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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y 19. 2023

세상에서 제일 비싼 화살표

브랜드 로고 속 화살표 이야기

※작가의 주관적 해석과 견해가 담긴 글입니다.



"나 어디로 향해요?"


화살표가 묻자, 브랜드가 답했다.


"의미를 가리킨다면, 어디든 상관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바나나


독특한 기획으로 관심을 받은 이탈리아의 설치미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 ‘코미디언’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다.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비스듬히 붙여둔 황당한 기획의 이 작품은 해외에서 12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억 5천만 원 이상의 거금에 팔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라 불리게 되었다. 그걸 어느 행위예술가가 먹어버린 사건으로 작품은 더 유명해졌다. 당시 미술관과 작가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한국의 전시장에서도 최근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대학교의 한 예술학부 재학생은 전시된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버리고, 다 먹은 빈 껍질을 벽에 다시 붙여두는 해프닝을 만들었다. 국내외 언론에도 보도되며 알려진 이 사건에 대해 미술관과 작가는 역시나 문제 삼지 않았다. 코미디언은 ‘개념 예술’로서 바나나가 사라져도 그 가치는 여전하다고 본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염두하고 작품을 기획한 듯도 보였다.


'Comedian' by Catellan (bbc.com)


작품 훼손의 두 사례가 서로 다른 것이 있다면, 행위예술가는 ‘배가 고파서’가 이유였고 서울대학교 재학생은 ‘이런 것이 예술이라면 벽에 빈 껍질을 붙이는 것도 예술’이라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학교 축제에서 해당 학생은 벽에 바나나를 붙이고, 이를 떼어먹고 빈 껍질을 붙이는 이벤트를 열며 참여하는 이에게 ‘예술가 증서’를 수여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이 학생의 의도가 조금은 드러난듯 보인다. 그의 이런 행위가 겉으로는 '권위 의식에의 도전'이었다고 알려지나 실상은 창작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어긋난 표현은 아니었을까? 카텔란의 코미디언이 예술작품인 이유는 세상에 없던 개념이라는 ‘창의’와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경험’, 그리고 바나나로 대표되는 대기업 독점 무역의 비평의식 등 여러 사람들의 고민과 해석이 부여한 추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 카텔란은 다른 창작자, 미술업계 종사자, 그리고 관객을 존중했고 자신의 예술 행위를 위해 그들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았다.


작품을 훼손한 학생이 지인을 통해 언론에 간접 제보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이런 행위로부터 유명세를 얻는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걸 비슷하게 따라 하고 이를 풍자한다고 권위에 항거하는 독립 예술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권위의 상징이라기엔 너무 파격적이다.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요즘 화제인 Open AI의 인공지능 플랫폼 Chat GPT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Chat GPT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사람의 창작은 끝났다’고 우려와 놀라움의 반응을 보였다. 작가의 시각에선, 그 빠르고 거침없는 작업속도에 질투도 났다. 실제 챗은 사실에 근거해 문장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정 주제로 창작을 명령하면 나름의 결과를 내놓는다. 하지만 여러 결과들을 보니 창작의 영역에서 사람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의 가장 핵심가치인 ‘창의’, 즉 의미의 창조가 결과물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미(意)를 뜯어보면 마음(心)이 있다. 그리고 마음은 사람만이 갖고 드러내 표현한다.


의미란 단어 속엔 '마음'이 있다


비즈니스, 특히 브랜드의 영역에서도 의미는 중요하다. 어떤 브랜드는 간단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으나 제품 자체가 워낙 유명해져 의미가 더해지는가 하면, 많은 시간과 자본을 들여 만들었지만 그만한 의미를 품지 못하는 브랜드도 있다. 브랜드를 이루는 것, 예를 들어 이름, 슬로건(표어), 로고, 캠페인 중 시각적으로 가장 중요한 로고 디자인은 완성의 과정에 정석이 없다. 로고 디자인도 Chat GPT처럼 몇 가지 키워드로 거의 무료로 만들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좋은 브랜드는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여기, 화살표를 사용한 기업의 로고들이 의미를 창조한 사례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화살표


화살표는 특별한 기호가 아니다. 화살표는 국제 표준이고 보편적이며 방향을 가리키는 용도로 일상 속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살표에는 방향, 정확, 변화, 이동, 해석, 대체, 이해의 의미도 있으니 기업 서비스의 상징으로 사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특히 이 두 가지 로고에서, 화살표는 역사상 가장 큰 가치로써 존재하게 된다.


95년 아마존(Amazon)은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했다. 로고에 큰돈을 들이지 않으려 아마존은 첫 알파벳 A를 로고로 디자인했다. 사업이 크게 성장하며 로고는 재 설계되었고, 심벌을 제거하고 슬로건으로 ‘지구에서 가장 큰 서점’이 추가되었다. 이후 아마존의 사업이 확장되며 지금의 거대 물류를 갖춘 커머스 사업모델로 거듭난다.


아마존 브랜드 히스토리 (creativosonline.org)


2000년에 이러한 사업의 본질을 반영해 지금의 로고가 탄생한다. 로고의 포인트는 마치 싱긋 웃는 듯한 노란색 곡선 화살표다. 화살표는 브랜드 속 a부터 z까지 이어지며, 인터넷 쇼핑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


a와 z를 잇는 로고 속 화살표


페더럴익스프레스(Federal Express)는 1990년대 당시 다소 일반적이고 딱딱한 이미지의 브랜드가 고민이었다. 우리나라의 ‘우체국’과 비슷한 이름이지만 사설 물류 비즈니스인 페더럴 익스프레스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라는 혁신적인 물류모델로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도 가장 빠른 배송을 제공한다는 가치가 로고에 온전히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이로부터 회사는 그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브랜드 리뉴얼을 결심한다.


