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정 Nov 10. 2021

1. 덴마크 깡시골에서 한국 배가 먹고싶었다.

손서정의 <같은지구> 작업기

 내가 다닌 학교 Musik og Teaterhøjskolen은 식사시간 이외에도 항상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1층 공유 공간에 과일과 빵, 치즈 등을 놓아둔다. 주 메뉴는 바나나, 사과, 페어, 라이브레드, 비스킷, 그리고 치즈. 나는 페어(서양배)를 덴마크에 가서 처음 먹어봤다.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좋았다. 한국에 있을 때 배를 딱히 좋아한 건 아니었는데, 여기 배는 맛있어서 자주 먹었다.

보통 쉬는시간에 메인 홀에 가면 이런 간식들이 있다.

  노래 구상을 시작한 건 한 사건 때문이었다. 덴마크에서 락다운이 시작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 갑자기 한국에 있을 때는 별로 좋아지도 않던 한국 배가 너무 먹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당시 사귀던 애인에게 'I want to eat pear'라고 말했다. 걔는 1층 내려가서 먹으라고 했다. 그날 간식 바구니에 페어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먹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고, 한국 배라고. 엄청 동그랗고,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얗고, 단단하고, 아삭아삭하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그런 게 한국의 'pear'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 머릿속에 있는 '배'를 완전히 전달하지 못할 테니까. 아마 내 애인은 보지 않으면, 그 배를 먹어보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다. 내가 설명하던 '페어'를.


그래서 그냥 1층에 내려갔다. 그곳에 페어는 있었다. 한참 보다가 물만 한 잔 마시고 다시 강의실로 돌아왔다. 그날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았다. 만둣국을 만드는데, 덤플링이라는 용어를 쓰니까 친구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 거다. 왜 덤플링에 00가 안 들어가냐, 왜 00을 넣냐.... 왜냐하면 dumpling은 우크라이나에서는 디저트처럼 사과잼, 블루베리잼을 만들어 먹는 음식의 영어식 표현이었던 것이다. 김밥을 설명하고 싶을 때에는 코리안 스시, 추석을 설명할 때에는 코리안 땡스기빙 데이... 언어를 뺏긴 곳에서 온전히 표현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정하기로 했다.




 공통의 정서가 없고, 나의 문화가 주류가 아닌 곳에서 이해받기란 투쟁이다. 덴마크 깡시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내가 최초의 한국인 학생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왜 동양인들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하기 어렵냐, 너네 나라에서는 사마귀도 먹는다던데 맞냐, 자기는 '스시' 참 좋아한다(라면서 스프링롤 사진을 보여줌), 일본인과 중국인과는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냐...

봄에는 헤드마스터가 창 밖을 보며 가리키며 '저 나무 사쿠라랑 비슷하지 않냐' 물어봤었다. 마치 자신이 엄청나게 대한민국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곤니치와, 하면서 합장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처음엔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나도 덴마크에 대해서 똑같이 잘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미국의 역사는 알아도, 덴마크의 역사와 바이킹 신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일본인과 어떤 언어로 소통하냐고 물어봤던 친구는 노르웨이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옆 나라고, 언어가 비슷해서 서로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했다. 일본과 한국도 옆 나라니까 언어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서 물어봤던 거다.


이렇게 나는 너를 모른다. 이만큼 너도 나를 모른다.


나는 가끔 사람들은 각자 비눗방울 같은 막을 갖고 있고, 그 안에 그들의 세상이 있어서, 비눗방울 때문에 굴절되고 왜곡된 상태로 타인의 세상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같은 지구를 만들었다. 같은 지구에 있어도, 서로는 서로의 비눗방울 안에서 살 존재일 테니까.



나와 애인은 그날 밤 이 이야기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었다. 그리고 잠에 들려고 하는데, 북유럽은 미드섬머 기간이었어서 밤 12시에도 해가 쨍쨍한거다. 그래서 커튼을 치고 잠에 들었다.


당시에 만들었던 '같은 지구' 원곡의 가사를 소개한다. ('미드섬머'로 이름을 바꿀까 한참 고민했다)


같은지구 (ver. Denmark)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시 사쿠라 스프링롤 스튜 나도 모르는 언어들로 
한번도 말해본  없는 세상에 대해서 말했다
 번도   없는 이에게
하나를 말하면 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배는 노란색 동그랗고 하얀 
밤은 검은색 반짝이는 작은 
겨울은 함박눈과 칼바람
여름은 쏟아지는 장맛비

페어는 주황색 노란색
여름은 나잇에 다크블루로 변하고
윈터는 온종일 비와 구름
섬머에는 밤이 짧아지지

우리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들로 시간을 나눴고
여전히 지지 않는 북유럽의 해를 느끼며
커튼을 치고 잠에 들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