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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r 10. 2023

그런 모임, 이런 의미

자전거 동호회를 열다 (1)

"쓸데없이, 그런 걸 뭐 하러?"


'동호회를 만들어 볼까?'라고 하자 친구가 말했다. 애초에, 동호회가 쓰임새의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건 꽤 귀찮은 일일 것임은 분명했다. 지금도 우리 어머니는 자전거 타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사서 고생을 뭐 하러 하냐'신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당장의 보상보단 쓰일 신경과 들일 시간이 더 많으니, 자전거를 타는 일이든 동호회를 만드는 일이든 '사서 고생'은 맞는 듯하다.


더군다나 하려는 건, ‘자전거를 타는 동호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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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건 동호회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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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두 해 만에 처음으로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다. 회사의 사내 동호회였다. 사내 동호회는 회사에서 지원되는 예산도 있었고, 회원 연령대는 달랐지만 얼굴은 다 익숙한 분들이라 관계에 크게 불편함도 없었다. 그렇게 활동에 참여를 하고, 가끔 모임을 이끌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주 있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시즌 한 달에 한 번 꼴로 모임이 열렸다.


모르는 이들이 있는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한 것은 그로부터 한두해 뒤의 일이다. 요즘 인기가 많다는 ‘소ㅇㅇ’ 플랫폼에 존재하는 그 모임에 아는 분의 초대로 나갔었고, 기존 멤버들이 편하게 대해줘 바로 가입을 했다. 모임 리더가 참 믿음직스럽고 호감이 가는 분이어서 좋았다. 그를 닮아서일까,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좋은 문화가 매력적인 모임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서로 몰랐던 이들도 자전거라는 취미 하나로 가까워질 수 있구나 싶었다. 함께 타는 즐거움을 그렇게 알게 됐다. 하지만 즐거운 기간은 오래지 않았다. 모임의 리더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되며 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후임을 정해 모임을 이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마치 문을 연 자가 떠나기 전 깔끔하게 정리하고 문을 닫는 듯한 마무리까지 참 멋져 보였다. 지금도 그 동호회와 리더는 닮고 싶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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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른 동호회의 모임도 초대를 받아 참여하고, 또 직접 찾아 가입도 해 봤지만 좀처럼 열심히 참여하려는 열정은 생기지 않았다. 가끔의 참여가 휴식이라기보단 긴장과 스트레스, 혹은 그 묘한 언저리였다. 친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선 묘하게 어떤 장벽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남자라서’라고, 다른 지인이 농담처럼 말했고, 스스로는 ‘설마’ 하고 생각했다.


일부 커뮤니티에는 이런 가입 조건들이 있었다. '미혼만', '~00년 출생', '타 모임 모임장 및 운영진 가입 금지' 등, 일부 이해는 되면서도 전반적으론 납득하긴 힘든 가입 제한이었다. 그중 압권은, '남자 마감'. 이거, 성 역차별인가? 싶었다. 자전거는 아니지만, 다른 종류의 동호회 중에는 가입 시 제출해야 하는 가입인사 양식에 개인정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가입자의 나이와 성별은 물론이고, ‘키’, ‘직업’, ‘연인/결혼 유무’, ’구와 동까지 적는 구체적인 거주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테마를 가장한 사교모임들을 보면서, 동호회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누구든, 당연히 의아할 것이다. 질문을 할 용기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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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同) 즐거움(好)을 공유하는 모임’이라는 의미인 동호회는 영어 ‘커뮤니티’로도 많이 쓰인다. '커뮤니티(community)'는 '함께, 나눈다'는 의미인 라틴어 코뮤니스(communis)의 발전형이다. 즉, 커뮤니티는 '함께 나누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그 동호회, 혹은 커뮤니티들은, 함께하는 이들과 무얼 나누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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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여러 동호회의 가입 조건에서 모임의 목적이 ‘즐거운 취미를 함께 하는 것’만은 아닌 듯 보인다. 물론, 동호회에서 함께 나누는 것이 활동의 즐거움일 수도, 그걸 매개로 한 ‘만남’ 일수도 있다. 동호회에선 둘 다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요도의 경중은 모임의 문화에 가깝다. 하지만 본질을 벗어난 가입 조건과 양식에 의해, 신입 회원은 가입할 때 한 번, 가입 후 활동에서 여러 번 기존 멤버들에게 나를 ‘투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소개해야 하며, 기존 멤버들은 가입 시 한번, 그리고 활동하며 여러 번 그를 평가할 기회를 가진다. ‘가입’이라는 이벤트와 별개로, 모임에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는 다른 기회와 조건으로 정해지는 셈이다. 그 사이 빈번한 갈등과 반목, 불신은 관계에 균열을 만들고, 긴장이나 스트레스의 원흉이 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과한 것들을 묻지 않았고, 새로운 이가 낯섦을 최소한으로 느끼도록 대하고, 기본적인 매너만 갖추면 언제든 동행으로 받아들이던 그 첫 동호회가 그리웠다. 그 동호회는 ‘자전거’라는 주제와 ‘함께’라는 취지가 균형잡힌, 가장 본질에 가까운 모임 같았다. 나를 일부 내려놓아야 온전한 모습이 되는 커뮤니티처럼, 들르는 이들이 어떤 목적을 가졌든, 가면을 썼든 안 썼든, 결국엔 같이 타는 자전거의 즐거움을 알고, 나누고, 때가 되면 목적지로 각자 또는 함께 나아가는 그런 동호회였다.


