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니스트리 Sep 03. 2023

전환 스위치

“저희가 지금 많이 급하거든요, 앞에 비행기가 연착되어 다음 것을 못 탈지도 모르는데 먼저 심사를 받을 수 없나요?”


한 시간 남짓의 환승 여유시간 중 연착으로 30분이나 까먹었으니 다음 비행기 보딩시간이 임박해 경유지의 입국장에서 무척 애가 타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옆에 있는 사람은 회사의 상사이고, 지금 상황은 출장 중이다. 여행이라면 이 또한 에피소드가 될 수 있겠으나 지금은 한 치의 오차가 심각한 문제가 될지도 모를 위급 상황이다.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줄을 서세요.”


긴 줄의 맨 뒤를 가리키며 고개를 젓는 사람은 공항 직원이다. 그런 너희의 사정은 내 알바 아니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독일의 공무원다운 답변이었고 딱히 반박할 논리도 없었다. 이럴 땐 인정에 호소해야 하는데, 표정과 말투에서 더는 그 장벽을 넘어설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체념하는 우리를 본 한 노부부가 손짓으로 자신들 앞으로 오라고 했다. 공정하고 합리적이지만 다소 건조한 시스템이 만드는 감정의 균열은 사람들의 선의가 채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고마운 배려가 도움이 되어 무사히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무사했지만, 낯선 곳이라서 더 어색하고 다급했던 전환의 경험이다.


전환(transfer).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변화하거나 나아가는 이 과정은 원활하게만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변화가 되고 거칠다면 고통이다.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자전거를 탈 때도 전환이 필요하다. 근전환이라는 이름의 운동 스킬은 지형과 운동 강도에 따라 체력 분배로 더욱 효율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해 준다. 사람의 근육은 부위마다 속성과 형태가 다른데, 크게는 속근과 지근으로 나뉜다. 속근은 순간적인 힘을, 지근은 오랜 지속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역도선수는 속근이, 마라톤선수는 지근이 유용하다. 자동차 엔진을 빗대자면 고출력 저효율과 저출력 고효율의 차이 정도랄까. 사람마다, 그리고 훈련의 방법에 따라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의 근육은 속근과 지근 둘 다를 포함하며 스위치를 켜고 끄듯 선택적으로 맞는 근육을 사용할 수 있다. 자전거의 경우 약간의 자세 변경과 힘을 주는 포인트의 변화로 전환이 가능하며, 오랜 시간 장거리 라이딩을 해야 한다면 사용하는 근육의 안배가 체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물과 자전거와 두 다리의 레이스인 트라이애슬론 경기에는 수영에서 자전거, 자전거에서 달리기로 종목 전환을 하는 바꿈터(transfer range)가 있다. 하나의 종목이 끝날 때 다음 종목으로 전환하기 위해 체크-인 체크-아웃을 하는 시간도 전체 경기 시간에 포함되므로, 기록이 중요한 경쟁 경기인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는 바꿈터에서의 전환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써야 할 근육의 경직을 풀어줄 시간 여유가 부족하므로 선수들은 바로 다음 종목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근육 전환의 고통을 겪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몸이 적응한 이전 단계로부터의 기억 삭제에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전환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운동에서의 근전환도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르고, 공항에서의 환승도 기다리거나 다급해져 녹록지 않다. 그래도 모든 물리적 전환은 적응하고 기다리면 풀릴 일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관계, 인연, 경험, 실수 등 많은 삶의 기억 들 중에서 매끄러운 전환을 위한 최선의 삭제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뒤를 본다, 가끔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