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15일 숙박)
이번 여행은 온천을 테마로 해서, 일본 전역에서 온천하기 좋은 마을을 찾다가 오이타현의 히타를 목적지로 하게 되었다. 히타의 장점으로는 일단 후쿠오카 공항 통해 갈 수 있어서 비행시간이 짧고, 공항에서 히타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이동이 용이하다는 것. 그리고 붐비지 않는 시골마을이라는 점이 메리트였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것은 히타의 온천 료칸. 객실 내 노천 온천이 있어서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온천할 수 있을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일본 여행 카페와 온갖 블로그 후기를 보고 결정한 곳은 '하타고 카야우사기'. 독채 건물을 쓸 수 있었고, 내탕과 노천탕이 모두 딸려 있었다. 3월 중순은 아직 날이 꽤나 차갑기 때문에 내탕에서 몸을 좀 데우고 노천온천으로 가면 딱이겠다 싶어서 2박 예약했다. 아고다 통해서 예약, 총 1,042,989원.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고속버스를 타고 히타 버스 터미널에 하차. 짐을 관광안내소에 맡기고, 진격의 히타를 즐긴 뒤 료칸의 송영서비스 시간에 맞춰 히타역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고다'를 통해서 예약했고, 아고다 예약페이지에서 대화를 통해서 송영 서비스를 요청했다. 픽업 시간은 5시, 시간에 딱 맞게 차량을 보내주셨다. 차량에 카야우사기라고 쓰여있었고, 직원분이 기다리는 나를 먼저 알아봐 주시고 짐을 차에 실어주셨다. 역에서 한 10분 달렸을 까, 흐르는 강변 옆에 위치한 료칸 카야우사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직원분이 내 짐을 객실에 먼저 가져다주셨고, 나는 바로 프런트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방 키도 카드키가 아니라 열쇠를 주셨다. 이런 아날로그 감성, 너무 좋단 말이지. 료칸답게 부지 내 조경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아직 초 봄이라 나무는 헐벗은 느낌이었지만 이끼를 입은 바위와 조형물들이 목재 건물과 조화로웠다. 정원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눈요기할 정도는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객실은 미야비. 호수로 말하자면 301호로 칭해지나 보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중문이 있고 그걸 여니 다다미 방이 나왔다. 다다미 방 옆은 서양실처럼 된 공간이고 거길 지나면 세면대와 화장실이 나오며, 세면기 왼쪽으로 내탕과 노천탕이 연결되어 있었다.
식사할 때 직원분에게 물어봤는데, 이 건물이 료칸이 된 것은 16년 전이지만 건물 자체는 140년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오래된 건물인데, 어느 부자가 지은 듯 실내의 스테인드 글라스며 전등 같은 게 앤티크 하면서도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하긴, 온천수가 나오는 부지에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을 올렸다면 보통 부자가 아니었을 거다. 테이블이나 의자 같은 가구, 문의 경첩 같은 부분에서 세월이 묻어났다. 건물의 근간이 목재라 그런지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기분이었다. 바깥의 햇빛이 절제되어 들어오게끔 만들어진 불투명한 유리도 맘에 들었다. 다만 나는 콘크리트 건물에서 포장된 듯 살아왔는데, 여기는 문이 나무와 유리로만 되어있고 본채와 연결된 노천탕의 출입문이 허술한 부분이 있어서 밤에는 보안 측면에서 좀 무서웠다. 그래서 전등 하나를 켜두고 잤다. 워낙에 사람의 통행이 없는 곳이어서 다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에 직원분이 이부자리를 깔아주신다. 다다미 방엔 역시 이불 깔고 자야지. 까는 이불도 꽤나 도톰하고 이불 무게도 적당해서 잠도 잘 잤다.
다른 사람과 섞여서 온천하는 건 개인적으로 좀 불편해서, 개별 온천이 있는 방을 고른 거였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미야비 객실은 내탕이 있고 거기서 연결된 문으로 밖으로 나가면 노천탕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내탕에 딸린 샤워시설로 몸을 씻고 내탕에서 잠시 몸 담드고 뜨끈해진 채로 노천탕으로 가서 온천하니 정말 '하아~'소리가 나오면서 온몸의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수질표도 나와 있었는데 잘은 모르겠고. 왼쪽 다리 정강이 쪽이 욱신거리는 감이 있었는데, 여기서 하도 자주 온천에 몸을 담가서 그런지 신경 쓰였던 게 싹 사라졌다. 온천의 효과인지, 심리적인 부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물이 매끈매끈해서 피부가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는 느낌. 하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일단 혈액순환이 잘되니까 건강에 좋을 수밖에 없겠다. 평소 수족냉증이 있는 나로서는 몸보신하는 기분. 아무튼 내 전용 온천이라 원할 때마다 언제든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샤워하고 나면 조금 추운데, 내탕의 물이 잘 섞이도록 저어주고(온천수가 위에서부터 떨어지기 때문에 물 위쪽은 뜨겁고 아래쪽은 상대적으로 덜 뜨겁기 때문에 들어가기 전에 저어주는 게 좋다) 탕 안에 슬금슬금 다리를 밀어 넣으면 뜨끈한 기운이 확 올라오고, 몸을 다 집어넣으면 나도 모르게 캬아~ 하는 어르신 같은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다. 온천도 너무 오래 하면 안 좋아서, 내탕에서는 5분 정도 있으면서 몸을 데우고 종종걸음으로 노천탕으로 간다.
