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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an 13. 2023

답답해서 시작한 글

요즘 속이 답답하다. 소화가 안된다거나 속상하다는 뜻은 아니다. 숨을 크게 내쉬어도 시원하지 않고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느낌 자체가 너무 끔찍해서 빨리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다. 몸속 어디쯤 있는지 모르겠는 응어리가, 토해내고 싶어도 토해지지 않는 그런 답답함이다. 낯선 기분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공황 장애'라고 하는 놈일 것이다.

아니, 혹은 카페인 금단 현상일까? 오늘 오전 11시 넘어서 일어난 후로 내가 먹은 건 요거트에 그래놀라 한 그릇과 믹스커피 한 잔 뿐이다. 그리고 생수 두 컵 정도는 마셨을 거다. 아, 믹스커피를 마실 때 버터구이 오징어 한 가닥도 먹긴 했다. 거기에 타우린 성분은 얼마나 들어있었으려나. 

한참을 걸어 도착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아들이니 아주 조금씩 진정되는 듯하다. 역시 카페인 금단 현상이었나. 머리가 아픈 건 그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며칠 내내 나를 괴롭힌 미세먼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가 와서 미세먼지는 없다는데 안개 낀 축축한 날씨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갑작스레 올라간 기온도 한몫 했다. 며칠 전에 입던 대로 패딩 점퍼를 입었는데 조금 걸었다고 땀이 나려고 하니까. 아주 얇은 점퍼를 걸치고 나오는 건데, 하고 몇 번을 후회했다. 

날씨가 풀린다고 반가워할 일도 아니다. 바로 다음 주부턴 다시 영하 8도까지 내려간단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날씨, 계절에 맞춰 옷을 쇼핑하는 기쁨도 누릴 수가 없다. 일단 풍족하게 쇼핑할 돈도 없긴 하지만. 3월에 있을 경칩이나 되어야 본격적으로 추위가 풀린다고 하는데 아직 1월 중순밖에 안 됐으니 조금 더 참아야 한다. 

어릴 땐 참는 걸 참 잘했다. 치과에 가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않았고 하교하는 길에 오줌이 마려워도 꾹꾹 잘도 참았다. 열쇠가 없어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지 못 해도 옥상과 놀이터를 전전하며 외로움을 참아냈다. 몇 년 동안 엄마를 보지 못해 나를 보살펴주는 어른이 없다고 느낄 때도 잘 참아냈다. 학교에서 아이들 앞에서 창피하고 분한 순간에도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천장을 올려다 보며 눈물을 눈물샘 안으로 꾹 눌러넣었다. 우는 건 감정을 내보이는 것이고 내 진짜 감정을 내보이면 약점이 되니까. 난 약함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이제는 그 믿음이 흐려진 것인지 눈물을 참지 않는다. 아니, 거짓말을 했다. 열에 세 번 정도는 눈물을 참는다. 왜 우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드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간재리 앞에서도 나는 눈물을 참곤 한다. 눈물과 마찬가지로 화도 참지 않는다. 아니 '못' 참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제는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레버가 고장난 것 같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왜 참지 못 하는 것에 대해 주절대고 있는걸까? 무의식적으로 내가 지금 이렇게 답답한 것은 그 모든 참았던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눈물을 밀어넣었던 순간 하나, 내뱉지 못한 욕설을 꿀꺽 목구멍 깊숙히 삼켜버렸던 순간 둘, 나를 향한 무시의 시선을 모른 척 외면했던 순간 셋... 

예전에 상담을 받을 때는 내 안에 화가 많다고 생각했다. 분명 화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내 안에는 억울함이 더 많았다. 억울해, 정말 억울해.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달리는 기차 앞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소리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 정말 억울하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더 잘될 수 있었다, 난 더 잘날 수 있었다, 난 더 똑똑할 수 있었다, 난 더... 더... 내 밑바닥을 긁어내고 긁어내면 더... 더... 거리는 미련 가득한 부스러기들이 계속 계속 시커먼 흙먼지를 일으키지 않을까. 

정체가 뭘까, 이 낯부끄러운 욕망의 시발점은 대체 어디일까. 올해 겨울을 힘겹게 나면서 나 자신이 감정적 히키코모리라는 생각을 했다. 시시각각 바뀌는 사소한 감정의 신호를 드러내는 방법을 모른달까. 사람을 만나도 어느 정도 정돈된 생각을 말로는 표현하지만 비언어적인 신호는 드러낼줄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너무 자의식이 강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눈알을 굴리면서 내가 눈알을 굴리고 있네, 다리를 떨면서 다리를 떨고 있네, 나 초조한가? 초조함을 드러내면 상대가 불편할텐데... 방금 그 표정은 좀 불쾌해 보이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실시간으로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제어하는 습관이 너무 오래되어 그만둬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을 만날 때 긴장한 상태에서 나오는 방어기제인지 여전히 튀어나오곤 한다. 아마 정말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그래, 정말 피곤하다. 나도 내가.

다행인 건 답답함에서 시작된 이 글이 끝날 무렵에는 머리가 꽤 맑아졌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라는 도구의 신비함이랄까,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마치 글쓰기에 대한 간증처럼 흘러가버렸는데, 난 더 강력하고 미치광이 같이 간증을 하고 싶다. 글쓰기가 나를 칠흑같은 구렁텅이에서 날 구원해줬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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