페덱스의 이전 로고들


1991년 페더럴익스프레스는 그 이름을 줄여 ‘페덱스’로 브랜드명을 변경하고 로고도 다시 디자인한다. 하지만 그 로고는 오래 사용되지 못한다. 그로부터 4년 뒤, 브랜드 디자인을 맡았던 Lindon Leader는 9개월의 긴 시간 동안 끈기 있는 연구를 통해 지금의 로고를 탄생시켰다.


페덱스의 로고는 사람의 심리를 고려한 색상과 네거티브 스페이스라 불리는 빈 공간을 활용해 '물류의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다섯 개의 알파벳 조합에 담았다. 눈에 띄는 Ex는 이전(move), 밖(exit), 신속(express)의 의미다. 연방을 넘어 전 세계를 빠르게 잇는다는 서비스의 비전이 이름에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 로고가 아직까지도 가장 창의적이고 모범적이고 놀라운 디자인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E'와 'x'사이 숨겨진 화살표다. 화살표는 속도, 정확성, 목표 추구에 대한 끈기, 완벽, 그로부터의 고객 만족을 의미한다. 이 화살표는 쉽게 드러나진 않지만 확실하게 존재하고, 의식의 심연에 깊이 자리잡는다.


페덱스 로고 속 화살표


아마존과 페덱스의 로고 속 화살표는 공통적으로 기업이 이야기하고싶은 서비스의 가치를 나타낸다. 그리고 얼핏 보면 잘 알 수 없도록 교묘히 숨겨두었고, 그 좁은 공간에 함축적 의미를 크게 담았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디자인 요소라도 완성물에서 의도한 의미를 다 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페덱스의 로고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런 로고를 갖기를 원했던 국내 스타트업의 물류 서비스 ‘부릉’ 이야기다.



조금 아쉬운 화살표


부릉(Vroong)은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의 서비스 브랜드이다. 바이크의 엔진 배기음에서 유래한 이 브랜드는 짧은 역사에도 여러 번 디자인 변화를 거쳤다. 현재 사용 중인 브랜드는 오랜 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의 결과다. 기획부터 완성, 브랜드 적용까지  1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브랜드 리뉴얼의 결과에 대해선 이런저런 평가가 많지만, 부릉은 결국 동경하던 화살표를 로고에 넣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화살표가 페덱스의 로고 속 그것과 같은 수준의 가치를 품는다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부릉 로고의 전과 후


화살표는 로고 속 두 번째 R의 자리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 화살표는 어딘지 어색하다. 온전한 'R'로도, 화살표로도 불완전해 보이고 조금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이 로고를 처음 접했을 때 아마존이나 페덱스의 경우처럼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지 못했다. 왠지 불편한 느낌은 화살표의 방향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화살표를 표현해야 했기에 사람의 자연스러운 시선 흐름까지 고려하지는 못한 듯하다. 부릉의 화살표는 좌상향 구석 모퉁이(kitty corner)를 가리킨다. 모퉁이에서 우하향으로, 물류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의도도 엿보인다. 성장은 보통 우상향으로 표현하고, 좌상향은 얼핏 우하향(하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시각 디자인에서 사람의 시선을 고려한 소재 배치는 좌에서 우를 원칙으로 한다. 페덱스와 아마존의 로고 속 화살표는 모두 오른쪽을 향한다. 그렇다고 화살표가 강조되지도, 히든 스페이스를 통해 숨겨지지도 못했다. 의식의 심연에 자리잡기엔 너무 드러났고, 강조하기엔 많은 이들이 화살표라 생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부릉의 리브랜딩 과정을 살펴보면 이 미완의 아쉬움을 조금은 이해해볼 여지가 있다. 페덱스로부터 감명을 받은 경영진의 의지로 정해진 ‘화살표를 반드시 넣을 것’이라는 주문, 더 현명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내부 우려의 목소리로부터 귀를 닫은 PM, 그리고 늘어지는 작업 스케줄에 더 치열하게 최초 의도를 설득하지 못한 외주 제작사 등 여러 이유들이 어설픈 화살표를 만나 지금의 결과를 향했으리라. 때로 작품의 결과는 창작자의 의도를 스토리로 조금 무리하게 엮어 완성시키기도 한다. 브랜드나 디자인 이외의 영역에선 '합리화'의 과정으로 그것을 한다.




창의(創意)란 단어 속에는 ‘의미(意)’가 있다. 그리고 의미에 가까워지는 과정엔 깊은 고민과 고찰이 필요하다. 그러니 브랜드 PM(project manager)은 단순히 그 작업을 위한 일정 관리자가 아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건너고 넘어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여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아마존과 페덱스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완벽에 가깝게 의미에 도달한 좋은 로고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니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사용해도 퇴색되지 않는다. 잘 된 브랜드는 또한 확장성도 남다르다. 브랜드 확장엔 모(母) 브랜드의 든든한 의미적 지지가 필수다.


그런 로고는 화살표가 언뜻 보이지 않아도, 소비자의 시선을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



메인 이미지: Unsplash의 Zain Sal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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