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자식 갈등이 청년농을 무너뜨리고 있다
농촌으로 돌아오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위험한 그림자가 있다.
바로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청년농의 극단적 선택이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차로 1시간 이내 반경 안에만 이미 3건을 알고 있다.
신문에 실리지도 않는 이야기들,
그러나 농촌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강의장에서 늘 이렇게 말한다.
가슴에 손을 얹어보세요.
지금부터 부모와의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내려보세요
놀랍게도...
아니,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10명 중 9명은 손을 내리지 못한다.
어제도 그랬다.
전북농식품인력개발원에서 6시간 교육을 진행했는데
대부분의 청년들은 끝내 손을 내릴 수 없었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농촌의 일상이고,
그 일상은 이제 위기가 되었다.
한국인은 관계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다.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와이프’
이런 표현은 한국인에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외국인이 들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저 사람은 남편을, 아내를 상대와 공유한다는 뜻인가?
그만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언어문화다.
이 문화는 일상에서도 아주 예민하게 작동한다.
결혼해서 아내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은 남편이
“너무 맛있다. 뭐 넣고 끓인 거야? '우리 집'이랑은 다르네”
라고 말했다간,
우리 집? 당신한테 우리가 어디야?
그다음 분위기는 안 봐도 뻔하다.
이 짧은 대화만 봐도
한국의 ‘우리’라는 말이 얼마나 강력한 의미와 감정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우리’라는 개념은
버스 접촉사고만 나도 ‘우리편 의식’이 작동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면
승객 대부분은 상황을 보기도 전에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버스가 잘못하지 않았을 거야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울타리가 만들어낸 자동 판단이다.
2002년 월드컵 – 관계문화가 만든 기적의 순간이었다.
평소 축구도, 군대 이야기에도 가장 관심이 없던 여성들까지
거리 응원의 최전선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라는 정체성이 가진 폭발적인 힘이었다.
그때 나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그 열기를 일본에서 그대로 지켜보면서
한국인의 ‘우리 문화’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몸으로 느꼈다.
나는 동아일보에 직접
“요코하마로 오라! 붉은 전사들이여!”
라는 내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라는 말이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움직이게 만들던 시대였다.
그 직후 (12월 1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리’의 경계가 바뀌며
동과 서로 나라가 갈라졌다.
‘우리’ 문화는
강한 결속을 만들기도 하고
강한 배타성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구조가
부모–자식, 귀농–기존주민,
마을 공동체의 모든 갈등에 그대로 투영된다.
농업은 “정답이 없는 산업”이다**
농업은 수학처럼 답이 있는 산업이 아니다.
두둑 높이
비료량
관수 시점
밭 갈기 깊이
수확 타이밍
이 모든 것이
경험과 감각, 토양, 기계, 기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리고 자식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그렇게 안 해도 돼요
둘 다 틀리지 않다.
그렇기에 다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나는 우리 대학 교수 단톡방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내 연구실에 ‘차 한잔 하자’고 노크하는 교수가 없어 너무 좋다.
점심 같이 먹자고 하는 교수가 없어 나는 너무 좋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들었겠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직장에서의 관계는 업무 관계로 한정하고 싶었다.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의사 결정이 감정에 흔들리고
A교수가 싫어하는 B교수를 나도 싫어해야 할 것 같은 구조가 생기고
판단의 독립성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정서적 거리는 두되, 업무의 신뢰는 지킨다
는 원칙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몇 해 전,
교수들이 직접 뽑는 무기명 투표에서
나는 교수협의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내 편이어서가 아니라,
“저 사람은 누구 편도 들지 않을 것이다”라는
신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농촌 관계관리 교육은 강사 채상헌의 스킬이 아니라,
정부가 1억 원 넘는 예산을 들여 개발한 공식 프로그램이다.
그 시작은
내가 농식품부 국민공감농정위원회 인력소위 위원장으로 있을 때
“농촌의 진짜 문제는 관계”라고 제기한 데서 출발했다.
이후 농식품부는, 전문업체를 선정해 심리학자, 교육공학자, 농촌 전문 연구자, 행동분석가들로 구성해
전국 단위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나도 거기에 직접 참여했었다.
부모농·청년농·귀농귀촌인 대면 인터뷰
마을 구성원 심층 인터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상황극 영상 제작
갈등을 이해하는 카드게임형 액션러닝 도구 개발
실습 중심의 워크숍 디자인
강사용·학습자용 표준 매뉴얼 제작
나는 마지막 단계였던, 강사양성 교육까지 직접 맡았었다
하지만 당시 농업계는
아직 이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때였고,
강사들조차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 강의안과 교재, 매뉴얼이
오롯이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상태다.
그때는 너무 앞서갔던 개발이었고
지금은 오히려 너무 늦었다
농촌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밭의 흙을 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가는 일이다.
“기술은 유튜브로 배울 수 있지만,
관계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한다”
땅에 대한 분석보다 그 땅 위에서 살아온 부모나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부모 : 자식,
전입인 : 기존주민
농업인 : 지역사회.
이 갈등을 개인에게만 맡겨두면
무너진다.
나는 이미 그 현장을 너무 많이 보았다.
지금 농촌에 필요한 것은
스마트팜 기술보다
귀농 귀촌 지원보다
영농기술 교육보다
먼저 ‘관계 회복 교육’이다.
관계관리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농촌의 미래와 청년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우리 농촌의 갈등을 줄이고
서로의 마음을 다시 잇는 데 나서야 한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 가장 빠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