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이용하는 가다. 바꾸어 말하면 눈부신 일상생활은 결국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몰입의 즐거움, 마하이 칙센트미하이'
새벽에 일어나면 몇 가지 습관을 꼭 지키려 한다. 공복에 물 한잔 마시기, 몇 번 안 되더라도 스트레칭 하기, 마음에 들어 담아 두었던 글귀 필사하기, 일기 쓰기, 책 읽기. 5가지를 다 하려면 한 시간은 넘게 필요하지만, 늦잠의 유혹에 못 이겨 30분 밖에 시간이 없더라도, 한두 가지만 하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5가지 중에는 필사하기와 일기 쓰기가 가장 좋아하는 순서이다. 사각거리는 만년필로 한 글자 한 글자 노트에 적어내려가면, 그냥 읽을 때보다 마음에 각인이 잘된다. 일기를 쓰면서 어제의 행동을 반추하면, 부끄러운 순간이 많다. 하루를 겸손하게 시작하기 좋은 방법이다.
'나만의 해빗'으로 새벽을 채우고 나면, 비로소 아침이 시작된다. 두 아들과 와이프를 깨우면서, 슬슬 하루의 시동을 건다. 당근과 오렌지, 사과를 꺼내서 다듬어서 네 사람의 아침이 될 주스를 내린다.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하니, 치아바타와 햄, 치즈, 그리고 루꼴라나 로메인도 준비한다. 아이들 물통에 물을 채워주고, 간단하게 오트밀로 아침을 먹는다. 등교는 시간을 조율할 수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모든 동작의 박자가 빨라진다. 씻고 씻기고, 입고 입히고, 먹이고, 설거지 하고, 침구 정리를 하고 나서 집을 나선다. 아이들과 와이프를 모두 늦지 않게 내려주었고, 출근길에 마실 커피를 내렸고, 점심도 든든하게 준비했다면, 성공적인 아침이다.
회사가 집과 가깝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외부조건'이다. 특히 자동차로 Door to Door를 이동할 수 있다면, 출근길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서 좋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음악을 들으며 출근을 하기도 하고, 영어 강의를 들으면서 출근하기도 한다. 가끔은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며 출근하기도 한다. 회사 가는 길에 잠시 차를 주차하고 커피를 받을 수 있는 스타벅스를 하나 발견했다. 새벽과 아침을 부지런히 움직인 날에는 큼지막한 벤티 사이즈로 오늘의 커피를 한잔 사는 호사도 부린다.
회사는 지난 일 년간 조용하다. 내가 할 일은 내가 정하는 편이고, 매일, 매주, 매달 그 일을 하면 된다. 정해진 스케줄이 있고, 변칙적인 변수가 별로 없는 편이다.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없고, 사고를 쳐서 수습해 줘야 하는 꼴통 같은 후배도 없다. 내가 계획한 실험을 잘 수행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토론하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직은 재미있다. 가끔은 수다를 떨 수 있는 동료들도 있다. 자율 근무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아서, 하루 한두 시간 정도는 일을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있다.
점심시간 한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서 쓰고 있다. 한 시간이면 영어 숙제 한 챕터를 끝낼 수 있다! 동료들이 식당으로 이동하고 나면, 아침에 준비해 온 샌드위치와 음료수, 컴퓨터와 에어팟을 챙겨서 내가 좋아하는 빈 회의실로 이동한다. 듣고 읽고 말하고 쓰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동료와 잡담하면서 서로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과 바꾸어야 하는 기회비용이 있지만, 당분간은 나 자신에 집중하려 한다. 지금 안니면 더 이상 배울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아이들을 챙기고 출근한 덕에, 오후 근무 시간이 더 긴 편이다. 동료들이 다 퇴근하고 남아서 한두 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데,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불 꺼진 사무실에 혼자 스탠드를 켜고 앉아 있으면 고3 때 독서실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날들이 있다. 하루 종일 매달려도 끝내지 못한 보고서들을 이 시간에 보통 마무리 한다. 후배들이 보기에는 '늘 집에 안 가는 선배'로 보일 수 있지만, 어떠랴, 내가 떳떳하면 되지.
저녁 7시쯤 되면 막내가 꼭 퇴근 시간 체크를 한다. 성가실 때도 있지만, 어느새 전화가 안 오면 섭섭하기도 한다. 8시나 9시까지는 집에 들어가서, 재빨리 집안 청소를 하고, 아이들 챙길 일이 없는지 확인한다. 첫째는 이제 해내야 하는 학업량이 많아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 어렵지만, 막내는 아직 자유로운 영혼이라, 같이 보드게임을 할 시간이 있는 편이다. 간단하게 야식을 준비해 놓고 식탁에 앉아 열 살 아이와 두뇌싸움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새 지나간다. 11시부터는 두 아이를 재우려는 것에 집중 해야한다. 잠들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은 미꾸라지 마냥 빠져 다니고, 요 녀석들을 잡아다가 침대에 눕히는 일은 정말이지 고도의 집중력과 이해심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12시에 나도 잠들려면 열심히 해야지.
하루가 너무 짧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두 시간이 고작이다.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밖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4시간을 어떻게 잘 쪼개서 써야 하는지는 늘 숙제거리이다. 되도록 재빠르게 행동하고, 멍 때리는 것과 같이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이 정도면 풍족한 외부조건이고, 오늘의 눈부신 일상은, 지금의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