코 끝에 닿는 공기는 찬데, 몸은 따끈한 느낌. 이게 바로 노천 온천의 묘미다. 머리 위에 수건을 얹어 두고 얼굴만 쏙 내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탕이 꽤나 깊은 편이라 몸을 꾸깃거리지 않고 그냥 앉아도 푹 잠긴다. 료칸 옆에 강이 있는데, 강 흐르는 소리가 쏴아아 들렸다. 차량이나 도시 소음 하나 없이, 그냥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곳. 그냥 멍하니 있어도 20분이 훅 지나갔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밤에도 온천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른 아침에 하는 온천이 가장 좋다. 평소에는 암막 커튼을 쳐두고 알람소리에 죽상을 하고 겨우 일어나서 씻고 출근을 하는데, 여기서는 불투명한 창으로 은근히 햇살이 들어올 무렵 저절로 눈이 떠졌다. 물론 전날도 온천을 하고 일찍 잠들어 버린 탓도 있을 테지만.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6시... 빨리 온천을 하고 싶어서 생체시계가 일찍 눈을 떴나 보다. 좋다구나 하고 서둘러 샤워를 하고 또 온천에 몸을 담갔다. 하늘이 점점 더 밝아져 오는 것을 보면서 따뜻하고 매끈한 온천수를 즐겼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이게 돈 쓰는 맛이지.
호텔처럼 치약칫솔, 머리끈, 바디타월, 빗 같은 어메니티를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샤워 쪽에는 샴푸, 린스, 바디샤워가 비치되어 있는데 이 제품들이 향기가 참 좋았다. 평소 쓰는 것보다 향이 좋아서, 머리 감고 나서 절로 내 머리칼 냄새를 킁킁 맡아볼 정도. 온천하고 나오면 피부도 매끈해지고 좋은 향기가 나고 얼굴에도 혈색이 돌고 화장도 잘 먹었다. 무엇보다 몸이 가볍다. 이거 만병통치약 아니냐고.
료칸 내 공용 온천도 있다. 나는 객실 내 온천만 이용해서 가보지는 않았지만. 여탕과 남탕이 매일 교체되는데 하나는 노천탕 하나는 내탕이라고 한다. 카야우사기 자체가 객실이 그리 많지는 않고 개별탕 딸린 객실들도 있어서, 공용 온천에서도 여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료칸의 자존심이라고 한다면 가이세키를 빼놓을 수 없다. 료칸에서는 보통 저녁에 가이세키로 불리는, 코스요리를 내놓는데 이 요리가 그 료칸의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료칸마다 다르지만 저녁 식사를 보통은 저녁 6시 정도에 한다. 가이세키 먹는데만 해도 1시간~2시간 걸리기 때문에. 그래서 가이세키까지 포함한 료칸에 묵는다면 체크인을 저녁 식사 시간 고려해서 일찍 해야 한다.
나는 2박을 예약했기 때문에 도착한 날의 저녁, 다음날 아침과 저녁, 마지막날의 아침 이렇게 총 4끼의 식사를 료칸에서 했다. 요리 종류는 조금씩 바뀌었고 많은 재료가 오이타현에서 나는 것이었다. 역시 료칸은 지역 사랑. 다만 나는 회와 같은 날 것을 잘 못 먹기 때문에 예약하면서 식사 중 사시미 메뉴가 있다면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고 확인받았다.
식사는 체크인하며 갔었던 프런트가 있는 식당 건물에서 진행된다. 저녁은 6시로, 10분 전에 객실로 식사 안내 전화를 주셨다. 전화받고 유카타를 입고 어기적어기적 식당 건물로 갔다. 객실마다 별도로 식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우리끼리만 프라이빗하게 식사할 수 있다. 한국 고객이 많이 찾는지 가이세키가 진행되기에 앞서 한국어로 적힌 오늘의 식사 코스를 안내받았다. 식전주부터 해서 계절요리로 전채가 나오고, 국물, 회, 따뜻한 요리, 생선, 고기, 전골, 밥, 디저트가 이어서 나오는 모양이었다. 나름 모든 종류의 요리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곧이어 전채요리가 나왔는데, 요리의 식기며 담음새가 너무 예뻤다. 음식 간이 자극적이지 않은 것이 특징인 듯싶었다. 너무 짜고 단 걸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딱 좋았다. 다만, 내가 사전 요청한 사항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았는지, 중간에 숙성회가 나와서 이걸 토종닭구이로 바꿔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아무튼 이후 나온 생선과 소고기, 닭전골 모두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나온 두유 푸딩까지 완벽하게 클리어! 음식이 조금씩 나오지만 꽤 다양한 종류가 나오므로 다 먹고 나니 배가 많이 불렀다.
