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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7. 빈자리로부터의 항해

아버지의 부재가 가르쳐준 삶의 나침반

by 시골살이궁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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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장에서 밝힌 대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짧고 흐릿한 스틸컷 두 장으로만 남아 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로서의 나는 늘 ‘좌표 없는 항해’에 가까웠다.

아버지라는 기준,
좋은 어른의 윤곽,
언제든 뒤에서 등을 비춰줄 그림자가 없었던 탓이다

돌이켜보면 그 결핍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현재진행형인지 모른다.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디쯤이 ‘옳다’고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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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내 마음은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처럼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고 출렁였다.

가끔은 조용히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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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시 해볼 수 있다면,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인생에는 그런 기회가 없다.

누구에게도 두 번째 초안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다시 채워볼 재시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람은 남는다.

비록 좌표를 잃고 흔들리며 살아온 내 모습일지라도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어떤 기준점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반면교사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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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길을 그리고

자신들만의 아버지 모습을 세워가길 바란다.


아버지가 내게 남기지 못했던 좌표를
나는 내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다.

그 마음이,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듯 이어온 나름의 노력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인지 모른다.


이어서

아버지의 부재를 안고 흔들리며 지나온 어린 시절은

훗날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지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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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삶은 그 빈자리의 자리를

전혀 다른 이들의 손길로 채워 넣곤 했다.

누군가의 목소리, 누구의 눈빛,

한마디 말, 혹은 한 글자 같은 것이

내 삶의 나침반처럼 조용히 방향을 바꿔주었다.


그 그림자 끝에서 나는

일본 유학 시절, 뜻밖의 한 만남을 통해

스스로 삼았던 평생의 좌표를 눈에 보이는 글씨로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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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농(農)’이라는 나의 뿌리,

다른 하나는 ‘實事求是’,

사실에서 진리를 구하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글씨로 보이게 했다.

그 두 글자는 이후 20여 년 동안

내 연구실 벽에 조용히 걸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잡아주고,

오만해질 때마다 나를 낮추고,

망설일 때마다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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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기지 못한 좌표를,

나는 그 눈에 보이는 글씨에서 비로소 하나 얻은 셈이었다.

이제 이야기는

아시카가에서 만난 일본의 한 작가가 써준 ‘두개의 글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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