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마음 위로 무언가 내려앉았다. 눈인가 하는 기대감에 손을 뻗어 보았지만, 손안에 들어온 그 무게감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다. 스르륵 손을 거둬들였지만, 이미 내 어깨, 머리, 손등, 발등 곳곳에 무거움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의 기대였다.
그녀에게 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고난 속에서 자식이 희망이 되는 건 흔한 일이지 않는가. 저 녀석이 앞가림을 하게 되는 날이면 이 고통도 끝날 것이라는 그녀의 기대를 원망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친구이자 동지이자 전우로서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실망은 나 자신에게 했을 뿐이다.
기대감의 무게를 거뜬히 이겨낼 준비가 되어있었다면 나는 괜찮았을 것이다. 그까짓 것쯤 하며 아주 우습다는 듯 두 발로 하늘을 버티고 서있을 수 있었다. 나에게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말이다. 불행히도 나에겐 그녀의 기대를 채울만한 능력이랄 것이 없었다. 너무나 평범했던 10대 소녀는 자신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때문에 (그녀 역시 살기 위해서였을 테지만) 고군분투하는 그녀에게 그 희망을 버렸으면 한다고, 당신 자식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최대한 있어 보이는 척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 앞에서는 흔히 말하는 유식한 척을 했다. 어려운 말만 골라가며 한 글자 한 글자를 그녀에게 던져댔다. 10대를 지나 20대 초가 되어서도 나는 마찬가지였다. 그녀 앞에서는 세상을 뒤바꿀 엄청난 인재라도 된 양 굴었다. 실상은 빈털터리 대학생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그녀가 나의 허세를 몰랐을 것 같지 않다. 그저 그녀도 믿고 싶었던 거겠지. 저 허세가 허세로 끝나지 않고 무언가 변화를 일으켜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난 그녀의 기대에 보답하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나에게 무게감을 안겨주었다며 그녀를 비난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 나는 세상 나쁜 불효녀였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자 집안의 가정으로 사는 현재의 나는 아직도 무게감에 짓눌린다. 아마 이 무게감은 내 평생을 함께 하겠지. 그녀가 내 곁에 있는 한은 말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떠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나의 작은 호소일 뿐이다. 너무 무겁다고. 이 무게에 무너져 내릴 나를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