람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가다가 긴장해 길을 잃기도 했다. 원래 알던 이들은 괜찮다 했으나, 모르던 이들 중 일부의 작은 한숨 소리가 크게 들리는 느낌이었다. 첫 모임은 반드시 의미 있는 길일 필요는 없는데, 처음의 의미를 담아 괜히 새로운 길로 모험을 했나 후회도 했다. 그날 이후 한 명이 모임을 나갔다. 미숙한 모임 리딩 탓인가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과한 애정


한 번에 스무 명 남짓 대규모 인원이 함께 하고 나서 최대 참석인원을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여러 라이딩 모임이 이어졌고, 10월 즈음엔 총 모임 횟수가 80회 정도가 되었다. 몇 번에 불과했지만, 한 달의 모임을 정리하는 뉴스레터 형식의 온라인 매거진도 발행했다.


과한 애정이었나 싶기도 하다.


TEP 매거진 4월호 표지



리더로서의 어려움 정도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매 번의 모임 마지막에 마시는 커피의 보상은 여전히 냉온탕을 오가는 듯한 개운함을 선물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주로(主路)를 이탈할 때 발생한다. 마치 길을 달리는 자전거처럼.



#관계 피로도


시즌 (4월 - 9월) 사이 회원이 100명에 육박했다. 사람이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친하고 덜 친한 '관계'가 생기며 이런저런 구설도 들려왔다. 주로는 이런 내용이다.


타인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은 주로 스스로의 이야기만 했다. 질문도 맥락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대문에 '나이와 이름을 묻지 않습니다'라 했는데, 처음 보는 자리에서 그들은 타인에게 더 나아간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회원 간의 갈등도 들려왔다. 서로 누가 더 잘못했네 하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몇을 내보내야 했다.


오픈 채팅룸을 자신의 일기장처럼 사용하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있건 없건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그들에 의해 다수는 피로함을 느끼는 듯했다. 크게 우려할 문제는 아니라 여겼지만,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궁금하지도 않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해당 채팅방의 알림을 끄거나 이탈했다. 이들로 인해 서로 안부를 묻거나 정보를 공유하던 다수가 점점 조용해졌다. 그래서 마침 비시즌을 맞아 모임의 채팅방을 닫고, 새로운 시즌 채팅방을 열며 이런 문구를 공지했다.


이것만 ‘ㄱ’.

 - 모두의 공간입니다.
 - 사생활, 개인정보, 주제와 연관 없는 정보, 타인 비방, 비속어, 기타 부적절한 발언 자제 부탁 �


컴퓨터와 같이, 쌓인 캐시(catch)를 지우고 환경을 정화하는 데에 파워 오프와 온은 언제나 효과가 있었다.



#그럴 거면 혼자 타지


모임 특성상 오프라인에서의 질서 유지는 안전에 필수이다. 안전이 보장되어야 여럿이 편안하고, 신나는 라이딩이 즐겁게 마무리될 수 있다. 회원 중 다수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기간에 관계없이 여럿과의 모임에 참여하면 질서를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런데 스스로가 익숙한 길이라서, 느린 진행이 답답해서, 아직 배도 안 고픈데 식사를 하자고 해서 등 여러 이유로 모임의 진행을 방해하곤 했다. 선두의 후방에서 갑자기 추월해 누군가 보니 우리 팀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차가 지나는데 혼자 라인을 바깥으로 이탈해 팀이 위험할 뻔한 적도 있었다. 출력파워를 보며 가장 느린 이에 맞춰 주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앞으로 나와 점점 빠르게 달리는 BA(break away - 무리 이탈)로 인해 때문에 일행 중 몇이 멀찍이 떨어지게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두 쪽난 팩이 아니라, 즐겁자고 모인 이 시간 잠시나마 불편하고 불쾌했을 몇몇 회원들의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



#빠삐용


더는 가망이 없는 지구를 뒤로하고 제3의 행성을 찾아 떠나는 우주선에, 엄선된 선하고, 진실되고, 배타적이거나 이기적이지 않은 이들만 모아 태웠음에도, 시간이 지나며 우두머리, 정치가, 반역자, 선동자, 폭력배, 사기꾼, 혁명가가 있는 대중(大衆) 생겨나며 단순한 집단이 '사회'로 변하는 모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빠삐용'의 줄거리이다.


사람의 성향과 그들의 어울림, 그리고 생겨나는 사회의 문제는 언제나 그들 각자의 상대적 개성에서 발현한다. 동호회는 소사회(小社會)가 맞는 듯 하다. 그 사회 속에서 누군가는 리드하고, 누군가는 따르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억울해하고, 누군가는 불쾌하고, 누군가는 전하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게 됐다. 물론 많은 이들은 사려 깊고, 새로운 이를 반기며, 스스로를 낮추고, 내부의 분위기를 살폈다. 구설과 갈등은 그 균형의 추가 한쪽으로 많이 기울 때 생기는 잡음이거나, 커뮤니티의 일상이었다.



#적당한 거리


모임이 거듭될수록 이 사람 저 사람 좀 더 가깝고 친한 이도 생기고, 그 과정에서 동호회란 소 사회의 질서도 조금씩 알아갔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보는 이들이 반갑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그 사회 자체에 몰입하거나 집중하지는 않으려 했다. 마치 하나의 팩을 이뤄 주행하는 자전거 사이의, 바퀴 한 두 개를 넘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거리가 필요한 것 처럼.


나이를 서로 묻지 않으니 하대(下待)가 없고, 하대가 없으니 꼰대도 없고, 그로 인한 불편한 상대도 없게 된다. 그런 정도의 거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확보한다. 좀 더 알아갈 시간, 조금씩 다가설 시간, 마음의 문을 열어도 많이 눈부시지 않을 그런 충분한 적응의 시간을.






다 식어 향이 날아간 커피에 남아있는 씁쓸함이 그렇듯,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다 좋을 수는 없다. 그리고 모임을 이끈다는 건, 나눠 들기보단 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흥미로운 경험이지만, 자전거라는 탈것의 매력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을 무릅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모임을 운영하지 않는 것이 덜 스트레스받고, 덜 피곤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해야 하는 이유는, 해를 지나도, 비 시즌에 모임을 잠시 멈춰도, 모두 함께 만드는 문화에 공감하고 언제든 다시 함께 달릴 수 있는 이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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