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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Jan 17. 2023

아빠의 체취

육아를 하다 보면 해를 거듭하면서 졸업하는 과제들이 있다. 돌쟁이 아기일 때는 그렇게 젖병 씻는 게 귀찮았다. 그것만 졸업하면 살 것 같았는데, 막상 지나고 나니 기저귀 처리가 너무 귀찮았다. 기저귀만 떼고 나면 다 키울 것 같았더니만, 밥먹이는 게 또 만만치 않더라. 시간이 지나 혼자 밥을 먹게 되니, 이제는 옷도 좀 혼자 입었으면 싶고.. 그렇게 레벨 업하듯이 하나하나 육아 미션을 클리어하고, 이제 십 년 차 아빠에게 남은 마지막 미션은 재워주기이다. 큰애는 이맘때쯤 이마저 졸업시켰는데, 막내는 영 끝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막내의 잠자기 리추얼이 좀 독특하다. 인형을 워낙 좋아해서 침대에 누울 자리 주변에 인형을 가지런히 배치해 놓고, 눕는다. 눕기 전에 꼭 확인하는 것은, '오늘 아빠는 옆에 앉아 있을 거야? 누워 있을 거야?'이다. 처음엔 당연히 옆에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님을 눈치챘다. 침대가 좁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가끔 옆에 같이 누워 있으면 꼭 등을 돌려 눕는다. 본인은 이게 더 편하다고 주장하는데, 언젠가 엄마랑 자는 아이를 보러 들어갔더니, 둘이 꼭 껴안고 자는 것을 목도했다! 같이 자자고 한건 본인이면서, 안아주면 싫다고 하고, 굳이 등 돌려 눕는 이 아이의 심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냄새였다.


이거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내 나이 오십, 육십이 된 것도 아닌데, 홀아비 냄새가 난다는 것인가. 나름 깨끗한 사람으로서 제때제때 샤워도 하고, 청결히 산다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냄새가 좀 난다 해도 그렇지, 제 아빠 체취에 그렇게 등을 돌릴 수 있단 말인 겐가.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와이프가 한 술 더 뜬다. "애들이 자기 냄새 싫어하는 거 여태 몰랐어?" 연초부터 커플이었던 배갯잎을 다른 색깔로 갈아 끼우고, 절대 배게 스와핑을 금지시킨 그녀가 다 안다는 듯이 말하니 더 밉다.


오늘 다음에 뜬 기사를 읽다 보니, 흔히 홀아비 냄새라고 말하는 중년 남성의 퀴퀴한 냄새는 뒤통수와 귀 뒷부분에서 분비되는 디아세틸 (Diacetyl)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경우에는 냄새가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와이프가 배갯잎에서 나는 냄새에 질색하는 것도, 막내가 안아줬을 때 슬그머니 도망가는 것도 다 이 귓바퀴 때문이었을까? 우리 가족을 이런 사랑의 예외 밖으로 내몬 것도 귓바퀴 덕분인 건가. 내일부터는 하루 두 번씩 샤워해서라도 명예를 되찾아 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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