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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r 30. 2024

히타 마메다마치 탐방

히타-후쿠오카 여행 2일 차

(2024년 3월 14일 여행)

 

 어제 도착한 료칸에서 밤 온천을 하고 일찍 잔 탓인지 아침 6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서울에서는 암막커튼을 쳐놓고 알람 시간에 마지못해 눈을 떴고, 주말에는 해가 중천에 걸릴 즈음에야 비척비척 일어났었는데. 여기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들어오는 은근한 빛과 아침 온천을 하고 싶었던 욕망이 합쳐져 저절로 기상! 두텁고 무거운 이불을 덮고 자서 그런지 머리도 개운했다. 침실 옆 방으로 나가서 커튼을 젖히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천 온천이 보였다. 아침 온천, 렛츠고!


아침에 눈떠서 커튼 젖히자 보인 풍경
아침 온천, 평화롭고 행복했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내탕에서 몸을 5분 정도 담근 뒤 노천 온천으로 나갔다. 약간 차가운 아침 공기의 신선함을 느끼면서, 온천에 발을 들이미는데 뜨끈한 기운이 확 퍼진다. 나는 손발이 찬 편이라 늘 약간 발이 시린 채 사는데, 따뜻한 물속으로 들어가니 절로 혈액순환이 잘 되는 기분이다. 료칸 옆에 흐르는 강물 소리만 들리고, 물속에 자리 잡고 앉아 있노라니, 이미 많이 녹아내린 피로가 완전히 씻겨 간다.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몸을 씻고 나왔는데 평소엔 좀 허옇게 질려있던 얼굴에 혈색이 돈다. 이래서 온천이 좋은 거구만. 가능하다면 매일 하고 싶었다.


든든한 조식

 

 료칸에서 준비해 준 든든한 아침 식사를 하고, 료칸의 차를 얻어 타고 히타역으로 갔다. 어제는 진격의 거인을 쫓아 히타를 돌아다녔다면 오늘은 히타의 유명한 관광지, '마메다마치'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히타역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마메다마치의 입구에 도착한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마메다마치다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마메다마치에서 유명한 간장가게나 양조장 같은 곳을 목적지로 두고 걸으면 어느 순간 '아 여기가 마메다마치구나' 싶어 진다.  


https://brunch.co.kr/@saddysb/245



마메다마치 산책과 기념품 쇼핑

 

마메다마치에서 발견한 정겨운 문방구

 

 나는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마메다마치에 도착했는데 이곳의 식당이나 카페들은 11시 정도는 되어야 문을 여는 모양이었다. 거리 자체가 아주 한산했는데, 나는 우선 점찍어 두었던 'Hita Shoyu Hina-goten(히타 간장 히나 고텐)'으로 갔다. 히타는 예부터 물이 좋아서 온천도 온천이지만 간장, 된장 같은 장류나 술 종류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마메다마치에도 이를 앞세워 간장, 된장과 양갱 가게들이 많다. 히타 간장 히나 고텐은 그런 제품 판매와 더불어 히나마츠리에 볼 법한 히나 인형 박물관을 겸한 곳이었는데, 사실 나는 인형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가게에 간장 소프트 아이스가 있어서 궁금해서 냉큼 하나 샀다. 간장 아이스크림이라니, 대체 무슨 맛일까 싶었는데 달달한 우유 소프트 속에 은은하게 간장의 짠맛이 감도는 것이 맛있었다. 역시 단짠은 실패하지 않지.


간장 소프트 아이스크림, 달콤 짭짤!


https://maps.app.goo.gl/wmKhr1GNxUsZ3CZd9


 그런데 좀 전까지는 조용했던 마메다마치가 조금씩 북적이기 시작했다. 가게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히타-유후인-다자이후를 묶어서 하루에 도는 투어버스가 도착했단다. 투어 그룹은 거의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어쩐지 익숙한 한국말이 많이 들리더라니. 간장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 나를 보고 그거 맛있냐며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맛있다고 따봉을 몇 번 날렸더니, 한국 사람들이 가게 앞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어제는 한국 사람을 거의 못 만났는데, 괜히 반가웠다. 개중에 혼자 여행온 여자분이 있어서 대화하다가 뜻이 맞아서 같이 마메다마치 구경을 하게 되었다.


조용한 마메다마치
옛 스타일의 가옥이 운치를 더한다

 

 보니까 마메다마치 초입에 주차장이 있던데 거기 대형 버스가 3대 도착해 있었다. 새로 사귄 친구도 이 투어로 왔는데, 한 시간 뒤에 유후인으로 출발이라고. 같이 밥이라도 먹고 싶었는데 아직 제대로 문 연 식당도 없고 둘 다 배가 그리 고프지도 않아서 어쩔까 하던 차에 가라아게 가게를 발견했다. 연식이 상당히 된 것 같은데, 무엇보다 할머니 혼자 하시는 이 가게, 맛있어 보였다! 한 컵에 300엔으로 가격도 저렴해서 하나씩 사 들고 가게 옆에서 먹기로 했다. 가라아게는 안심 내지는 닭가슴살 같은 담백한 부위를 튀긴 것 같았는데, 뻑뻑하지 않고 육즙이 느껴졌다. 갓 튀긴 따끈한 가라아게 최고. 가게 근처에 자판기가 있어서 음료수랑 같이 마시면서 먹었는데, 이런 게 혼자 온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계획에 없던 걸 먹고(심지어 맛있고). 친구는 시간이 되어서 버스를 타고 떠났고, 우리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했다.


