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재가 가르쳐준 삶의 나침반
앞선 장에서 밝힌 대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짧고 흐릿한 스틸컷 두 장으로만 남아 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로서의 나는 늘 ‘좌표 없는 항해’에 가까웠다.
아버지라는 기준,
좋은 어른의 윤곽,
언제든 뒤에서 등을 비춰줄 그림자가 없었던 탓이다
돌이켜보면 그 결핍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현재진행형인지 모른다.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디쯤이 ‘옳다’고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처럼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고 출렁였다.
가끔은 조용히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만약 다시 해볼 수 있다면,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인생에는 그런 기회가 없다.
누구에게도 두 번째 초안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다시 채워볼 재시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람은 남는다.
비록 좌표를 잃고 흔들리며 살아온 내 모습일지라도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어떤 기준점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반면교사라 할지라도...
그 위에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길을 그리고
자신들만의 아버지 모습을 세워가길 바란다.
아버지가 내게 남기지 못했던 좌표를
나는 내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다.
그 마음이,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듯 이어온 나름의 노력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인지 모른다.
이어서
아버지의 부재를 안고 흔들리며 지나온 어린 시절은
훗날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지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삶은 그 빈자리의 자리를
전혀 다른 이들의 손길로 채워 넣곤 했다.
누군가의 목소리, 누구의 눈빛,
한마디 말, 혹은 한 글자 같은 것이
내 삶의 나침반처럼 조용히 방향을 바꿔주었다.
그 그림자 끝에서 나는
일본 유학 시절, 뜻밖의 한 만남을 통해
스스로 삼았던 평생의 좌표를 눈에 보이는 글씨로 받게 된다.
하나는 ‘농(農)’이라는 나의 뿌리,
다른 하나는 ‘實事求是’,
사실에서 진리를 구하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글씨로 보이게 했다.
그 두 글자는 이후 20여 년 동안
내 연구실 벽에 조용히 걸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잡아주고,
오만해질 때마다 나를 낮추고,
망설일 때마다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아버지가 남기지 못한 좌표를,
나는 그 눈에 보이는 글씨에서 비로소 하나 얻은 셈이었다.
이제 이야기는
아시카가에서 만난 일본의 한 작가가 써준 ‘두개의 글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