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리치던 사내들의 목소리 사이로, 문을 두드리던 이들의 손가락 사이로 우울은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다. 나의 우울은 그보다 더 오래전 나에게 왔을 것이다. 원래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냥 깍두기 같은 아이였다. 어쩔 수 없으니 끼워주는 아이. 나는 그냥 그것도 좋았다. 나 같은 애랑 놀아주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새 학기가 되면 나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친구 아니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들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그런 날 보며 그녀는 “너는 왜 친구가 1년을 못 넘기는 거니?”라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난 나름대로 친구들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혼자 남겨진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린 나라도 자존심이 상했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도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씁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나만 빼고 나누어주는 상황을 또렷이 지켜봐야 했던 어린 마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이외에도 ’아, 나는 저 아이의 친구가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난 나에게서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내성적이어서, 먼저 다가가지 못하니까 깊은 관계가 되지 않는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고, 때로는 지금 이대로도 좋다며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마음이 많이 힘들 때는 결국 환경을 탓하게 되었다. 나의 가난이 사람마저 떠나게 만든다고 혼자 울먹였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최대한 나는 환경 탓을 하지 않으려 했다. 정말 나의 외로움이 환경 탓이라면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냥 나의 이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렇지만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노력하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단지 어린 나는 몰랐을 뿐이다. 환경만큼이나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의 우울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좋은 일보다 괴롭고 슬픈 일을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고, 내 인생에 행복했던 일 따위는 없다고 믿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른들은 애어른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때는 그 말이 참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답지 않은 아이라는 건 좋은 말이 아니다. 떼쓰지 않는 아이로 사는 건 아이의 마음에 먼지가 쌓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먼지는 아이가 드러내기 전까지 누구도 치워주지 않는다. 그래서 난 나의 어린 시절에 참 미안하다. 그리고 그 시절을 죽지 않고 버텨줘서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