발견했던 가라아게 가게
따끈하고 육즙이 느껴졌던 가라아게
마트 구경하다가 구매한 귀여운 시바 카보~스(녹색 유자?)
쿠마모토의 마스코트 쿠마몬이 많이 보였다, 여긴 오이타현인데. 현을 넘나드는 쿠마몬의 인기

 

 찾아보니 '히타 간장 본점'이 따로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사실 간장은 아까 방문했던 히타 간장 히나 고텐에도 있었지만, 본점은 가봐야지 싶어서. 본점 건물은 조금 더 한산한 골목 안에 있었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된장으로 만든 된장국을 끓여서 손님들에게 맛볼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맛있었지만 나는 요리하면서 된장보다는 간장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했더니 만능 간장, 유자 간장, 물에 희석해 먹을 수 있는 쯔유로 이루어진 베스트 제품 세트를 추천해 주셨다. 용량도 그리 크지 않아 들고 다닐만할 듯해서 구매. 가격은 972엔이었다. 기념품이나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이곳의 간장은 일본 왕에게 진상하던 거라고 하니, 시간 나면 들러서 맛봐도 좋겠다.


히타 간장 본점
히타 간장 본점에서 간장 작은 사이즈 3종 세트를 구매!


https://maps.app.goo.gl/ur23xPjT9HMdL8fx5


 양갱을 사고 싶어서, 아까 들렀던 히나 간장 히나 고텐을 다시 방문했다. 그 가게는 마메다마치의 메인 거리 격인 곳에 위치해 있어서 히타 간장 본점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그만큼 안내가 잘 되어있다. 히타 간장 본점에서 구매했던 제품들도 그대로 있었다. 가격도 동일해서, 간장/된장/양갱 쇼핑은 굳이 다른 데 갈 필요 없이 여기서 해결해도 될 듯. 양갱은 종류가 몇 가지 있고 맛보기도 할 수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 유자 양갱(594엔)과 밤 양갱(702엔)을 작은 사이즈로 두 개씩 샀다. 팥 양갱, 호지차 양갱도 있었다. 나는 맛보기를 하지 않고 평소 좋아하는 맛으로 구매했고, 한국에 돌아와서 유자 양갱을 먼저 먹어봤는데 유자청이 그대로 들어가 있고 유자 특유의 상큼 달달한 맛이 잘 느껴졌다. 밤 양갱도 기대 중이다.


내가 노린 것은 양갱!
양갱 사고 뿌듯



알래스카 카페


 계속 걸으며 구경하다 보니 다리가 아파서 카페에 가기로 했다. 구글에서 리뷰가 많았던 '알래스카 카페'로 향했다. 남자 사장님이 하시는 곳인데, 관광객들에게는 귀여운 개구리 종이접기를 주시는 것으로 유명한 듯싶다. 카페는 조용했고, 디카페인 메뉴는 없는 것 같아 오렌지 주스와 가토쇼콜라를 주문했다. 그리고 종이 개구리를 받았다. 이런 깜찍한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신 걸까.


알래스카 카페
카페의 아기자기했던 인테리어, 가죽 공예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알래스카 카페라 북극곰이 여기저기
카페 창밖으로 보였던 평화로운 풍경
갸토 쇼콜라에 따라나온 북극곰 아이스크림이 귀엽다


 카페는 작지만 인테리어 여기저기에 곰돌이가 있어서 귀여웠는데, 무엇보다 창가 쪽 자리에 앉으면 보이는 풍경이 멋졌다. 이 날 하늘이 청량하게 파랗고 날씨가 참 좋았는데, 일본 옛 느낌이 나는 건물들이 운치를 더하는 데다 사람 없이 한적해서 멍하니 앉아있기 좋았다. 이 카페 주인이 한국 국토 대장정을 했다는 인증이 자랑스레 장식되어 있던데, 나도 일본 돔구장 투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인 페이페이돔에서 야구를 봤는데, 사실 고시엔에서 야구 보는 게 로망이라서. 적당히 당분을 충전하고 약간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일어섰다.


https://maps.app.goo.gl/MbVPr19v1JnecUGQ6



히타 이온몰 들렀다가 발견한 귀여운 가챠
소후렌 가는 길에 본 귀여운 오리들



바삭한 야키소바, 소후렌 총 본점


 마메다마치에서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밥집은 아마도 장어덮밥 집이겠지만, 나는 생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안 그래도 료칸에서 이번달 생선섭취량을 훌쩍 넘기도록 먹었기 때문에 스킵. 점심 메뉴는 평소 좋아하는 야키소바로 정했다. 히타 지역의 야키소바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약간 바삭해질 때까지 면을 볶는 게 특징이라는 듯. 그리고 그걸 가장 충실히 재현하고 유명한 곳이 '소후렌'. 프랜차이즈로 지점이 몇 개 있는 것 같았는데, 히타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소후렌 총본점이 있다.


