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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 Feb 24. 2023

남자 하나, 여자 둘, 고양이 하나

남자 하나, 여자 둘.      


단출한 가족이었다.    


하나뿐인 남자는 사회가 바라는 가장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 나름대로 고충과 고민이 있었겠지만, 어린 여자가 그걸 이해하기 바랐다면 그건 그의 욕심이다. 그에게 그런 욕심은 없었을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생각과 믿음으로 가득 찬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어른 여자는 억척스럽게 삶을 살았다. 실질적인 가정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린 여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린 여자는 어른 여자의 고군분투를 보며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린 여자는 이런 생각을 입 밖에 꺼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어린 여자는 사회가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 그대로 자랐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말썽 한번 피우지 않았다. 어른인 여자는 그래서 이 어린 여자가 자신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이 바닥 같은 삶에서 구원해 줄 구원자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어린 여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뜻대로만 되겠는가. 그 시절, 이 사실을 몰랐던 어린 여자가 안타까울 뿐이다.           



여자 둘. 


무법천지 세상에 방패막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어른 여자는 이제 공식적인 가장이 되었다. 닥치는 대로 삶을 살았다.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자신의 어린 여자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싶었다. 팔이, 다리가 고통 속에 몸부림칠 때조차 그녀는 무작정 걸었다. 걸으면, 살다 보면 무엇이라도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걸었다. 그 걸음이 자신의 어린 여자를 지치게 하는 것도 모른 채.     


어린 여자는 저는 발로 길을 걸어가는 어른 여자가 싫었다.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그 저는 발로 인함임을 알면서도 구차한 삶을 사는 듯한 그녀를 마음 안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도 걷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어른 여자의 걷는 모습에는 비할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어깨 위에는 부채감만 쌓여갔다.    


       

여자 둘, 고양이 하나. 


의지할 방법을 찾았다. 


어른 여자는 이제 안식을 찾았다. 걷기를 멈추고 쉬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그녀가 내린 결정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안식이 불편하지는 않아 보인다. 아니다. 불편하다. 이제 자신을 대신에 걷고 있는 저 어린 여자를 보는 것이 편치 않다. 그녀는 어린 여자 옆에서 같이 걷고 싶지만 그녀의 팔다리는 움직이기를 거부한다. 그 모습을 어린 여자는 쳐다보지 않는다. 그녀도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어린 여자는 이제 걸을 수밖에 없다. 이 또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아니나 달리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걷기를 택한다. 그녀의 어른 여자가 팔다리를 숨긴 채 그녀를 보고 있다. 무엇을 숨기려는 지 알고 있지만 짐짓 모른 채 어린 여자는 어른 여자를 향해 웃어 보인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므로.      


눈보다 하얀 고양이는 어른 여자와 함께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이 고양이는 두 여자의 동반자가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 하얀 짐승을 두 여자는 아끼고 사랑하는 중이다. 두 사람이 주는 사랑을 고양이가 느끼는지 알 길이 없으나 두 여자는 그저 주는 것으로 고양이와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과거와 현재, 

어린 여자는 늘 불투명한 가족에 속해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불투명함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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