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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에게 브라질을 사 주었다.

희한한 사랑의 방식


   엄마가 돌아가신지도 이제 1년이 넘었다.

엄마를 보내고 처음 몇달 간은 죄책감과 원망, 안타까움과 후회,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격랑에 완전히 휩쓸려 가는 것 같았다.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가 완전히 멈추기만을 기다리는 것 만큼, 엄마 잃은 불혹에 상실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이루어 질 수 없는 바람이겠지...


   애도하는 자의 감정은 파도와 같아서 멈출 수는 없지만, 단지 오르내리는 기복이 덜해질 뿐이다.

   일년이 지나고, 이제는 그리움만 잔잔하게 남아서 기억의 조각들이 따듯하고 얕은 바닷물에 자유로이 부유하는 물풀처럼 떠오른다.


   어쩌다 바닷가에 밀려온 기억의 조각을 줍는 것처럼 일상에 문득 밀려온 엄마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잠시 일렁이는 물결에 다시금 마음이 떠내려 가곤 하지만, 뭍에 단단히 밧줄을 매어 놓은 작은 배처럼 이제는 흔들릴지라도 휩쓸리지는 않고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여름 바다에 밀려온 것들은 대게 모나지 않고 가벼우며 햇살에 반짝이는 것들이 많다.

엄마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라서 날 선 유리 조각 같은 아픔은 이제 잘 깎이고 다듬어졌는지, 해가 드는 날은 동그랗고 귀엽기도 한 추억을 비추어 보며 예쁜 상자에 넣어두곤 한다.


   겨울에는 밤새워 끓여 종국에는 뽀얀 국물만 남는 사골 국처럼 엄마의 기억 또한 재탕과 삼탕을 거쳐 폭실하게 끓여 내면 뽀얗게 남는다. 신문지를 펼쳐 놓고 쪼그려 앉아 나물을 다듬듯이 정성껏 솎아 낸 기억의 다발을 한 줌 쥐어 넣은 사골 육개장 한그릇을 든든하게 비우고 나면, 마음이 허한 겨울 하루 또한 실하게 견뎌낼 수 있겠지.


  이제 엄마는 꽤 괜찮은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 유쾌하거나 아름다웠던 유년으로 나를 데려가기도 한다. 그렇게 죄책감은 측은함으로, 후회는 안타까움으로, 원망은 조금은 촌스럽지만 밉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다.  





   어린 눈에 엄마는 다소 희한한 사랑의 방식으로 나를 대했던 것 같다.

피곤해 죽겠다면서 상다리 부서지게  밥상을 차리고선 성질이란 성질은 다 부리는가 하면, 지긋지긋 하다 하면서도 또 머리를 빗겨주고 밥을 떠먹이는 그런 사랑의 방식.

   말을 지지리도 안 들어서 짐 싸서 나가라고 해 놓고서는 잠결에 축축해 실눈을 뜨면 내 이마에 볼을 대고 눈물을 흘리는 그런 사랑의 방식.

   고아원에서 주워 왔다 해 놓고서 내가 저녁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동네방네 다 뒤져 찾는 건 그렇다 치고, 그렇게 힘들게 찾아 놓고 또 늦으면 고아원에 보내 버린다며 혼꾸녕을 내는 그런 사랑의 방식.  


  엄마는 손이 맵고 야무져서 머리를 참 예쁘게 묶어 주었다.

그래서 학교 앞 코끼리 문방구 아줌마에게 매일 같이 칭찬을 받았는데, 너무 단단하게 묶는 바람에 머리 뿌리가 하얗게 다 올라와 나는 아직도 엄마 때문에 머리 숱이 없는 거라며 원망하곤 했다. 그렇게 오지게 뒷바라지를 해도 원망에 시달리는 것이 엄마의 직업병이라, 책임감은 익숙하고 사랑하는 법은 서툴렀기 때문에 그렇게 희한한 사랑의 방식이었겠지.

   하지만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으므로, 엄마는 그저 인간적이고 조금 모자란 삶의 모습에 충실할 뿐이어서 내게는 가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는 사랑일 것이다.  






   문득, 어린 내 딸의 눈에 나는 어떤 사랑의 방식으로 기억이 될까 궁금해 진다.

   딸이 네 돌이 되었을 때 한창 내 물건에 관심이 많았는데, 하루는 옷장 안을 파고 들어가 앉아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다. 브라질을 사달라며 서럽게 우는 아이는 소세지같이 통통한 손가락으로 엉망으로 파헤친 엄마의 속옷을 꼭 잡고 있다.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삐뚤빼뚤 바르고 뾰족 구두도 신었는데, 엄마처럼 맞는 '브라질'이 없어 한계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신세가 서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브라질을 사주었다.

내가 사준 것은 상파울루의 대규모 커피 농장도 아니고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의 노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펜트 하우스도 아니다. 그렇다고 진짜 브라질을 통째로 사 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시장통 어귀의 계단 상회에서 사춘기 여자아이를 위한 제일 작은 호수의 면 브라를 사서 대충 맞게 잘라 주었고, 평생 파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흡족한 사랑의 기억을 사 주었다.


   이것 또한 딸에게 기억될 희한한 사랑의 방식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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