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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r 15. 2023

작은 바람

아버지의 두 번째 낙차

또각또각.


이 소리는 대체로 딱딱한 실내를 힐(high-heels)이나 구두를 신고 걸을 때의 의성어이다. '격식'에서 '멋과 실용'으로 변한 오피스룩 트렌드에선 통굽 구두보단 스니커즈(sneakers)가 인기라 자주 들리진 않지만, 여전히 이 소리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걸음 소리 정도다. 그런데 지난 주말의 이 소리는 다소 거슬렸다. 자전거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께 신발을 벗어 드린 후, 로드 자전거용 클릿슈즈(cleat shoes)를 일상복에 신고 병원 복도를 불안하게 걸어 다니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처음


로드를 타고 여행하는 멋진 경험의 시작은 아버지였다. 자신의 힘으로, 가장 빨리, 최대한 멀리, 함께 달리는 매력을 알게 됐다. 자전거를 사고 처음 한강변에서 페달을 구르던 느낌이 생생하다. 부드럽고, 빠르고, 오른쪽으로 비키기보다 '지나갈게요'를 더 많이 하게 되는 신기한 탈것이었다. 주로는 아버지와, 또 가끔은 혼자 해가 뜨거나 지는 방향으로 달렸다. 함께 서울 동부의 고개를 누비고, 여의도를 지나 서쪽 뱃길을 달리고, 며칠 휴가를 내고 남쪽 끝 바다가 있는 여수로 자전거를 타고 며칠에 걸쳐 여행한 것도 그 시기였다.


기억하기 싫은 아찔한 사고의 첫 경험도 아버지였다. 내리막에서의 낙차(자전거 사고)로 양평의 어느 병원으로 실려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몹시 놀란 어머니와 동생을 동행해 차로 부리나케 달려갔었다. 바퀴로부터 이탈한 타이어로 더는 바닥을 움켜쥐지 못하게 된 자전거는, 스스로와 아버지를 내리막 코너길에 내던졌다는 전말이다. 이 사고로 몸 한쪽 거의 전체를 거즈로 덧댄 반 미라가 된 아버지를 본 어머니는 크게 놀랐고, '그래도 뼈는 괜찮대!' 라며 웃는 아버지를 보고 어이없어하셨다. 엉망이 된 자전거를 들고 병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남편과 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지나던 고양이가 돌아볼 정도로 혀를 쯧쯧 차셨다.



닫히지 못한 문


소식이 평화를 깬 곳은 날씨 좋던 토요일 오전 영화관이었다. 놀라울 만큼 예쁜 영상미를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이 한창 전개 중이던 그때, 아버지와 같이 자전거를 타러 간 동행 중 한 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웬일이지 싶었으나 받지 않았다. 스즈메가 한창 재난의 문을 발견하고 그걸 닫으려 여행을 떠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참조) 받지 않은 첫 번째 전화 이후, 두 번째 전화가 걸려오자 묘한 기분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관에서 나와 전화를 받자 발신인으로부터 들려왔던 첫마디는, 역시 불길한 예감은 예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렇게 이어졌다.


"아버지께서 낙차해 많이 다치셨어요" 


스즈메가 재난으로 위기에 빠져버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첫 번째 문을 닫기도 전에, 영화관 문을 밀치고 나와 그대로 차에 올랐다.


다행히 구급차에 있던 아버지와 통화가 됐다. 의식은 멀쩡하신 것 같았다. 천호동의 한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는 아버지는, 그 와중에 자전거 걱정부터 하신다.


"광나루 한강공원으로 가서 자전거 좀 찾아서 싣고 가"


자전거를 찾아 병원으로 가겠다며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어머니께도 연락드렸다. 바로 달려오실 일은 아니니 아버지 상태 보고 연락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못살아 정말!"


어머닌 예전보단 덜 놀라신 듯했다.



광나루.


서울의 한강 남단에서 자전거를 타고 동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곳은 무려 '자전거 공원'이 있고, 자전거 용품의 성지로 불리는 천호동이 가깝다. 곳곳에 한강 조망이 좋은 잔디밭과,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배우기 좋은 광장이 있어 가족 단위의 자전거 나들이 장소로 유명하다. 그래서 로드 자전거는 물론 무수히 많은 종류의 자전거가 이곳을 지나거나 머문다.


광나루 자전거공원에 도착해 자전거 대여소에 찾아가자,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익숙한 녀석이 눈에 띈다. 핸들이 반쯤 꺾인 로드 자전거와 한쪽 면이 완전히 닳아 손상된 헬멧을 보며 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돼 걱정이 커졌다. 대여소를 지키는 분께 사정 설명을 하자 자전거를 내어준다. 그걸 끌고 근처에 주차한 차로 가 조심스레 실으며, 역시나 많이 다친 이 녀석도 잠시 위로해 줬다.


