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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Mar 30. 2017


우리가 원하는 놀이는 달라요

월간 <폴라리스> Vol. 176 '놀이를 찾아서'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는 충분히 놀고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아이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일까? 한 어린이집에서 실시한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놀이에 대한 아이들의 진짜 생각을 엿보았다.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자료제공 보듬손어린이집  참고논문 이순희․서영순 <어린이집 내 장난감도서관 구성에 대한 유아들의 이야기> 김정선 <유아 놀이에 대한 부모의 인식 및 태도에 관한 연구>, 도남희․배윤진․김지예 <유아기 행복감 증진 방안>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보듬손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 집 내에 장난감도서관을 설립하면서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프로젝트 활동을 펼쳤다. 다음은 만5세 유아 20명을 대상으로 지난 2014년 4월 1일부터 25일까지 약 4주간 실시한 프로젝트 활동에서 드러난 놀이에 관한 생생한 목소리와 그에 관한 이야기다.




공부와 놀이는 달라요

교사   공부와 노는 것은 어떻게 달라요? 
선우   다르죠. 잡기놀이는 노는 거고, 선생님하고 이야기나누기 시간은 공부하는 거죠. 
교사   친구들이 생각하는 공부는 어떤 거예요? 
선우   (손을 번쩍 들며) 이야기나누기 시간이요. 
소연   미술 시간도 공부 시간이에요. 
장원   미술은 놀이야. 맘대로 만들기도 하고 막 그리기도 하잖아. 
소연   아니 그런 거 말고 미술 선생님하고 하는 거. 
장원   아, 선생님한테 배우는 거.(고개를 끄덕인다.) 
예서   미술은 어떨 때는 공부하는 거고 어떨 때는 노는 거야. 
장원   그럼 중간이네.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하지만 동시에 놀이를 특정 영역의 발달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유아 놀이에 대한 부모의 인식 및 태 도에 관한 연구, 김정선)에 따르면 부모들은 여러 놀잇감 유형 중 인지 발달을 돕는 놀잇감과 언어놀이 놀잇감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를 통해 인지학습을 시키고 싶다는 부모들의 목적 의식을 드러내는 결과다. 부모들의 이러한 욕망을 건드리는 ‘두뇌놀이’ ‘한글놀이’ ‘수놀이’ 등 놀이를 빙자한 학습 교구들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부모는 아이가 이를 놀이로 여길 거라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대화에서 드러나듯이 아이들은 나름대로 공부와 놀이를 구분하고 있었다. 그 기준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놀 수 있는가, 어른이 개입해 지도를 하는가 여부다. 부모가 아이를 충분히 놀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자발성과 주도성이 빠져 있다면 아이는 그 시간을 모두 ‘공부’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음껏 어지르며 놀고 싶어요

혜인   장난감놀이터(도서관)에서는 막 어지르면서 놀고 싶어. 
교사   어지르면서? 
우진   집에서는 어질러 놓으면 엄마한테 혼나요. 그래서 공이나 탑블레이드 같은 거 갖고 놀아요. 근데재미없어요. 
규린   친구랑 만들면서 놀면 더 재미있어요. 어린이집에는 만들 게 많아요. 그래서 좋아요. 
우진   친구들도 아무거나 가지고 신기한 거 막 만들고 하니까 더 재미있어. 
혜인   우리 집도 어질러 놓으면 엄마한테 혼나.

집 안을 난장판으로 어지르며 노는 아이의 모습은 부모의 인내심을 요구하기 마련. 그러나 아이들은 어지르지 않고 할 수 있는 놀이는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은 완성형의 장난감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만드는 놀이에 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이 값비싼 로봇과 같은 완성형의 장난감을 좋아할 거라는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아이들은 상상력을 맘껏 발휘해 오리고 붙이며 만들 수 있는 놀이 ‘재료’를 가지고 노는 것에 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놀고 싶어요

민준   엄마, 아빠랑 같이 놀이하면 진짜 재미있는데, 블록놀이. 
다은   나도 집에서 엄마랑 블록놀이 할 때 제일 재미있었어. 
우진   난 아빠랑 레고 조립할 때 제일 재미있었어. 
하성   나는 엄마랑 파스넷으로 그림 그릴 때 제일 재미있어. 탑블레이드도 그렸어. 
한서   나는 집에서 매일 TV 보는데. 심심해서. 
희원   난 아빠 핸드폰으로 게임해. 심심하면 너도 게임해. 게임도 나름 재미있어. 
세원   나는 컴퓨터로 게임해. 우리 엄마, 아빠는 바빠서 나랑 못 놀아.

장난감도서관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놀고 싶다’고 대답했다.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설문조사(도남희․배윤진․김지예, 유아기 행복감 증진 방안)에서도 아이들은 집에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놀이(44.3%)가 가장 필요하다고 대답했으며, 놀이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으로 엄마(43.5%)와 아빠(25.5%)를 가장 많이 꼽았다. 혼자서 놀고 싶다는 응답은 15.6%였다. 또한 아이들의 대화를 통해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을 때 아이들은 디지털 미디어에 쉽게 노출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모들은 흔히 아이들이 스마트폰 게임과 TV를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틀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놀이는 엄마, 아빠와 얼굴을 마주하고 노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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