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하나
그녀의 손을 잡고 도착한 병원에 그가 누워있었다. 그녀와 그는 서로를 보자마자 부둥켜안았고, 그 옆에 선 나는 성인 어른이 큰 소리로 엉엉 우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가 공장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기계를 다뤘던 건만은 분명하다. 그 기계가 그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을 두 마디나 먹어버렸으니까.
어린 시절에 나는 꽤 철이 든 아이였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닌 듯도 싶다. 그가 수술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어린 나는 조금 으쓱해 있었다. 나처럼 조그마한 아이가 다 큰 그를 간호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기특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칭찬에 고픈 아이였기 때문에 같은 병실을 쓰는 분들의 대견하다는 말이 참 좋았다. 다리를 다친 게 아니라서 그는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었지만, 난 식판을 나르는 일도, 간호사를 부르는 일도 다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나는 병실에서 가장 성실한 보호자가 되었다.
이렇듯 내가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했던 데에는 그의 유전자 탓이 크다. 그는 마치 어린 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보이길 좋아했다. 평소에는 나에게 시큰둥하다가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곤 눈에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은 채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건 그녀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 나는 그녀에게 그의 그런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 폭로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가 너만큼은 얼마나 예뻐했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했다. 할 수도 있지. 그런 적이 없으니까.
때때로 관종력 충만한 그는 보호자 침대에 잘 누워있는 나를 굳이 불러 자신의 침대로 올라오게 했다. 간이침대가 불편할 테니 그의 옆에 누워서 책 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때는 신난다고 올라갔던 것 같다. 그가 좋았던 게 아니라 순전히 침대가 좋아서였다. 그렇게 둘은 나란히 누워 각자의 책을 읽었다. 우리에게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가 입원해 있던 병실은 남자 환자들만 입원해 있던 곳이었다. 병원의 병상 수가 부족해서인지 정형외과 환자 이외에 다른 과 환자들과도 같은 병실을 써야 했다. 우리 병실에 있던 환자는 의식이 없는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 환자였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 욕창이나 다른 문제들이 생기기 쉬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벽 회진 때마다 의사가 그 환자의 몸 전체를 체크하고 관리하는 것 같았다.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새벽 회진 때 여자들은 병실 밖으로 다 나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자 초등생인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밖으로 쫓겨난 나는 늘 그녀에게 잠투정을 부렸다. 그렇지만 그녀도 별 수 있었겠는가? 병원의 권력은 흰 가운으로부터 오는 것을.
마침내 내 잠투정을 못 견딘 그녀가 꾀를 내었다. 내가 누운 보조 침대를 그의 침대 밑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틈이 넓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내가 눕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면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침대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침대 아래로 여러 개의 구둣발이 보이자 나는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걸릴까 봐 불안하면서도 왠지 모를 스릴이 느껴졌다. 잠 깨는 게 싫어서 침대 밑을 택했지만 오히려 나의 눈은 더 초롱초롱 빛이 났다. 솔직히 재미있었다. 아마 침대 위에 있던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때 그 병실에 있던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나의 숨바꼭질에 목격자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는 몇 번 더 침대 밑 탐험을 한 후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그가 서로를 보며 웃음 지었던 마지막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