광나루 한강공원에서 아버지가 이송된 강동 성심병원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 십여분을 달려 도착한 병원은 주말이라 그리 복잡하진 않았다. 1층 로비에서 응급실로 가 보았으나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몇 발자국 옮기자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환청인가, 싶었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걸어가다가 조금 전 보다 조금 더 또렷하고 명확하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였다. 휠체어에 탄 어색한 모습에 못 알아본 것이다. 몸 여기저기 거즈로 덧댄 반 미라 상태의 아버지는 부상 상태가 양평에서보다 더 심해 보였다. 이번엔, 한쪽 팔을 다른 팔로 받치고 이렇게 말하셨다.


"팔이 덜렁덜렁 거려!"


어이가 없어 잠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을 잇지 못했다.


'라파(rapha)'도 이날은 '아파'로 보임



경험의 딜레마


"어쩌다 그러셨어요?"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약간 내리막에서 방지턱이 있었는데, 잠시 딴생각하다가 몸이 붕 떴어"


탄식이 절로 났다. 여럿이 사고에 휘말려 더 큰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인가, 갈린 헬멧이 지켜준 아버지의 의식이 다행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불행인가.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수도 없이 다녔던 길이라 그런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너무 명확하게 그려졌다.


헬멧을 써야하는 이유


언젠가, 다른 이들과 모처럼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나갔는데, 일행 중 한 명이 길에서 벗어나다 뒤따라오던 로드 자전거와 부딪혀 사고가 난 일이 있었다. 로드 라이더는 본인이 더 피해를 봤다며 나무라며 몰아세웠고, 따릉이를 탔던 지인은 거듭 '미안합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앞서 가느라 그 상황을 잘 보지 못했던 터라 처음엔 지인이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라이더의 구동계 기어 상태를 보니 분명 과속을 위한 변속을 했던 것 같아 그에 대해 물었다.


"반대편 차선으로 추월 중이셨어요?"


잠시 후, 그분은 '피차 많이 안 다쳤으면 이렇게 마무리하시죠'라며, 자리를 떴다. 


경험이 쌓이면 사고의 그림이 쉽게 그려진다. 그로부터 어느 정도의 예방도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경험은 방심이란 위험의 씨앗을 심기도 한다.



사고 함수


행인, 차, 자전거, 그리고 길의 장애물들은 속도와 무리(pack)의 수 총합에 더하고 곱해져 위험이 된다. 그 총량은 '부주의'를 만나면 제곱으로 커지고, '주의'를 기울이면 반제곱으로 덜어진다. 로드 자전거를 탈 때는 언제나 이와 같은 사고의 위험이 도사린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단순 보행보다 더 큰 것도 사실이다.


레저로써 자전거의 인기가 높아진 요즘 주행 중 사고 소식이 더 빈번히 들린다. 특히 인기가 더 높아진 사이클 대회에서의 사망사고 소식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도로, 타인, 주최 측 이외에 정말 사고의 원인은 없는 걸까? 과감의 감(敢)은 두려움을 무릅쓰는 의미이고, 높은 결실(果)엔 큰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설픈 익숙함은 언제나 미숙함보다 더 나쁘다.





작은 바람


모임에서 ‘말뚝선두’라는 단어는 늘 아버지를 수식하는 말일 정도로 아버지는 언제나 앞서 달리는 라이더였다. 열두 해 전부터 로드를 타왔던 아버지에 의하면, '속초 껌 사러'도 아버지가 이끈 속초 원정대가 시초라 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리 믿으며 아버지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몇 해 뒤 아버지를 앞질러 먼저 남산 정상에 오르게 된 적이 있었다. 성취가 기쁘기보단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북악 길은 아버지 뒤를 지켰다. 더 천천히, 세월의 무게만큼 더 우직하게 오르시는 아버지 뒤를 따라 점점 기어 단수를 낮춰 중력을 버티면서도, 이렇게 느리게라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편안하다 여겼다. 가끔이라도, 딱 이렇게 더 오래 아버지와 함께 달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바람이 더 생겼다. 상처가 다 낫고 나면 다시 안장 위에 오를 것이 분명한 아버지와 함께 어느 휴일 늦은 오후 남산을 오르고, 좋아하시던 이태원 브런치카페의 슈니첼과 양송이수프를 먹으며 쉬는 그런 멋진 날이 벚꽃이 지기 전 찾아오기를, 노을이 예쁜 잠수교를 건너 익숙한 길을 산책하듯 달릴 수 있기를, 아름다운 일들이 흐려지다 사라지고 또 다른 사건들로 채워지더라도 갑자기 끊기듯 멈추게 되지 않기를, ….


아버지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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