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크고 확대 잘되는 놈으로 주세요
어떤 취미든 이런 이야기는 항상 있는 거 같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기왕이면 한방에 가요
한방이 뭘까요? 아마도 그 취미 세계에서 나름 고급진 장비를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대부분의 그 취미를 오래 한 분들이 결국은 사게 되는 그런 궁극(?)의 장비를 뜻하는 거겠죠. 그게 사진이라면 풀프레임 카메라가 될 것이고 자전거라면 비싼 카본프레임의 무언가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마추어 천문 분야에서도 이런 일은 흔합니다. 보통 '안시관측을 하고 싶은데 장비 추천 부탁드려요'라고 글을 올리면 대다수의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대구경의 돕소니안식 뉴토니안 반사망원경을 추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딥스카이 천체 촬영을 하려 하는데 장비 추천 부탁드려요'라고 하면 요즘은 고가의 하모닉 기어 방식의 적도의를 추천하거나 시작부터 오토가이드 시스템1) 을 넣어 추천하곤 합니다.
사진의 경우, 입문자라도 좋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기술을 익히고 공부하는 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자전거 또한 경량의 좋은 프레임이 달린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자전거를 오래 타는데 지장이 생기거나 하진 않으니 어찌 보면 사실 입문자의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나쁜 선택지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아마추어 천문 분야는 사정이 약간 다릅니다. 안시 관측을 해도 내가 무엇을 볼건지 (태양, 행성, 딥스카이 성단, 성운 혹은 외부은하)에 따라 적합한 망원경이 천차만별이고 사진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대상을 촬영할 것인지에 따라 장비구성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리고 입문할 때 이미 분야를 안시관측 - 외부은하라고 정해놓았다 할지라도 입문자의 지식수준에 따라 막상 취미를 시작하기 전과 시작한 후의 괴리가 크게 올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나는 외부은하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장비 구성을 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나의 분야는 천체 사진이었더라' 하며 이미 구비한 장비를 싹 중고로 되팔고 장비구성을 다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쓰이게 되는 시간과 장비구성에 따른 노력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까지 생기게 됩니다.
취미의 세계에서는 입문용 장비라는 범위 내에 있는 장비들이 있습니다. 입문자 단계를 벗어난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은 초라한 그런 장비로 보일 수 있지만 취미를 즐기는데 무리가 없는 그런 장비들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한 번씩 거쳐가는 그런 장비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장비들은 대개 구매할 수 있는 정도로 적당히 비싸고 커뮤니티 내에서 자주 회자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으며 중고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히 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장비를 산다는 게 조금은 자원이 아깝고 (시간, 돈 등) 중복투자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입문장비로 시작한다는 것은 그 취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는 의미가 되고 그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한 학습을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마추어 천문에서는 한때 '코동(코스트코 동생 망원경)'이라 불리는 Celestron 이란 회사에서 출시한 Nexstar 90gt라는 망원경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단종된 지 오래되고 해서 사용인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한때 이쪽 세계에서는 국민망원경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망원경은 코스트코에서 판매되어서 유명했는데 위의 조건을 만족합니다.
- 가격은 20만 원대로 구매가능할 정도로 적당히 비쌉니다.
- 가격에 비해 computerized 된 전자식 가대를 제공하는 등 성능이 괜찮았어서 커뮤니티 내에 자주 회자됩니다. (심지어 지금도 찾기도 합니다)
- 중고시장에서도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졌었습니다.
위 조건을 만족한다는 뜻은 사용자 층이 두텁다는 의미가 되고 그 말은 이 장비를 사용하면서 물어보면 누구든 답변을 해 줄 수 있다는 의미 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코동 학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입문용 장비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취미활동을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입문장비를 활용해서 내가 안시 관측이 맞는지 아니면 사진을 하고 싶은 건지 를 결정할 수 있고 각 분야별로도 세부적으로 직간접 체험이 가능합니다. 다음 스텝으로 어떤 걸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면 입문자 단계가 끝나게 되는 것이고 그 시점이 되면 아마추어 천문 지식도 제법 갖추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입문했던 장비는 중고로 처분해서 다른 장비를 살 때 보탬이 되기도 하고 아니라면 간단히 관측을 하는데 활용을 하는 보조도구로 활용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 된다면 입문장비를 산다는 건 중복투자가 아닌 취미의 기초 지식을 쌓는 비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막상 망원경을 샀는데 이게 나와 맞지 않는 취미란걸 알게 되었어도 괜찮습니다. 장비는 중고로 팔면 입문기 특성상 인기가 많으니 금방 팔리고 그러면 초기 장비 구매비 - 처분비 만큼 지출이 생기는데 그건 일종의 수업료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 '한방' 짜리 장비는 비싸고 중고로 팔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 정도의 장비를 운영할 수준이 되면 선택지도 많아지기도 하니까요.
입문장비는 입문장비의 역할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입문기를 추천한다고 '날 뭘로 보고 이런 장난감 같은 걸 추천해 주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취미를 오래 한 사람이 봤을 때 시작하면 좋을법한 장비를 추천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네요. 추천해 주는 입장도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산다면이라는 생각보다는 이쪽 세계에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첫 장비를 구매한다면 어떤 게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추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훌륭한 취미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면, 입문장비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절한 추천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1) 오토가이드 시스템 : 관측을 하는 주 망원경 외에 보조 망원경과 카메라 그리고 그 카메라 정보를 받아 장비를 제어하는 컴퓨터를 둬서 천체를 추적하는데 생기는 각종 오차를 자동으로 보정해서 망원경을 제어하는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