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하나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후에 벌어졌던 모든 일들을 내가 납득할 수 있다.
그는 당시로는 어리지 않은 나이에 그녀를 만났다. 그가 그녀를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따금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랑했던 것도 같지만, 내가 지켜본 그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래서 결혼에 제일 첫 조건은 ‘같은 종교를 가질 것‘이었다.
그렇다.
눈치챘겠지만, 그의 집안은 불교 집안이었다. 심지어 그의 둘째 형은 승려로 그의 어머니 집 다락방에 살며 밤낮으로 목탁을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저희 집안은 다 교회에 다닙니다.”
그녀는 순진했다. 한 번쯤 제대로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는 그의 말에 속아 결혼을 했고, 일요일 아침이면 그의 어머니 지시대로 집 안에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자의 승복을 손으로 다 빨고 나서야 교회에 갈 수 있었다. 한 겨울 아침, 찬물에 손을 담그고 교회에 가기 위해 스님의 옷을 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모든 순간에 그는 없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가 그녈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자신의 사람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어도 그는 가을의 남자처럼 외로워했다. 사람들을 그리워했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의 이러한 욕구들은 결코 건강하게 표출되지 못했다. 실력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고 싶어 했다. 그 방편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 이용당한 것이 교회였다. 그는 그녀보다 더 열정적으로 교회에 나갔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그가 자랑스러웠다. 거짓말은 했지만, 결국 이렇게 기독교인으로 봉사하며 살고 있다고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이상해졌다. 그는 커리어에서의 인정보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인정에 매달렸다. 믿음이 좋으시다, 너무 대단하다. 는 등의 말이 그를 흥분시켰던 것도 같다. 교회 안에서라면 그는 외롭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그녀와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던 아이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그만의 이유가 외로움이라면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멍청한 남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유일한 핑계마저도 걷어차 버리는 천치였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