소후렌 총 본점, 주차장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늦은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는 웨이팅 없이 자리가 있었다. 카운터석으로 안내받고 메뉴를 봤는데 배가 아주 고프진 않았기 때문에 소후렌 야키소바 일반(1,050엔)을 주문했다. 곱빼기도 있었고(1,350엔), 곁들일 수 있는 볶음밥이나 칠리새우 같은 것도 있고, 날계란 같은 토핑을 추가할 수도 있었다. 카운터 너머 오픈키친으로 요리하는 게 보이는데, 숙련된 요리사분들이 촥촥 야키소바를 만들고 계신다. 잘 달궈진 판에 숙주를 듬뿍 넣고 면을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눌러 볶는 모습. 맛있는 냄새가 나서 식욕이 돋았다.


카운터 석에 놓여있던 조미료들, 베니쇼가를 맘껏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샥샥 빠르게 야키소바를 만들어 주신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숙주, 파, 고기 같은 고명이 꽤나 풍성하게 올라가 있기 때문에, 대식가가 아니라면 보통으로도 양이 충분할 듯. 카운터에 내가 좋아하는 베니쇼가(생강)가 놓여있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다. 면은 중간 굵기의 면이었는데, 과연 약간 양념에 눌어붙어 바삭한 식감이 나는 게 특징적이었다. 나는 흐물흐물한 것보다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맛있게 잘 먹었다. 먹다가 살짝 느끼하다 싶으면 베니쇼가로 달래고. 야키소바라 내 입맛에 간은 약간 센 느낌이었다. 맥주랑 같이 먹으면 밸런스가 더 잘 맞을 듯. 처음 볼 때는 양이 많다 싶었는데 먹다 보니 술술 들어갔다. 내 옆에는 어떤 남자분이 곱빼기로 시켜서 드시던데. 현지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맛집인 만큼 식사 시간대에는 웨이팅이 있을 것 같았다. 참고로 계산은 현금만 가능하다.


드디어 나온 야키소바, 푸짐하다


 식사하고 나가려는데 여기 또 진격의 거인 흔적이 있었다. 오타쿠로서 조금만 방심하면 '여긴 진격의 히타입니다'하고 머리를 댕 얻어맞는 느낌. 진격거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사인과 함께 리바이가 야키소바를 볶고, 사샤가 맛있게 먹는 일러스트가 있었다. (참고로 진격의 거인에서 사샤는 사투리를 쓰는데, 그게 히타 사투리라고. 그래서 히타 사람들에게 사샤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보니까 진격거 작가님이 젊은 시절에 소후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신 적이 있어서 이렇게 장식을 해두었다고 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이야기를 구상했고, 직원 식사로 야키소바를 자주 먹었는데 맛있어서 질리지가 않았다고. 다만 작가님이 아르바이트했던 곳은 총본점은 아니고 오오야마 지점인 듯했다. 정말 이 지역이 작가님을 키웠구나.. 그래서 진격의 히타 캠페인에 작가가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진득한 고향사랑, 멋지다.


계산서
식당에도 있는 진격거의 흔적...!!


https://maps.app.goo.gl/H8mcPad2sB6C2EW86



 다시 히타역으로 돌아와서 료칸의 송영 서비스 시간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관광안내소의 갓챠에 재도전했다. 한방에 500엔 짜리라 가격은 좀 세지만.. 어제 3번을 돌렸는데, 원했던 리바이가 나오지 않아서. 오늘 딱 한 판만 하는 거야! 하고 돌렸는데, 웬걸, 갖고 싶었던 리바이가 딱 나왔다! 소후렌에서 작가님 기운을 받아서 그런가, 오타쿠는 다시 싱글벙글해지는 거예요.


꺅 드디어 리바이를 뽑았어!!
관광안내소 앞의 자전거에서 리바이 병장님을!!
히타역, 리바이 병장님은 인기가 많다


 송영 차량을 타고 료칸에 돌아와 또 온천을 했다. 가격이 좀 나가더라도 개별 온천이 딸린 객실을 예약한 목적이 이것. 틈만 나면 풍덩 들어가서 따끈한 기운을 즐기고 싶었다. 오늘 여유롭게 다닌다고 했지만 역시 평소보다는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팠는데, 매끈매끈한 온천물에 담그고 나오니 다리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6시에 저녁을 먹으러 가서 신선한 해산물과 지역의 제철 식재료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또다시 밤에 온천. 휴양하러 온 히타를 제대로 누린 듯 해 뿌듯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오후 온천도 여유롭게
건강한 저녁 식사를 했다
마무리는 쇼채널을 보면서 논알코올 맥주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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