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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Feb 08. 2022

연봉 협상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작년에 우리 회사에 기여한 기여도가 얼마라고 생각해?"

"많죠, 블라블라.." "사장님, 지금 연봉 3000인데 올해 3400으로는 올려주셔야 해요"

"원래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급작스럽게 올릴 이유가 있어? 회사 사정도 어렵고 이 정도로 하자"


좋좋소에 나오는 연봉 협상의 웃픈 한 컷.

현실 드라마라고 극찬을 받는 이 드라마에서 뼈 때리는 한컷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장의  연기 아닐까.


연봉협상은 언제 하는 겁니까?


우리 회사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사장님의 발연기를 볼 필요 없이, 매년 연봉 통지를 받는다는 것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15년째 어떤 협상도 없이 연봉 통지를 Onw-way로 받는다는 것도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어느 해는 회사가 수익이 좋았지만,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아껴야 한다고 하였고, 또 어느 해는 진심 회사가 적자가 나서 동결이라고 하였다. 이전 선배들은 과장에서 차장으로, 차장에서 부장으로 진급을 할 때 갭 상승의 기쁨이라도 누렸는데, '평등한 직장 문화' 정착이라는 순수한 목적으로 회사가 직급체계를 평준화시킨 이후 그런 갭 상승도 없어져 버렸다. 3월이 되면 날아오는 연봉 통지서에 늘 수긍해야 한다는 피동적 처지가 달갑지 않다.

 

그런 달갑지 않은 '연봉 협상'의 시즌이 다가오면서, 온라인 직장인 게시판과, 후배들의 티타임이 후끈거리고 있다. 오랜만에 블라인드를 들어가 보니, 몇 시간만 보면 각 회사마다 연차별 계약 연봉과, 성과급이 백만 원 단위까지 다 알 수 있게 정보가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늘 현재 나의 상황에만 집중하며 살다 보면 알 수 없었던, 혹은 잊고 있었던 불편한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위를 바라보면 한없는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주위를 돌아보면 '그래도 중간은 하잖아'라는 비겁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연봉이라는 것은 내가 내 직업의 이유를 명확히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한없이 흔들리기 좋은 도구인 것 같다.

 

연봉 상한선에 도달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내 일을 좋아한다. 나와 일하는 동료들이 좋고, 퇴근 후의 삶과의 밸런스를 잘 지킬 수 있는 회사의 상황에도 만족한다. 그럼에 연봉은 2순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년 앓는 소리를 하고, '당신은 이제 Senior잖아'라면서 평균보다도 더 짠 인상률을 안겨주는 회사가 밉긴 하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인 것 같다. 물론, 이미 채울 만큼 채운 경력 때문에,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운 엉덩이가 날 묶어두고 있다는 점도 부인은 못하지만.

 

하지만 수년 안에 목도할 '연봉 상한선 도달' 문제는 다른 고민을 안겨줄 것 같다. 직급체계 평준화를 하면서 회사가 만들어둔 더 고약한 제도가 '직급 별 연봉 상한제'였다. 먼 이야기일 줄 알았던 이 제도가 지금과 같은 고약한 인상률로도 3~5년 뒤면 내게 현실로 다가올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을 잘 받게 되면 - 연봉 인상률이 높아질 테니, 상한선에 도달할 시간은 더 빨리 다가올 '아이러니'한 제도다.


연봉 상한에 도달하면 어떤 기분일까. 난 아직 40대 중반도 되지 않았는데, 퇴직을 앞둔 선배들처럼 매년 동결되는 연봉에 만족하면서까지 이 회사를 다녀야 할까. 그때도 일의 만족도와, 믿음직한 동료들과, 충분한 워라벨이 내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을까. 그때 가서 급하게 주위를 살펴봤지만, 더 무거워진 체급에 움직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걱정에 걱정이 앞선다.


오래 다닌 자 = 무능력자

EBS 비즈니스 리뷰에 출연한 김나이 커리어 엑셀레이터가 'MZ세대들은 왜 떠나는가'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기성세대로서 여러 가지 뼈 때리는 내용들이 있었다.


Mz 세대들은 한 조직에서 오래 일하는 것을 무능력의 지표로 생각한다. 예전의 40~60대 세대들이 회사에서 충성하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지금 당장 승진하거나 지금 당장 연봉이 오르지 않아도 미래 어느 시점에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나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Mz 세대는 회사에서의 충성과 희생이 아니고 나 스스로 갈고닦은 경쟁력이 나를 지탱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사님의 생각이 MZ 세대들의 생각을 모두 대변할 수도 없고, MZ 세대의 생각이 전적으로 맞다 틀리다를 판단하기도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나 역시 그간의 오랜 회사 생활을 '지금 손해 보더라도, 미래에는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애사심과 충성심으로 지켜내 왔다는 점. 그런 우직함이 누군가에는 미련함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점.


우직함에 더하여, 요즘은 뻔뻔함도 나잇살과 함께 늘어나는 것 같다. 연차가 비슷한 동료들과 차를 마시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틸 것이냐 이다. 이제 우리 연차에 이직은 어렵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아이들도 중학생쯤 되었으니, 육아의 종착역도 손에 잡힐 듯하다. 고등학교 졸업하려면 6년 남았네요.. 대학교까지 보내기는 힘들겠죠..라는, 수동적  모습이 이제는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직을 생각하기 어려우니, 이 회사의 퇴직은 곧 은퇴로 생각되고, 그 이후는 마치 FIRE 족과 같은 장밋빛 노후가 있으리라는 근자감 장착은 필수템




연봉 협상의 시즌이 돌아온다. 늘 그렇듯 메일 한통으로 올해의 품삯을 통보받겠지만, 이 시즌 덕분에 3인칭 관점으로 나의 처지에 생각해 본 이 글에 의미를 두자. 인생의 2막을 준비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간. 나이에 비하여 사회에서는 조로 한듯한 내 인생에 맞춤 설계를 해야 한다. 인생의 1.5막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내게 남은 3년의 시간 동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1.5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하루하루와, 막연한 FIRE를 꿈꾸며 존버 하는 하루하루는 다를 것이기에.


김나이 강사님의 마지막 질문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회사가 아니라, 나로서 서야 한다. 회사가 아니라 나로서 명함에서 수식어를 다 떼고 회사 이름 지우고, 팀이름 지우고, 직급 다 떼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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