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누구일까 _13
"넌 놀라운 재능이 있지.
고통 받을 때 모든 힘을 놓고 포기하는 거지.
넌 느낌을 멈추는 거야."
"...... 그건 재능이 아니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중에서
2023년 12월,
마침내 우리 조직의 감사과는 1년 간의 집요한 감사 끝에 갑질 괴롭힘 피해자 P를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시켜 중앙 부처에서 '추방'하는 데 성공했죠. 그리고 '축제'가 시작되었죠. '고통의 축제'가 말입니다. 감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불안증과 구토, 불면증은 설마 했던 전보 문서가 사무총장 결재를 통과하자 최고조에 달했죠. 그리고 당일 아침 마침내 P는 심한 호흡 곤란과 어지럼증으로 병원으로 실려가야 했습니다. 저는 P를 장모님과 함께 병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과천 중앙부처로 찾아가 J과 과장님, 사무총장님과 면담을 했죠. 이 일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감사과장과 인사과장은 저의 면담 요청을 바쁘다는 핑계로 거부했고, 제 연락을 일절 받지 않더군요. 어쨌거나 자신들의 결정으로 한 직원은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그분들은 참 단호하고 비정하게 냉담하더군요.
저와 P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이번 인사조치, 전보조치가 승진을 목전에 앞두고 내려진 부당한 결정이어서가 아니었죠. 그동안 묵묵히 늦은 심야 시간까지 야근을 하며 버텨낸 결과가 결국 전보조치라는 배신감도 아니었죠. 무엇보다 우리 인사과의 결정이 가장 큰 '고통'을 준 것은 이미 상반기에 P가 갑질 괴롭힘 피해자였음을 알고 있었던 우리 조직의 인사책임자 즉 인사과장이 내린 결정이란 점입니다.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시킨 감사과의 '졸속 감사'를 인사과가 아무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고 인정했다는 점이 가장 쓰라린 부분이었죠.
또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P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그래도 한 때는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웃으며 함께했던 그 사무보조원이 단 한 번의 꾸중 들은 일로 이런 배신행위와 고발을 저질렀다는 배신감, 그를 뒤에서 부추기고 사주한 직원의 가식적 태도에 대한 환멸감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벌이기 위해 또 상반기는 물론 하반기까지 일 년 내내 p를 감시하고, 꼬투리를 잡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죠. 처음에는 설마 그래도 같이 일하던 직원이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인데 도대체 무슨 그리 큰 원한을 산 일이 있다고 이렇게까지 하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P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만난 해당과 과장님은 자신도 이번 전보조치에 대해 어제 늦게야 알게 되었다고, 감사과가 감사한 내용으로 이런 식으로 전보조치를 할 것이라고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상반기에 p를 '축출'하려던 계획이 저희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최종 결재 직전에 번복된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인사과는 이렇게 전격적으로 인사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불리한 전보 조치 당사자에게 사전 통보나 협의도 없이 말이죠. 해당과에서 상반기에 일어난 갈등이나 간식 관련 갑질 괴롭힘 행위에 대해 살펴보고 방지하려는 노력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던 J과 과장님은 이번 하반기에도 그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저와의 면담을 회피하던 감사과장님 대신에 이번 감사를 진행한 감사과 직원은 자신들이 벌인 감사가 '잘한 감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자신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자신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앵무새처럼 되뇌는 그 말을 들으며 저는 한나 아렌트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생각났습니다. 상황과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민원인의 신고를 받았으니 누군가는 '죄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만 주장하는 그들을 보면서 저는 루돌프 아이히만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루돌프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 계획을 치밀하게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실행한 나치의 하급 장교였습니다. 나치의 패망 이후 전쟁범죄자로 쫓기자 아이히만은 개명을 하고 몰래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숨은 나치 학살자들을 찾아내 이스라엘로 송환하는 작전을 벌인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납치돼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 서게 됩니다. 이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 잡지의 리포터로 이 세기의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고 그 기록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아이히만 재판을 보면서 사람들이 경악했던 것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사이코패스적 성향과 잔혹한 기질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로 몰고 간 아이히만은 괴물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그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경악하고 의아해했던 것은 유대인 잡단학살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그토록 정교한 수송계획을, 그토록 성실하게 수립, 시행한 아이히만의 성실함과 침착함,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함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하급 장교이자 관료로서 국가가 명령하는 일을 자신은 성실이 수행했을 뿐"이라고, 따라서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고 항변했습니다.
아이히만의 태연함과 뻔뻔함을 목격하면서 한나 아렌트는 잔혹한 유대인 학살이 반사회적 성격 이상자나 광신도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의해 자행될 수 있음을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개념화했습니다.
즉, '악의 평범성'이란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아무런 반성적 사유 없이 명령에 순응하기만 한다면 악마의 일도 저지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올바른 감사를 했노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되뇌는
감사 담당자들의 항변을 들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 건 무슨 이유일까요?
나치는 유대인 학살을 '학살'이라 하지 않고 유대인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라 표현했습니다. 감사과가 객관적인 조사도 없이 답을 정해 놓은 듯 신속하게, 피조사자 P에 대한 충분한 항변 기회도 주지 않은 이번 '표적 감사' 혹은 '감사 갑질'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길고 가혹한 '고통의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p와 p의 배우자인 저는 그 '고통의 축제'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과 분노로 시작하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의 축제'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이 축제가 끝난 뒤에도 우린 슬픔 속에서도 계속 살아 남을 것이고, 또 심연을 다녀 온 고래처럼 더욱 강해져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