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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Sep 25. 2019

아이들 스스로 물건을 정리하기

놀이문화로 찾아온 집안의 평화

십 년 동안 아이들과 생활을 하다, 최근 들어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아내와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대부분의 상황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들의 멘탈 불안정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점. 아이들은 늘 똑같이 천진난만하다. 할 일을 미루는 것도 아이들이니 그러기 마련인 일 아닌가. 하지만 늘 같은 잣대와 규칙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돌아온 날은 평소에는 쉽게 넘기던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곤 했던 것 같다.




장난감 정리도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잔소리 아이템 중 한 가지이다. 아이들이 집에서 놀기 시작하면 방에도 거실에도 장난감이 하나 가득 늘어져있기 마련. 치우라고 치우라고 해도 귓등으로 흘려듣는 게 다반사이고, 결국 참다 참다 폭발을 한다. 그제야 툴툴거리며 치우기 시작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다시 또 어질러져 있다.

집을 싹 치워놓아도 10분이면 다시 이렇게 만들어 버리는 능력자들



최근 이런 악순환을 해결할 묘안을 구상해냈다! 집에 있는 창고에 장난감 감옥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공표를 했다. 종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은 좋은데, 하루 한 번은 장난감 정리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리가 끝나면 아빠가 미쳐 (?)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장난감을 잡으러 다니는데, 이때 잡힌 장난감은 장난감 감옥으로 수감되고 일주일 동안의 수감 생활을 마쳐야 출소할 수 있다는 룰을 정했다. 아이들이 당연히 반발할 줄 알았는데, 내용 설정이 재밌었나 보다. 한번 해보자고 한다.


집 곳곳에 방을 붙여놓았다



일주일 정도 진행을 하면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발생하였다. 일단 소중하게 여기는 장난감을 감옥으로 떠나보내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아이들이 아주 열심히 장난감 정리를 하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정해진 시간에 정리를 잘해주니, 자연스레 낮에 어질러 놓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크게 타박하지 않을 여유가 생긴다는 점도 좋은 점이었다. 집에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그런데 감옥에 잡혀가는 장난감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의 좌절과 슬픔도 커져간다는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그랬다. 아이들에게는 부정적보다는 긍정적 피드백이 더 효과가 있다고..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탈옥 카드였다. 정리를 잘해서 잡혀가는 장난감이 하나도 없는 날은 보상으로 카드를 한 장씩 받을 수 있고, 카드를 많이 모으게 되면, 잡혀간 장난감을 석방시킬 수 있는 일종의 보석금으로 쓸 수 있기로 하였다. 카드는 당시 아이들이 재밌게 보던 넷플릭스의 트롤 헌터 캐릭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주인공도 있고 한두 번 나오는 비중 없는 캐릭터도 있다 보니 가중치를 매기는 점수를 카드에 같이 넣어주었다. 집에서 만든 카드 한 장이었는데 아이들 반응이 너무 좋았다. 카드를 받기 위하 눈에 불을 키고 정리를 하기 시작한 것. 때론 하루에 여러 번 정리를 하겠다고 자처하기도 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카드도 자꾸 진화하여 시즌제로 운영을 하였다. 시즌1은 트롤 헌터, 시즌2는 토토로, 시즌3은 드래건 길들이기 등등으로 그때그때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아서 만들어줬다. 그리고 카드가 많아지다 보니 아빠랑 아들 둘이서 마주 앉아 카드 게임도 할 수 있었다. 서로 카드를 내서 높은 점수인 사람이 이기기와 같은 게임들.. 이제는 저녁 9시가 되면 아이들이 집안 정리를 하고, 셋이 둘러앉아 카드 게임 한두 판 하고 씻고 잘 준비를 하는 아주 훈훈하고 바람직란 문화가 자리 잡혔다.




시즌 1~3까지 탈옥카드들




이제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방 정리를 하고, 정리가 끝나면 자기들이 먼저 혹시 빠진 물건들이 있는 점검까지 하는 것을 보며, 육아에 놀이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게 그렇지 않은가? 재미가 있어야 무엇이든 흥이 나서 하기 마련이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부모들의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장풍 놀이를 통한 화장실 문화개선 캠페인도 진행중이다. 난 진지하게 장풍을 쏘고 아이들은 진지하게 무서워하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깨끗한 화장실을 염원하는 와이프도 행복할 수 있을 듯 하니, 놀이문화의 진정한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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