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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 Mar 15. 2023

전화공포증

그가 떠나고 남겨진 두 여자는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았다. 사실 그가 떠나지 않았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돈, 돈이 문제니까.     


그가 다치고 나서 생계는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예상했다시피 세상은 그녀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중졸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세 사람의 몫을 세상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그 최선이 정말 최선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신용카드는 그녀에게 한줄기의 빛과 같았다. 당장 내 자식을 배부르게 해 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카드 대금일이 두렵긴 했지만, 내 자식을 먹일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늘어나는 카드 개수만큼 카드의 빚도 덩달아 늘어났다. 늘어난 빚을 막기 위해 또다시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집 전화로 카드 대금 결제를 독촉하는 전화들이 빛발 치기 전까지 그녀는 그렇게 자식을 먹이고 입혔다.      


쏟아지는 전화와 함께 그는 사라졌다. 그가 떠난 것이 빚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지만 그가 떠날 때의 모습과 말들을 떠올려보면 그저 타이밍이 너무 잘 맞아떨어졌을 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일을 하러 나간 그녀 대신 독촉 전화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그 이후로 전화공포증이 생겼다.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소리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내 귀에 내리 꽂힐 때의 그 떨림은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리고 무서운 탓도 있겠지만, 그들의 무례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들의 돈을 빌려 갚지 못했으니 잘못한 것은 우리라는 마음과 나 때문에 그녀가 돈을 쓴 것이니 다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그녀는 늘 내가 주문처럼 말했다. “전화 오면 받지 말고, 누가 문을 두드려도 절대로 열어 주지 마.” 나는 착한 아이였으므로 그녀의 말을 잘 따랐다. 물론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두려워 전화선을 뽑아두었고, 집에 있음을 들킬까 봐 TV 소리도 줄여야 했지만 말이다. 늦은 저녁 그녀가 집에 돌아올 때가 되면 뽑아둔 전화선을 연결했다. 나의 두려움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돌아온 그녀는 늘 나에게 물었다. “전화는 많이 왔었어?” 나는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었다. “아니. 한 통도 오지 않았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이 울리지 않는 전화와 함께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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