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누구일까 _14
"미워하지 마 우리는 연약하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의 SF 만화 <기생수> 중에서
얼마 전 발생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로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요. 그런데 추모 현장에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듯한 글이 적혀 있어 공분을 샀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에는 시청역 사고 현장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조화와 추모 메시지 등을 놓아둔 사진이 있었죠. 이 가운데 한 종이에 희생자들을 조롱하듯이 빨간 글씨로 "XXXXX가 돼 버린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 있었죠. 이런 조롱과 혐의의 글을 본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참담하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경찰이 지난 1일 발생한 ‘서울시청 앞 역주행 교통사고’로 숨진 피해자들을 조롱한 글 7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망자들을 토마토 주스에 빗대 조롱하는 글을 써 사고 현장에 남긴 20대 남성은 경찰에 자수했어요. 40대 남성도 현장에 모욕성 글을 남겼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됐고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참사나 사고가 터진 뒤면 희생자나 유가족을 향한 혐오 표현이 하나의 놀이처럼 등장합니다. 어떻게 이런 혐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까, 도대체 이들은 누구일까 하는 분노와 안타까움이 일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희생자들에 대한 2차 가해 문제가 기본값이 돼 버린 듯합니다.
피해자나 약자를 향한 혐오 정서의 기원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그만큼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우월적인 지배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것도 아니죠. 우리나라에서 피해자를 향한 혐오 표현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건 아마 세월호 참사가 처음일 겁니다. 이때 특정 커뮤니티의 추종자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이나 '오뎅'으로 조롱하기도 했고, 단식 농성을 하던 유가족 앞에서는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는 상상 초월 비인간적 '폭식 투쟁'은 시도하기도 했죠. 이 같은 희생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은 2022년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최근 빈번한 묻지 마 살인이나 칼부림 사건 이후에도 '칼부림 예고글'이 일종의 '챌린지' 놀이처럼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혐오와 조롱의 유희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피해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나 조롱은 관련된 희생자의 신분이나 국적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희생자가 외국인 노동자인 경우에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희생자의 성별에 따라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 표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대형 사고나 참사 뒤에 반복적으로 따라오는 피해자에 대한 혐오나 조롱 기사가 물론 일부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일부 혐오 표현을 언론이 과도하게 선정적인 기사로 옮기는 건 아닌지, 다수의 여론과는 괴리가 있는 극소수의 혐오 표현을 과도하게 확대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러나 관례처럼 반복되는 희생자나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나 조롱 놀이, 2차 가해는 분명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중 일부가 공감 능력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경향을 우리 조직의 사내 자유 게시판에서도 발견 할수 있었죠. 갑질 괴롭힘 피해자인 p가 우리 감사과의 집요한 '감사 갑질'과 일부 갑질 괴롭힘 가해자들의 은밀한 '공작'에 의해 중앙 부처에서 '추방'되고 쓰러졌을 때 저는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우리 중앙 부처에서 벌어진 이 무도하고 저열한 '감사 갑질'과 '부당 인사' 조치, 갑질 괴롭힘의 내막과 진상을 소상히 적은 글을 사내 '자유 게시판'에 올렸죠.
그러자, 저와 P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응원과 격려를 전해주는 직원분들도 물론 많았지만 근거 없는 소문과 평판으로 비방하거나 인신공격을 자행하며 2차 가해를 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지요. 제가 게시글에서 사용한 '괴물'이나 '악'이라는 메타포를 제대로 이해 못 해 지나치게 흥분하는 분들, 제 글의 맥락이나 요지를 반박하지는 못하면서 글을 못 쓴다며 비아냥대는 분, 메시지는 공격할 수 없으니 메신저를 인신공격하는 악플을 다는 분들, 아내가 남편이 저러는 거 알면 참 좋아하겠다며 걱정해 주는 분 등등 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더군요.
대변인형 악플러들은 졸속 감사를 벌인 감사과나 무리한 전보조치를 시행한 인사과의 입장에서 감사과정에서 흘러나온 근거 없는 악의적인 주장들을 마구 전파했죠. 본인들이 감사과 직원이나 해당 사무보조원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그들의 입장에 빙의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죠. 양비론형 악플러들은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면서 마치 자신들의 공감능력 부족을 객관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아서 생긴 것처럼 에둘러대는 직원들이죠. 가장 비열한 악플러들은 바로 인신공격형 악플러들이었죠. 이들은 논리도 맥락도 없이 제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덮어 높고 비난부터 하거나, 누가 전해줬는지도 모를 평판과 인신공격으로 저와 P 싸잡아 부부 공갈단 정도로 공격하는 질 낮은 몇몇 직원들이었죠. 제 글은 아예 읽어보지도 않고 "반대 눌렀습니다, 물론 글은 읽지 않았고요."라며 자랑스러워하는 수준낮은 찬반 놀이 빠진 악플러도 있었고요. 이들 중에는 심지어 변태 성향의 스토커처럼 제 글을 읽어보고 'P의 사진을 직원 조직도에서 자신이 직접 찾아보고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며 의기양양하게 변태적 소감을 밝히는 일베 수준 직원의 글도 있었어요.
세상은 넓고 물론 세상엔 다양한 성향과 자질, 상이한 성품과 인격의 소유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겠죠. 하지만 최근 발생한 대형 사고나 참사 뒤에 반복되는 혐오 조장 놀이와 피해자의 어울함이나 안타까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조롱글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어떤 병리현상을 드러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우리 사회 일부 구성원들의 이런 공감능력 부족을 인터넷상에서 뿐만 아니라 동료로서 같은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호모 엠파티쿠스 Homo empathicus가 함께 살아가던 '공감의 시대'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뿐인 '혐오의 시대', '관종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