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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Sep 12. 2023

넘지 말아야 할 선

베를린의 자전거 문화

"여기 자전거 도로예요, 옆으로 비켜요!"


독일 베를린에서 보도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날벼락같은 외침에 화들짝 놀라 비켜섰다. 외침의 발원은 자전거에 달린 바구니에 아이 둘을 싣고 달리던 아주머니와 뒤를 따르던 아저씨다. 인도 위 얕은 경계석으로 구분된 길을 지나던 그들은 보도를 가리키며 지나간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이내 걷던 곳이 자전거 도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전거가 그런 보행자를 알아서 피해 가다가 오히려 불확실한 동선 때문에 충돌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큰 소리로 알려주는 최선의 조치를 한 셈이다. 무엇보다, 그로 인해 여행자가 앞으로는 낯선 도시의 질서를 알아서 조심하게 되지 않겠는가. 경고해 준 라이더 가족이 고맙기까지 했다.


이후 듣자 하니 독일에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자전거 도로'에 대한 의식이 확실하다고 한다. 경계석을 밟고만 있어도 지나가며 뭐라 하기도 한다고. 우리는 때로 '선을 넘는다'는 말을 감정적 침범을 표현할 때 쓰지만, 이들에겐 자전거도로를 걷는 것이 선을 제대로 넘는 행위인 셈이다. 베를린은 자동차 도로 위에 경계선을 그려 구분하거나 널찍한 보도 위에 따로 경계를 마련하는 등 자전거 도로가 많은 비율로 지정되어 있어 도심에서도 자전거를 타기 좋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캐나다도 환경이 비슷했다.



캐나다 밴쿠버도 자전거를 타기 참 좋은 도시다. 도로도 넓고, 대부분의 도로에 자전거 전용 길이 마련되어 있어 차와 간섭 없이 달릴 수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자전거를 탈 때 첫 기억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잠 깨! (wake up!)

이 것이 캐나다 자전거도로에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렇게 해석했지만, 사실 '정신 못 차려?!' 정도의 다급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점포에서 막 자전거를 빌려 타고 나설 때, 자전거 도로 위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휴대전화의 지도앱을 켜고 보며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다른 라이더가 경계를 넘고 있던 내게 이렇게 경고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무리 천천히 가더라도 전방을 보지 않고 자전거를 탄 것은 졸며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고개는 푹 숙이고 스마트폰 화면만을 보고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힐뻔한 경험,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있지 않나. 그 상대가 자전거이고, 더군다나 나도 자전거를 탄 상태라면 대형 사고의 위험이 아주 높아진다. 마주 오던 라이더는 그걸 경고한 것이다. 잠 깨라는 말에 처음엔 다소 황당한 기분이었으나 이내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었다. 자전거를 탈 때 집중하지 않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임은 분명했다.


캐나다 밴쿠버는 자전거의 도시다


밴쿠버와 베를린, 두 도시의 자전거 문화를 접하며 우리나라는 아직 이 분야의 발전과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차와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가 간섭 없이 서로 배려하는 문화는 시스템이나 인프라뿐만이 아니라 시민의 건전한 자아와 건강한 인식이 만드는 합리적 질서가 선진 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두 도시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시민의 묵시적 합의는 생각보다 견고해 만약 그걸 모르는 이를 발견하면 누구든 나서 경고하고 일깨워준다. 그래서일까, 요즘 흔한 휴대폰을 보며 걷는 일명 '스마트폰 좀비'가 이들 거리엔 상대적으로 적었다.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아마 도로 위 좀비를 의식 세계로 이끌지 않고 그저 피해 갔을 것이다. 그들의 충돌을 다음 기회로 잠시 미뤄주는 셈이다.



언젠가 출퇴근용으로 이륜차를 살 때 점포 사장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차선과 신호를 잘 지키면 사고 날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버스나 택시는 조심하세요. 오토바이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거든요"


사실 한국에선 오토바이가 곡예하듯 요리조리 위험을 알아서 피해 가야 하는 것이 풍토인 것은 알고 있었다. 차는 차대로 그런 오토바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 우선도로 표시는 자동차 운전자에겐 의미 없는 도로 위 장식이거나 '갓길 주차 가능'사인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일부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도로 교통 흐름의 방해꾼 정도로 여긴다. 자전거뿐만이 아니다. 비보호 건널목에 보행자가 서 있어도 그저 먼저 지나기 바쁘다. 해외를 경험해본이가 있다면, 대부분의 문화선진국 시민들은 사람이 보이면 신호와 관계없이 우선 차를 세운다.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서래마을을 지나다 보면 좁은 이면도로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서서 차와 눈치게임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미 '한국사람 다 된' 그들은 한국 비보호 건널목에서 어떻게 길을 건너야 하는지 이미 익숙한 듯하다. 기특하기보단 미안해진다. 그런 그들이 보여 차를 멈추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길을 건넌다. 그들 나라에선 당연한 일이 한국에선 감격과 감사의 이벤트가 된다. 화답하면서도 씁쓸하다. 휘황찬란한 신식 도시의 인프라가 왠지 허전한 것은 우리 도로 위 결여된 약자 보호와 상호 배려의식 때문이 아닐까.


베를린의 자전거 도둑들은 자전거 주인을 배려해 자물쇠를 끊지 않고 나머지 부위만 알뜰히 분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베를린은 일부 신시가지를 제외하곤 참 낡은 모습이다. 보도블록도 낡은 돌을 그대로 고쳐 쓰거나 부분 부분 수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덕지덕지 지저분한 느낌은 아니다. 나름의 정취도 있다. 무엇인가를 새로 지을 때 신중하고, 한 번 지으면 오래 쓰는 개발 문화에 시민의 의식이 더해진 유럽의 도로는 매 년 뜯고 덮고 덧대고 고치지만 정작 자전거도, 보행자도, 전동 킥보드도 맘 편히 달리지 못하는 길이 대부분인 우리의 사정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어린이 보호, 노인 보호, 자전거 우선 등 도로를 세분화하고 단속과 법규를 강화하더라도 좁혀지지 않는 차이는 아마도 대중의 인식과 의식에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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