‘그런 자전거 모임을 한번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커피 이름을 딴 이 모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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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이름을 묻지 않는다'.


오래전, '열정에 기름붓기'라는 소셜 살롱에서 내세운 이 표어를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열정’과 ‘함께’라는 본질 이외의 것들엔 최대한 관심을 끈다는 의미였다. 모임에서, 많은 경우 우리는 타인의 됨됨이 보다 직업, 인성 보다 외모, 자전거 브랜드, 획득 고도, PR(퍼스널 레코드: 기록)이 더 주된 관심사였고, 대화 주제였다.


…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의 기존 집단은 새로운 사람에겐 아성과 같고, 나의 모든 것을 ‘투명함’이라는 명분으로 요구당한 채 낮은 자세로 꺼내놓아야 합니다. 권위적으로 보이는 모임의 ‘원칙’ 아래 말이죠. 문제는, 이러한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것에 성별, 나이, 외모, 직업, 사는 곳 등 민감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왜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 (중략)

우리 모임은 나이와 직업과 같은 개인적인 것들을 묻지 않습니다. 만나서도 상대방의 나이가, 직업이, 성별이 취미를 함께 하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더 가까워질 분들은 서로 어차피 다 알게 되는 것들이라서요.


모임을 열며 게시판에 적었던 내용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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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서 유별나게, 서로 공감하며 대화가 쑥쑥 이어지고 걷잡을 수 없이 맥락의 가지를 뻗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즐거움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이들이 모여 만든 사내 동호회가, 오랜 시간 뒤에도 관계로 남아 서로 가끔의 쉼(,)이 되기도 한다. 그런 동호회에서 만난 인연을 오래 뒤 다시 만나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열정과 동기를 얻기도 한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LP같은 그 시기에 대한 그리움을 마주하기도 한다.


경험상 그런 모임은 규모가 빠르게 커지지 않는다. 겉의 화려함도 없고, 이성 교제의 콩닥거림도, 새로운 이에 대한 가자미눈도 드물다. 다만 주제에 충실한 활동과, 거기에 몰입하는 멋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고, 어느덧 신뢰 깊은 관계가 생겨난다. 그리고 모르던 사이, 모두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하해 주는 ‘커플’이 탄생되기도 한다. 만나면 쉬쉬 숨기다가, 헤어지면 어느 하나는 반드시 나가는 그런 연애의 결말이 상대적으로 적다.


모두, 진정성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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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치가 더 중요한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그런 모임을 선호할 수도, 이런 철학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긴 본질에 더 가까우려 하니, 자전거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같이 타며 공감하는 것이 우선인 사람들을 편애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모임을 열었고, 이제 일 년이다.


이 모임이 지금 이 시점에 그 본질에 가까운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대중적인 그저 그런 모습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동호회를 운영한다는 것이 쓸 데는 없을지 몰라도, 그에 대해 ‘쓸 이야기는 너무 많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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