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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Jan 13. 2023

자리 배치와 권력의 상관관계

조직 생활에서 그 직위의 권한을 보여주는 것 중에 '자리'만큼 직관적인 것이 또 있을까. 아무리 사무 공간이 좁아졌다고 해도 윗분들의 방은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는 C level은 당연히 널찍한 방을 사용하시고, 그 아래로 연구소장, 상무의 순으로 방의 크기가 줄어든다. CTO님은 대회의실, 소장님과 상무님은 중회의실급. 상무 트랙을 가지 않았으나, 고유 연구 역량이 인정받는 'fellow'의 경우에도 독방이 주어지는데, 이분들에게는 소회의실 정도의 크기가 주어진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독방'을 가져야겠다는 것이 '어렴풋한' 목표가 되었는데, 아마 저런 계급 사회에서 주는 위화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팀장급으로 내려오면 모두 같이 사무실에서 생활하지만 '배치'에서 급을 나눈다. 팀장은 보통 맨 창가자리, 파트리더는 그 앞자리, 그다음부터는 선임 차장부터 막내 사원 순으로 복도 쪽으로 배열을 한다. 역사를 따져보면 이런 자리 배치는 프랑스의 한 교도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감시'가 쉽게 하기 위하여 교도관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순차적으로 죄수들을 배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역사를 떠나서 이러한 자리 배치 방식은 확실히 서열 구분이 되고, 권위적이다. 리더의 모니터는 늘 보호되어야 하고, 그 자리는 멀어야 하는 법. 그나마 우리 회사는 팀장 이하 자리는 나란히 앉기 때문에 양호하지만, 회사에 따라서는 학교 교실처럼 앞 뒤로 앉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막내 사원은 하루 종일 여러 선배들이 본인의 모니터를 감시한다는 압박 속에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자리 배치가 서열화되면, 조직적 관리는 쉬워지지만, 소통은 어려워진다. 래서 그 조직의 자리 배치를 보면 조직의 소통력과 건강함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무실 자리배치만이 아니다. 회의실에서의 자리 배치나, 회식에서의 자리 배치에서도 일맥상통한다. 회식 자리에서 으레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모두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리더는 100% 말씀이 많으시다. 건배사도 해야 하고, 일장 연설도 늘어놓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집에 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 불통 회식으로 흘러간다.


이제는 많이 유명해진, 2011년 알카에다 제거 작전 당시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 주제하의 회의 모습. 회의실의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합동특수작전 사령부 마샬 준장이었다고 한다. 그 회의의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가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이 사진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늘 보는 우리 청와대의 회의 모습과는 다른 결이 느껴지지 않는가?




12월 회사의 정기 조직 이동 발표가 난 후로, 조직 재정비에 따른 자리 이동이 있었다. 같은 층 내에서의 이사이지만, 팀원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큰 일이다. 일 년 간의 자리 배치가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리 배치는 늘 연차 순으로 결정되는 관례를 작년부터 바꾸었다. 리더라고 반드시 경치 좋은 창가 자리에 앉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 창가 자리를 고집하는 순간 구성원들과의 사이에 유리벽이 세워지고, 우리 간의 대화가 단절되는 경험을 많이 해왔다. 작년에 처음으로 제비 뽑기를 하여 자리를 정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제비뽑기르 하자고 제안했지만, '복도 끝 정수기 자리가 배정되면 어쩌나'라는 걱정도 지울 수는 없었다. 지난 10년간 늘 안 좋은 자리만 앉았는데, 이제는 내가 좀 좋은 자리 앉을 차례도 된 건데, 굳이 이래야 하나..라는 고민도 있었다. '다행히도' 정수기 자리는 피했고, 팀 정 중앙이 내 자리가 되었다. 앞뒤양옆에 후배들이 포진하여 앉은 채 1년을 보내보았다.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팀 내부에 대화가 훨씬 많아진 건 명백한 변화였다. 멤버들이 나에게 업무에 대하여 물어보는 것들이 많아졌고, 나도 주변에서 멤버들끼리 하는 이야기에도 자연스레 참여를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덤으로 그들의 '커피타임'에도 종종 끼어서 같이 수다 떨 수도 있었다. 이까짓 자리가 뭐라고 그렇게 노땅 자리를 고집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재밌는 일이다. 일 년 사이에 이렇게 생각이 말랑말랑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리 팀을 제외하고 우리 층의 모든 팀들은 아직도 모두 프랑스 감옥과 같은 레이아웃을 선호한다. 가끔 옛 동료들이 지나가다 나를 보면, 왜 거기 앉아 있냐고 물을 때가 있지만, 나는 이런 말랑거릴 사고를 얻게 됨이 좋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올해의 제비 뽑기는 정수기 자리가 되기를 원했다. 센터에 앉아있으니 소위 '소통'이 잘되는 것은 좋은데, 멤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오니, 도통 내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더라는 문제가 생겼건 것이다. 정수기 자리면 어떠랴. 팀에서 리더랍시고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고, 우리 멤버들과 함께 하는 게, 소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직장 생활의 낙인 것을 뒤늦게나 알았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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