둘째 날 아침에는 일찍 온천을 하고 기분 좋게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아침은 시간대를 정할 수 있었는데 나는 8시로 요청. 시간에 맞춰서 식당으로 가서 내 방 이름이 적힌 방으로 들어가니 식사 세팅이 다 되어있었다. 아침의 메인 메뉴는 말린 생선 구이와 순두부. 물론 샐러드, 계란말이, 무와 고기를 넣은 찜요리, 절임반찬류와 파와 버섯을 듬뿍 넣은 된장국도 따라 나와서 식탁이 풍성했다. 중간중간 입가심할 수 있도록 호지차도 세팅. 생선의 경우 화롯불에 직접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말린 생선이라 그런지 비리지도 않고 맛있었다. 원래 아침 챙겨 먹지 않는데 여기 와서는 온천하고 땀 빼고 오니 식욕이 돌았다. 반찬도 골고루.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디저트로는 요구르트와 함께 녹차, 커피 중 고를 수 있는데 나는 녹차를 골랐다. 약간 연하게 우린 녹차가 취향. 오히려 어제저녁보다 오른 아침 식사가 더 만족스러웠다.
둘째 날 저녁식사 메뉴를 보니 아주 복어의 날이었다. 이 귀한 것을... 나는 날생선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 맹점. 약간 문제가 있었던 것이 어제 내가 회를 먹지 않는다고 한 요청사항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에 이어서 둘째 날 저녁에도 그게 반영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코스 중 있었던 초밥과 복어회를 직원분이 급히 회수해서 약간 익혀서 가져다주셨다. 익힌 복어도 쫄깃쫄깃하니 맛있었다. 그리고 이어 나온 생선 조림은 살이 오동통했다. 생선을 자주 먹지 않다 보니 가시 바르는 게 서툴러서 그런지 먹기는 조금 불편했지만, 어디서 이런 좋은 생선 요리를 먹어보겠냐며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이어 나온 소고기는 말해 무엇. 이 지역 토속 된장 소스를 얹어서 나왔는데 기름진 소고기와 잘 어울렸다. 이어서 복어 튀김과 전골이 등장. 이곳은 기본적으로 생선과 고기 요리가 모두 나오는 데다 구이, 찜, 전골까지 다 내주는 모양이다. 이런 호사스러운 가이세키라니. 디저트로 바닐라 아이스크림까지 싹 비우고 객실로 돌아왔다.
이 날은 호텔 조식을 떠올리게 하는 원플레이트 요리에 연두부와 도미찜이 나왔다. 어제 아침과 비슷하게 다양한 반찬들. 무엇보다 된장국이 정말 내 취향이었다. 백된장을 썼는지 부드러운 맛에 야채가 듬뿍 들어가서 국물이 정말 맛있었다. 사실 된장국에 우메보시만 있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했을 텐데. 그런데 도미찜까지 있다니! 아침부터 도미찜이라니, 살이 통통하고 담백한 도미를 발라 먹으며 이곳을 떠나면 또 언제 이런 든든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엔 말린 생선이 나왔지. 여긴 조식에 기본적으로 생선이 들어가나 보다. 개인적으로 생선을 그리 즐겨 먹지는 않는데, 여기서 머무는 2박 3일 동안 올해 상반기에 먹을 생선을 다 먹은 듯싶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았던 료칸이었다. 일단 온천이 좋음. 특히 개별탕 딸린 객실을 예약했다면 최대한 자주 온천 하고 싶을 정도로. 수질이 좋고 어메니티도 좋았다. 객실도 예쁘고 공들여 가꾼 티가 났다. 아쉬웠던 점은 역시 나의 요청사항이 누락된 식사였을까. 현장에서 말했을 때 수정해 주시긴 했지만 미리 요청한 부분이고 료칸 측 확인도 받은 거였는데, 미리 준비되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 나는 호불호에 따른 요청사항이었지만, 만약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크게 당황했을 듯. 그리고 식사를 개별실에서 해줄 수 있게 해 줘서 조용히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는 게 좋았지만, 다시 말하면 이건 내 식사 속도에 맞게 음식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아침 식사할 때 디저트가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꽤 길었다. 벨이 있었지만 잘 동작하지 않는 듯. 식사 가져다주실 때 디저트는 30분 뒤에 가져다 달라하는 식으로 미리 시간을 지정해서 요청하는 게 나을 듯싶다. 4월에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올 예정이라, 꽃이 핀 시기의 카야우사기를 다시 한번 리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