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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Apr 12. 2017

나를 찾아준 한 줄

월간 <폴라리스> Vol.171 '책아, 놀자'

글 고민정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은산이의 표정이 어둡다. 평소 에너지가 넘치던, 한시도 쉬지 않고 노래 부르던 은산이가 아니었다.
“은산아, 기분 안 좋아?”
“아니야, 좋아.”
아이가 세 돌쯤 됐을 때였다. 녀석이 벌써 자기감정을 위장할 줄도 아는 걸까?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말도 없고 웃지도 않고 그저 창밖만 무심히 바라보는 녀석이다.
“집에 다 왔다. 아빠 저기 나와 계시네? 엄마는 학교 다녀올게. 아빠랑 잘 놀고 있어!”
은산이는 아빠에게 짧은 웃음을 보이더니 의젓하게 카시트에서 내려와 차문을 열고 나갔다. 평소와 다르게 뽀뽀도, 안아주는 것도 없다. 그저 내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물음표만 쿵하고 떨어졌다. 백미러 속 초록색 점퍼를 입고 있는 은산이는 작은 묘목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던 녀석이 떠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은산이가 당신 차 몰고 가는 뒷모습을 한참 보더라고….’
심장이 바짝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너무 일찍 철든 아이는 부모에게 아픔이고 괴로움이라고 하던가. 아이가 울며 매달렸어도 속상했겠지만 애써 싫은 마음을 감추는 아이의 모습은 가슴을 후비는 아픔이었다. 

어머니는 테레사에게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것임을 끊임없이 설명해주었다.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의 말은 자기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을 상실하고만 여인의 경험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레사는 귀담아듣고 믿었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며, 어머니가 되는 것은 크나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공부고 뭐고 일단 엄마로서 아이 키우는 걸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닐까? 일할 땐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웠고, 아이와 있을 땐 내 꿈이 멀어져 가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접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장을 정리할 때마다 이번엔 한번 읽어볼까 하면서 집어 든 것만도 여러 번이지만 매번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며 도로 제자리에 꽂아두던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이 차창에 어린 빗물을 닦아주는 와이퍼처럼 눈앞을 밝게 해주었다. 바로 저 문장 끝에 이어지는 다음의 한 줄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 하나의 ‘희생’이라면, 딸의 운명은 결코 속죄될 수 없는 하나의 ‘죄’인 것이다.

여주인공 테레사의 엄마처럼 우리 부모 세대는 많은 희생을 하며 살아왔다. 그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저 그분들처럼 나의 욕망을 억누른 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나의 본능을 숨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중고등학생 때 수능을 위해 하기 싫은 공부도 억지로 했고, 대학에서도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지새운 밤들이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회사에서도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공부도 많이 했고 새로운 시도와 좌절도 여러 번 겪었다. 그런데 한 생명을 잉태했다는 엄청나게 감격스러운 일이 내 꿈을 재물로 삼길 원한다는 건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인간 고민정과 엄마로서의 의무감이 엄청난 세기로 충돌했다. 그것도 매일. 그런데 테레사의 한마디는 그 두 가지가 상극이 아님을 일러주었다.

언젠가 제주도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한두 시간이라도 마음에 단비를 뿌리기 위해 일부러 혼자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그러다 작은 포구를 만났고 은산이를 떠올렸다.
‘은산이가 넓은 바다로 항해해야 하는 배라면 엄마인 나는 항구겠지. 그래, 더 깊어져야겠구나. 은산이가 작은 통통배가 아닌 커다란 범선이 되길 원한다면….’ 
그리고 다시 한 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렸다. 놓쳤던 마지막 퍼즐 하나를 찾은 기분이었다. 
제주에 오기 전까진 아이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마가 희생해선 안 된다는 것까진 깨달았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서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부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아당겼다. 결국은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 내게 작은 포구는 장황한 설교 한마디 없이 풀리지 않던 문제의 힌트를 알려주었다. 
내 꿈을 찾아가는 그 길이 가족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내 영욕을 채우기 위함이라면 자기 합리화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나’만을 위한 게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라면, 그리고 아이가 위인전을 통해 ‘존경’을 문자로 습득하는 것이 아닌 부모의 삶을 직접 느끼며 체화될 수 있다면 그 길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엄마이자 여자인 내가 작게나마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꿈을 꾼다면 희생과 죄인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음은 물론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식이란 존재는 부모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한가지 꼭 소망하는 건 아이들도 나처럼 부모가 됐을 때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 몇 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아낌없이 누리길 바란다. 갓 구운 빵 냄새, 저절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게 만드는 오후의 따스한 햇살, 무더운 여름날 쏟아지는 시원한 빗줄기…. 슬퍼하기엔 너무 아까운 찬란한 우리의 생이다.





고민정 

KBS 30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 <책 읽는 밤> <국악한마당> <고민정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시인의 아내이자 아들 은산, 딸 은설의 엄마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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