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하나
당시에 그녀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6남매 중 막내딸이었다. 예쁨이란 예쁨은 다 받았을 것 같지만,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랬겠는가? 딸들은 그저 아들들을 위한 살림 밑천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그녀는 생애 큰 불만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듯싶다. 어쩌면 그녀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귀에서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귀에서 나온 진물로 베개가 다 젖을 정도였다. 병원에 가도 통 손을 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그녀 또한 이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하루아침에 청력을 잃었다. 왼쪽 귀는 아주 약하게나마 청력이 남아있어 조금 큰 소리로 말을 하면 들을 수 있었지만, 알다시피 세상은 그렇게 친절한 곳이 아니지 않은가.
첫 시작은 학교였다. 학교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었다. 듣지 못한다는 건 10대 소녀를 유리로 된 방에 가둔 것과 같았다. 보이나 들리지 않으므로 함께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노력했다. 사람들의 입모양을 관찰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했다. 정확한 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어렵사리 중학교는 졸업했지만, 딸이자 장애를 가진 그녀를 고등학교까지 보낼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한다 해도 자신이 얼마큼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후로부터 몇 년간의 이야기는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왜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는 10대, 20대 시절에 사회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저 사회가 그녀에게 준 상처와 모멸이 큰 모양이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건 그를 만나는 시점부터다.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났다고 한다. 첫눈에 반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대충 그 비슷한 사랑을 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그 덕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녀의 뱃속에 자리 잡았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 그녀에게 가고 싶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절대 그와 만나서는 안된다고. 이로 인해 내가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나는 그녀가 마주하게 될 수많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기회를 꼭 주고 싶다. 그만큼 나는 30대의 그녀가, 40대의 그녀가 안타깝고 아프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