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남은 이야기
가까운 미래. 인류가 멸망할 것을 예감한 사람들은 기록에 온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숨결을 내뱉는 지구에서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캡슐 안에서 과거를 복기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기억의 무더기 중 하나. 바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주동화센터입니다. 랑겔리니의 해안가 바위 위, 인어공주 동상이 위치했던 곳에 자리 잡고 있죠. 거세진 파도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어공주 동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카르빈으로 만들어져 수소 폭발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했고, 영원히 전원이 꺼지지 않는 데이터 저장장치로 세계의 동화들을 모아놓을 수 있었습니다.
백설공주, 어린 왕자, 잭과 콩나무, 마오리족의 어린이들이 사랑한 작은 키위새 이야기, 마다가스카르 섬의 탄생을 일러주는 땅의 신 이야기, 토이 스토리와 은하철도 999, 인터넷에 떠돌던 각종 이야기들...
모두 한 곳에 모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토끼와 거북이, 바리데기, 뽀로로 등 각종 동화들을 우주동화센터로 보냈습니다. 이 동화들은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음성 언어로 녹음되었으며, 우주에 송출하기 위해 모스 부호로도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음파에 이야기를 실어 우주로 보냈죠. 먼 훗날 어디선가 어떤 존재가 동화들을 해석하고, 동화를 모으던 과거의 지구인을 어렴풋이 감각하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나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서, 이 동화들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우주동화센터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인류가 멸망하고 한참 후, 우주동화센터는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선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데이터로 전달되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뒤섞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계의 동화들이 재료가 되어, 우주동화센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야기가 우주에 퍼져, 긴 시간을 돌아, 제 귀에까지 흘러들어 왔네요.
제가 이제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그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