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하나
내가 지켜본 그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듯했다. 단순히 몸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에 그는 가장 고통스러워했다. 예민해졌고, 과격해졌으며,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항변하리라. 손가락이 잘린 사람에게 공장일을 맡기는 곳을 찾는 게 쉬웠겠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IMF를 막 지난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이 불편한 노동자에게 줄 자리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이 구차한 변명도 나는 들어줄 생각이 없다. 그의 진심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그의 행동 때문이다. 그는 일을 하는 대신 종교에 심취하는 것을 선택했다. 일을 하는 날보다 종교시설에 가는 일이 더 많아졌고, 급기야 그는 종교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나와 그녀도 꽤나 훌륭한 종교인이었지만, 그의 선언에는 기암 할 수밖에 없었다. 꼭 그래야 하는 거냐고 묻고 묻고 또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면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겠다는 게 그 나름에 대답이었다.
그와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녀는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았고, 때마침 그녀의 맞은편에서 놀란 채 그 상황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무기력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때의 나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은 영원히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워 그의 턱을 할퀴었고, 무사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도망쳤다. 미안하다는 말도, 잘못했다는 말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품에 안겨 토닥임을 받았다는 것과 그가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것이니 너무 놀라지 말라는 그녀의 목소리뿐이다. 불쌍하게도 그녀는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채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가 그녀와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길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고 믿었다. 며칠 동안 그가 우리의 안식처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에게 그런 평화가 오래가길 바라는 건 사치였지만.
그는 더욱더 날이 선 눈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 집을 나갈 거니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말도 그녀에게 던졌다. 슬플 줄 알았다. 내 삶에서 그가 떨어져 나가면 아플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울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에선 눈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당연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마주한 사람처럼 담담했다. 마치 오랜 기간 함께 지냈던 손님이 떠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몇 년 후, 전해 들은 그의 소식에 따르면 여전히 나와 잘 지내고 있으며,
졸업식에도 다녀왔다고 자랑하듯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또 몇 년 후,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한 그녀는 내가 보고 싶지 않냐며 만나보라고 강권했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