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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스틱 베이커리 Apr 26. 2021

불안의 원천

알게 모르게 비교 당해왔던

항상 불안했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방 안에서 시작된다. 잦았던 아버지의 일방적인 어머니를 향한 잔소리는 일상이 되었고, 눈치를 보며 각자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동생과 나의 일상이 되었고, 깊은 마음에서 불안이 자라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의 나는 불안하다는 생각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부모님의 관계는 내가 직접 겪을 수 있는 유일한 가정의 모습이었고 곧 나의 세계였으니까.


대학원 입학 직전, 여러 문제로 불안 증세가 심각해져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스트레스 저항성과 수치는 좋은 편이나, 불안감이 매우 높게 나왔었다. 특이한 것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안좋은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았단 것이다. 나는 불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겉으로는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나였지만 내 속에는 가시나무같은 불안함이 뿌리내려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족하지 않게 자랐음에도 소속감을 느낀 적 없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이라는 감정-감각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고 혼자 있을때면 어김없이 가시나무는 태풍을 맞이한 듯 흔들렸고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나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이신 분들도 분명 계시며, 나의 불안감은 비할바가 못됨을 알고있다. 그렇지만 내가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나"를 대해 생각한 적 있었나?


나의 세계의 중심은 남이었다. 누구는 어딜 가고, 누구는 무엇을 얼마나 잘하고. 다른 사람이 잘한 것을 들은 적은 많았을지언정 내가 잘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나에 대한 이해를 하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의 장점을 보고, 이는 곧 나의 단점이오, 내가 따라잡아야할 문제였다. 


비교당하고 단점만을 보안해온 사람이 문제를 맞이하였을 때, 도전할 수 있을까? 결국 나의 환경은 나를 패배자로 만들었고, 시련을 그저 피해가기 위해 하루 하루를 임기응변으로 살아오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도전정신이 없었던 것은 결국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 제도적 문제, 교육의 문제, 나의 가정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상황을 스스로 납득했기에, 나에게 발생한 개인적인 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꿈이나 장점에 대한 고민보다 단점들을 숨기며 살았다.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스로의 장점조차 인지하지 못한채 그저 눈앞의 작은 기회들만을 위해 살아왔고, 뿌리박힌 불안감과 어쩌면 자연스럽게 생긴 피해의식으로 인해 결정적 상황에서는 이기적인,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난 30년간 패배자로 살아왔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얼마전 서울에 올라오신 어머니는 나에게 주변 지인들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이웃집 딸이 결혼하는데 남편은 집을 스스로 구했다더라, 아버지 친구의 아들 누구는 은행에 갔다더라, 누구는 어디에 갔다더라. 농담을 섞어 나는 "무슨 비교를 그리 많이도 하십니까 어무이"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는 "사실을 이야기한건데? 비교한 적 없다!"고 농담으로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 진짜로 웃으면서 말씀하셨고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내려가신 후 곰곰히 생각해보니 항상 이런 말씀을 해오셨고, 이 말은 내 마음에 깊이 남아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것은 정말로 "비교"였고 내 마음을, 내 인생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내가 진작에 경계했어야할 "나쁜 외부 조건"이었다. 


부모님도 불안하셨다. 안정적인 전기과를 두고 헛바람들어 돈도 못버는 디자인이나 창업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남들은 외제차타고 소고기먹고 다닐때 돈 5만원, 10만원에 벌벌 떨고 고기 한 번 변변하게 못먹는 처지. 이렇다할 성과 한 번 내지 못했기에 지금이라도 대기업에 들어가라고, 1인분은 해라고. 




더 늦기 전에


다행인 것은, 내 청춘의 새 시작에 내가 가진 고질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은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이유. 언제나 눈치보면서 내 의견 하나 이야기하지 못하고, 문제를 피하며 살아온 30년간의 패배의 연속의 끝.


무엇보다 "나"에 대해 고민해보자.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빛날 수 있는 것.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내 스스로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보자. 내가 만든 지금의 작은 가치들을 키워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나 스스로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믿음을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Thanks to JH & 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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